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재판관들의 통진당 해산 결정은 바로 이겁니다.


"자유의 적에게 자유를 허용해야 하는가?"



이 명제는 프랑스 혁명 당시 자코뱅의 당수인 생 쥐스트가 왕당파와의 극렬한 유혈투쟁 과정에서 했던 발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 쥐스트의 발언은 독일로 넘어가 '나찌 정권에 대한 반성의 일환으로 구체화' 되었고 전투적 민주주의 또는 방어적 민주주의(Defensive democracy)라는 이론을 정립시키죠. 우리나라에서는 국보법이 바로 이런 전투적 민주주의를 기본 개념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즉, 전투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개념으로 다원주의적 민주주의(pluralist democracy)와 다릅니다. (실제,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의 반대 개념은 공화주의적 민주주의(republican democracy)로 우리나라는 다원주의적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높아 집단이기주의 경향이 극도로 나타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개념 설명은 여기까지...)


전투적 민주주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활용된다는 측면에서 비판의 여지가 많습니다. 핵심은 바로 Parteienprivileg(정당특권)을 부인한다는 것이죠. 대한민국 헌법 제8조 4항에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것을 정당해산심판의 실체적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국민의 정치적 결사조직인 정당을 헌법재판소가 해산심판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은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일, 국민다수가 '사회주의를 원하고' 그 것을 대변하는 당이 '자유의 적'으로 규정되면 해산이 되는데 이 경우에 국민다수의 의사로 결정되는 민주주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죠. 한마디로 '선수독과'의 논리로 패러독스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정당해선 관련 법 규정이 없는데 미국의 민주주의는 멀쩡히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독일의 과거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명백히 북한이 남한에 적대감을 포기하지 않는 현실에서 전투적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죠.



이번 통진당 해산 결정에서의 논점은 '전투적 민주주의의 개념 적용' 여부가 아닙니다. 이 부분은 법리학자들 간의 논쟁,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사회적 논쟁을 통하여 합의점을 찾으면 됩니다. 문제는 전혀 다른데 있다는 것이죠.


저는 헌재의 결정이 '위헌'이라는 결정이 날 것으'통진당 해산 결정은 위헌'이 될 것으로 판단했었는데 그 이유는 '증거의 부족' 때문이었죠. 다른 나라 정당해산이 결정된 사례들은 해산 결정의 이유인 '폭력의 행사'에 대한 증거가 확보되었고 독일 네오나치당 해산 청구 기각은 네오나치당의 '폭력 행사의 증거물 위법적 행위에 의한 증거물 확보'였기 때문이죠.


즉, 이석기 1차재판 무죄판결은 '폭력의 행사'에 있어서 법원에서 부인 당한 것이고 헌재의 결정은 '증거주의를 무시한 결정'이라고 비난받아도 할 말 없을겁니다. 또 이런 비난에서 박근혜 정권 역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전투적 민주주의를 지배 이데올로기로 활용한 것은 나름대로 사회적 논점이 되어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석기 재판 중에 통진당 해산 청구를 했다는 것이죠. 최소한 대법원까지 판결을 기다리거나 아니면 다른 증거를 확보했어야 합니다. 


박근혜 정권의 폭력성은 '전투적 민주주의를 지배 이데올로기 방편으로 활용했다는 것'이 아니라 '증거주의를 무시했다'는 점입니다. 같은 논리로 새누리당이 소수당이 되는 경우에 새누리당 해산도 가능합니다. 민주주의에서 어떤 행위는 항상 '양날의 검'으로 작동하는데 글쎄요... 무식의 극치를 보여주는 박근혜나 그 일당들은 먼 훗날 지하에 누워서 새누리당이 똑같은 방법으로 해체되는 것을 목도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자못 궁금해지는군요.



어떻게 하겠어요? 꼬우면 집권해야죠.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