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가 심화되는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서 경제력은 의지에 비례하여 축적된다로 얘기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해석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것일 수 있을 것이지만 나름 근거가 충분히 뒷받침 되는 설명이다.

역사적으로 볼때 단 한명의 존재가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꿔놓은 기록을 쉽게 찾아 볼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있음으로 해서 마케도니아는 그리스를 평정한데 이어 인도까지 정복사업을 펼칠 수 있었다. 로마의 시저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가는 어느 지역이나 시대를 막론하고 정권잡고 최고 권력자가 될 의지력 강한 인물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징기스칸은 또 어떠한가? 나폴레옹, 히틀러 모두 단 한 사람의 의지가 세계역사를 휘몰하 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만일 개개인의 의지력을 잴수 있는 기계가 존재한다면 앞서 언급한 역사적 인물들의 의지력은 다른 인간들의 의지력 총합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라는 검증할 수는 없지만 그럴듯한 상상을 해볼수 있을 것이다. 분명 이러한 생각은 상상속의 허구일 수 있지만 그러나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의지력이 강한 사람의 선택이 약한 사람들의 선택보다 우선해서 실행되는 경향을 수도 없이 목격하곤 한다. 속담에서 우는 아이에게 떡하나 더 간다라는 말도 우는 아이가 울지 않는 아이보다 더 욕망이 강하고 더 강한 의지력을 표출하고 있다고 보면 의지력이 강한 쪽으로 이익이 돌아가는 상식적인 사례의 하나로 들 수 있다.

역사적으로나 우리의 일상에서 보듯 의지력 강한 사람들 위주로 세계가 돌아가는 것이 확률적인 통계적으로 볼 때 정설이다. 세계가 의지력 강한 사람들 위주로 돌아간다는 것은 대부분의 자원들이 그러한 이들에게 분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자원은 경제력이 될 수도 정치권력이 될 수도 있다. 이 의지력이 강한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의지력이 강한 정도가 상위 1%에 들어가는 사람들끼리만 대적할때도 그 사이에서는 상대적으로 크기차이가 있게 마련이고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도 보편적인 확률의 법칙인 적용된다. 경향성이라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결이 누적되면 될수록 공고해져 가게 되어 있어서 자원의 분배가 쏠리게 되어 있다. 이러한 통계법칙에 의해 양극화가 심해지게 되어 있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효율성을 강조하고 생산성을 높이는데 사활을 다한다. 이러한 경쟁력을 높이는 행위들은 다분히 상대적인 것이라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경쟁력이 높으면 이익을 추구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다시 말해서 절대적인 능력치가 중요한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높기만 하면 이익을 추구하고 상대방의 이익을 뺏어오는데 문제가 없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위한 노력을 사람의 의지력으로 치환하면 글 앞부분에서 언급한 자원의 분배가 꼭지점으로 쏠리는 경향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지력의 크기는 상황에 따라 동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1% 기득권층의 의지력이 엄청나게 강력하더라도 나머지 99%의 반대하는 의지력의 크기가 그것을 넘어서면 99%가 원하는 방향으로 역사의 물길이 틀어지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정권의 교체기에 민중의 의지의 총합이 기득권층들의 그것을 넘어 설 경우 왕조가 뒤바뀌곤 했다. 중국의 왕조 교체기에는 항상 민중의 반란이 있었는데 이 시기 민중의 의지력의 총합이 훨씬 커졌다고 보지 않을 이유를 찾기 어렵다. 아마도 지혜로운 기득권이라면 민중들의 의지력 총합이 자신들의 총합보다 넘어서지 않을 수준으로 관리를 할 것이다. 좀더 안정적으로 하면 간신히 넘지않을 곡예를 하기 보다 여유있는 수준에서 관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언제까지 서민 증세와 대기업의 혜택을 유지할 수 있을지 관리 능력이 어느 정도까지 될지 궁금하다.


참고로 이러한 경향성은 과학에서 얘기하는 엔트로피 증가 법칙과 반대 법칙이 된다.  자연적으로 어떠한 개입도 없이 나두기만 하면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 격차가 점점 없어지는 방향으로 진행하지만 의지가 개입하면 할 수록 한쪽으로 쏠리는 엔트로피 감소의 경향을 보이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를 토인비의 표현을 빌어 자연과 의지의 법칙으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