누구는 주장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복지의 선진국가 독일에서도 정당 해산은 있었다고. 맞다. 독일은 1952년과 1956년 각각 나찌의 후신으로 평가되는 사회주의 제국당과 독일공산당을 해산했다. 또 이야기할 것이다. 그 뒤로도 독일의 민주주의는 모범적이며 정치적 자유는 보장돼있다고.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아래의 사실을 망각한다.

독일이 전투적 민주주의를 도입한 배경은 모두 알고 있듯 나찌가 합법적으로 집권했다는 뼈아픈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집권 이전에 나찌는 어떠했나. 뮌헨 맥주홀 폭동을 비롯해 무수히 헌정을 파괴하는 범죄행위를 저질렀으며 사실상 사병조직을 거느리고 있던 조직이었다. 즉 구체적인 행동과 조직 체계부터 자유민주주의와 전혀 양립할 수 없는 조직이었지만 방기함으로 민주주의를 상실했다는 교훈을 안겼다. 만약 통합진보당이 쿠데타를 직접 실행했거나(지금 한국에서 역사적 뿌리를 따져 쿠데타와 가까운 정당이 누구인지는 구태여 밝히지 않으련다) 사병조직을 공식적으로 거느리고 있다면 나 또한 통진당 해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묻겠다. 그런가? (이석기를 들먹일지 모르지만 이는 뒤에 후술한다.)

그 누구는 또 이야기할 것이다. 나찌 후예 뿐만 아니라 원죄가 적은 공산당도 해체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 누구는 해체했다는 사실만을 되뇔 뿐, 그 역사적 맥락과 이후의 교훈은 깡그리 무시한다.

독일 공산당은 이차 대전 이전 수차 민중 봉기를 구체적으로 기획하고 실제로 실행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독일 헌재가 공산당 해체를 결정한 배경은 이것 만이 아니다. (만약 전력만으로 해체해야 한다면 5.16.과 5.18.을 반성하지 않고도 합법적 여당인 한국의 새누리당이 제일 먼저 해당된다) 독일 공산당은 그 몇년전까지 적국인 동독 공산당과 같은 몸이었다. 우리나라 헌재가 좋아하는 '숨은 목적'이나 '주도 세력을 보아하니'가 아니라 공식적으로 그러했다는 이야기다. 뿐이랴. 뭘 봐도 자유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대놓고 강령으로 내걸었다. 

여기에 언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할게 없을 만큼 동서 냉전이 가장 격심했던 시기의 최전선인데다 절대갑이었던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도 있었다. 

이제 내가 말하려는게 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주 간단히 말해 - 당시 독일 헌재가 한국 헌재였다면 - 서너달 안에 뚝딱 해체 선고하고도 남음이 없었다.

독일 헌재 결정을 들먹이며 아무 문제 없다고 떠드는 이들에게 묻겠다. 그때 독일 헌재는 한국 헌재처럼 움직였나?

아니었다. 독일 헌재는 공산당 해체를 선고하기 전에 심판 청구한 정부에게 철회할 의사가 없는지 물을 만큼 심사 숙고했다. 모두 알고 있듯 선고까지 5년여의 세월을 소요했다.

한국 헌재는 비상상황이란 말로 자신의 판결을 정당화했다. 그런 한국 헌재를 예찬하는 이라면, 오히려 독일 헌재를 비판해야 마땅하다. 지금 한국보다 훨씬 더 비상했던 당시 독일에서, 역사적 뿌리로 보나 강령으로 보나 과거 행각으로 보나 훨씬 더 이적성이 농후한 공산당에 대해, 독일 헌재는 5년이나 질질 끄는 직무 태만을 저질렀다.

독일 헌재를 빌어 한국 헌재를 찬양하는 이들에게 묻겠다. 당신들은 당시 독일 헌재의 직무 태만을 비난하고 있는가?

그 뿐만이 아니다. 독일 헌재와 정부는 그 후 훨씬 더 용납할 수 없는(?) 직무 태만을 저지른다. 누가봐도 해산당해야 마땅할 나치 후예를 해산한 뒤 의원직 상실에 대한 논란이 일자 관련 법규를 만드는 나약함을 보이더니 공산당 해산 선언후 보란 듯이 10년 뒤 재결성한 공산당 후예 들을 놔두고 있다. 그 뿐이랴! 적성 국가 동독의 집권당이었던 동독 공산당의 후예들조차 내버려 두고 있다. 자, 독일의 예를 들어 헌재의 결정을 칭송하는 당신들, 분명히 답하기 바란다. 독일 헌재는 핫바지인가? 독일 헌재는 전투적 민주주의를 포기했는가? 독일 헌재는 헌법상 결정의 엄중함을 몰라서 저러는가? 아니면 원래 헌재의 결정은 때에 따라 바뀌는 것이니 그때 그때 알아서 무시하면 되는 결정인가?

(글이 길어져서 3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