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헌재 판결로 심란했다. 그로 말미암아 작은 소동도 일어났다. 눈쌀을 찌푸리셨을 분들께 사과드린다.

각설하고 바로 묻겠다. '좌익종북과격불온' 학생운동은 언제부터 퇴조했을까? 80년에 본보기로 학살했더니 깔끔히 사라졌을까? 86년 서울대와 건국대에서 천여명씩 감옥에 쳐넣었더니 겁먹고 사라졌을까?

잘 알겠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80년 이전 명문대 중심의 소수 골수 분자 서클이던 학생운동은 광주를 거치며 급격히 확산됐다. 86년의 구속 선풍은 강의실 곳곳의 빈자리를 목격한 평범한 학생들이 거리로 나서게 만든 진원으로 돌아왔다.

지금 군부 독재 정권과 지금을 비교하지 말라고 이죽거릴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도 안다. 어쩌면 왠만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 알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이야기를 해보겠다. 

장면1.
86년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아름다운 산책로로 유명한 덕수궁 돌담길은 당시 전경들이 상주하던 곳이었다. 그 전경들의 검문을 거쳐 선배의 재판을 참관하러 갔던 나는 우연히 간첩 혐의자 재판을 목격했다. 매우 드물게도 변호인이 신청한 증인 중에는 정보기관 복무자가 있었다. 그 정보기관 복무자는 검사와 변호사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한 뒤 검사를 딱하다는 얼굴로 쳐다보며 '저 인간은요, 간첩할 그릇도 못돼요.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라고 말을 마쳤다. 그때 검사가 마지막으로 그 증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뭐 였을 것 같은가?
생생히 기억한다.

"정보기관 있었으니 아실 텐데요. 간첩이 간첩이라고 시인하는 거 봤습니까? 그러니까 저 사람은 간첩이예요."

믿을 수 없다고? 당시 독재 정권 시절에 살고 있던 나도 내 귀를 믿을 수 없었다. 그래도 검사인데 저런 수준이리라고는.

장면2.
88년 올림픽을 앞뒀던 시절이다. 그때 나는 올림픽 반대 시위대에 속해있었다. 그때 우리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전경들이 앞을 막았고 몸싸움도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 87년만 되도 흔했던 전경의 시위대 돌입도, 최루탄도, 검거 선풍도 없었다.
그때 어렴풋이 학생운동은 이제 퇴조하겠구나 예감했다. 그리고 그렇게 됐다.

왜 이제 와서 진부한 과거 이야기를 하느냐고?

나도 그 과거를 잊고 있었다. 그런데 오래된 미래처럼 그 과거가 되살아날 것 같은 불안 때문이다. 그래도 그 시절엔 '군부'라는 선명한 네임이 있었다. 이제 그 네임은 '합법'이란 껍데기를 강요하며 다가오고 있다.

(지금 일해야 해서 뒤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