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넷 담벼락에 대충 써갈겨버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번 일은 사안의 중대성이 중대성이니만큼(헌재의 오늘 결정은 역사에 남습니다) 오랜만에 각잡고 아크로에 글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1. 헌재의 통진당 해산결정이유를 떠받치는 논리 

  가) 통진당의 주도-주체-알맹이-실체라고 할 수있는 세력은 NL세력이다. 
  나) 이들 NL계세력은 대한민국 헌법의 근간인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목적을 추구하는 활동을 해온 세력이다.
  다) 특정 당의 주도(실체)세력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세력이라면, 그 당 역시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해야 한다.
  라) 어떤 정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성격의 정당이라면, 그 당은 위헌적 정당으로 국가가 해산시킴이 헌법에 부합한다.
  마) (결론) 따라서 통진당은 해산시킴이 마땅하다. 

  나)에 관한 보론:  민주적 기본질서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목적 및 활동의 구체적 내용은? 
   
   나-1) NL계 주도세력은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북한과 연계되어 활동하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하였다. 
   나-2) 또한 이들은 이석기가 주도한 내란사건에도 다수 관여하였다.
   나-3) 이들 세력은 한국자본주의 사회가 자유민주주의체제의 한계 안에서는 풀 수 없는, 내재적/불가피한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보며, 이 모순을 풀기 위해서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을 거쳐 북한이 표방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로 이행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나-4) 이상의 목적을 위해 적절한 시기, 무력행사 등 폭력행사도 감수할 용의를 가지고 있다.


 
 2. 헌재가 제시한 해산결정논리에 관한 강약 평가. 

  통진당 내 NL계에 관한 헌재의 사실주장, 즉 이들의 이념 및 목적에 관한 사실주장에 (위에서 '나' 부분) 관해선 크게 이견을 없을 겁니다.  특히 이석기 및 그 추종세력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또한 이 이석기 세력이 대한민국의 헌법 근간인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친다고 볼 수 있는지, 그 평가에 관해서도 크게 이견일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오해하지 않았자면, 이번에 소수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 역시 이석기 세력의 이념, 목적, 활동의 위험성 및 위헌성에 관해선 의견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가장 쟁점이 될만한 부분은 위에서 '다' 부분, 즉 이 이석기를 중심으로 한 통진당 내의 NL계 세력, 그 세력의 목적과 이념과 활동을 통진당의 그것과 '동일시'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결론부터 말해, 이 부분은 '보기 나름'입니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점을 따지고 들자면 갑론을박과 입씨름이 결론 및 합의, 내지는 유의미한 의견차의 좁힘 등의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그저 지리하게 이어지기만 할 겁니다. 이 점에 독자들이 동의한다고 전제하고, 그럼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통진당= NL-이석기 일체)라는 헌재의 다수 판단이 그 나름의 '일리'를 갖추고 있으며 무대뽀식 억지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또한 일리를 갖춘 반대편의 반론 및 회의, 의심을 명쾌하게 물리칠만큼 강력하진 못하다. 

 헌재논리에 관한 이 판단을 근거로 이하 이번 결정에 관한 제 의견을 밝히겠습니다.


 
 3. 헌재의 통진당 해산결정에 관해. 

  이번 헌재의 판결이 터무니없이 무리한 결정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 이번에 반대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의 의견에 7:3 혹은 8:2 정도로 기울어집니다.  왜 그러한가? 

  우선, 모든 사법판단이 그러하지만 정당해산결정과 같이 뒤따라는 정치적 파장 및 영향력이 심대하고 오래 가는 결정, 따라서 고도의 정치적 판단력이 순수 법논리적 판단과 더불어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결정에서는, (통계용어를 빌려) 1종 오류의 최소화를 도모해야합니다.달리 말해, 범인 만명을 놓치는 비용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는 희생자가 한 사람 나오는 불상사는 없게끔 유죄판결의 기준을 엄격하고 보수적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사법판결에서 이처럼 1종 오류의 최소화를 추구하는 경향은 어느 나라건 그 사회가 근대로 접어든 이후 일관되게 나타난 경향이기도 합니다.

 둘째 이런 일반론은 차치하고라도 2014년 말 현재 한국사회 특유의 정치, 외교 및  사회 상황 및 지형을 감안해도 그렇습니다.

 북한에 대한 일반국민의 인식이 어떻습니까? 최악이죠. 당연한 거데요. 지구상에서 가장 극악하며 후진적이고 폐쇄된 체제를 가진 나라를 꼽을 때 북한이 수위를 다투는 후보그룹에 속할 것이라는데 의견을 달리할 일반 국민은 사실상 없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통진당이 진보적 민주주의란 용어로 포장한 북한식 사회주의를 제아무리 선전하더라도 이에 회유당하고 넘어갈 국민들은 없어요. 설사 이런 사람들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유의미한 정치이념적 힘을 발휘할 날은 백만년이 지난다 한들 일어나지 않습니다.  요컨대, 적어도 국내상황만 볼 때 한국의 헌법질서가 전복당해 북한화할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셋째, 대외적으로 북한 역시 극히 허약한 나라로 한국의 체제를 위협할 상대가 못 됩니다. 핵이 있다고요?  그 핵은 쓰지 않을 때만 위협적인 무기입니다. 핵을 사용하는 순간 북한의 체제가 멸망한다는 것, 또한 북한핵은 뒤떨어지고 허약한 독재체제의 수명연장용이지 대한민국 체제 전복용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북한체제수뇌부들, 그 자신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경제 및 군사력 측면에서의 국력에서나 이념적 우위성에서나 어느 쪽을 보건 체제경쟁이란 관점에서 북한은 더 이상 대한민국에게 유의미한 적이 아닙니다. 꽤 오래전부터요. 이런 면에서 국내 주사파의 세력을 위축, 제압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국가보안법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북한 신문, 방송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게끔 전면 개방해서 북한이란 나라가 얼마나 후지고 한심한 나라인지를 온 국민들에게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것이라고 했던 박노자의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체제수호면에서 북한문제가 이와 같이 유의미한 문제가 아닌 반면, 이번 헌재 결정으로 국내에 빨갱이 사냥의 탈을 뒤집어 쓰고 설칠 극우세력의 준동,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의 수호라는 면에서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는 극우세력들의 준동이 더 심해질 가능성은 전자에 비해 훨씬 큽니다.

 기사를 보니 김이수 재판관이 낸 의견 중 이런 말이 있더군요.  

 "과거 독일에서 공산당 해산심판이 청구되고 해산 결정이 이루어진 후 다시 독일공산당이 재건되기까지, 12만 5천여 명에 이르는 공산당 관련자가 수사를 받았다. 그 중 6천~7천 명이 형사처벌을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 점에 비추어 보면, 이 결정으로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일이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 말 그대롭니다. 체제수호면에서 북한문제는 더 이상 문제라고도 할 수 없는 반면,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대한민국의 헌법 및 정체의 근간에 그보다 더 실질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그래서 좌우를 막론하고 더 우려해야할 가능성은 바로 이 국내 극우세력의 반체제, 반국가적 준동입니다 (불과 얼마 전에도 테러시도가 한번 있었죠. 일베에서 입만 까고 떠든게 아닙니다. 실행으로 옮기려고 했던, 리얼한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저는 이번 김이수 재판관의 소수 의견에 더 마음이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번 헌재 결정 자체가 터무니없다고 할만큼 무리한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