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특종과 보통 기사들


부족하나마 IT분야 기자 생활을 20여 년 가까이 하면서 나 역시 특종에 대한 욕심이 적지 않았다. 나름대로 이슈가 됐던 기사도 썼던 것 같다. 하지만 후배들의 기사를 봐주는 입장이 되면서는 언론과 기사 한마디로 저널의 품질을 결정하는 요소로 특종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표현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저널이 제공하는 기본 서비스의 개념에 가깝다. 아무리 유능한 기자라 해도 특종을 매일, 매주, 매월 써낼 수는 없다. 기자의 개인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회사의 시스템 등 매체력도 뒷받쳐줘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운도 적지 않게 작용한다.

 

그래서 특종은 찾아서 만들어내면 좋지만 기자가 특종만을 찾아서 취재를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매체의 품질을 결정하는 요소들 중에서도 특종이 그렇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인지도 면밀히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어쩌다 한 번씩 터져나오는 특종 기사보다는 일상적으로 다루는 기사들의 기본적인 수준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얘기다.

 

사용하는 용어나 개념의 정확성, 짧은 기사 안에도 숱하게 섞여 들어가는 비문/오자들, 표나 그림의 완성도 및 기사 본문과의 연관 정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정 분야 이슈에 대한 장기적인 정세 분석과 정보 축적을 통한 저널의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개별 사안들에 대한 정확한 의미 부여 등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특종이란 것은 저널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최상급 아이템이라고 한다면 일상적인 기사들은 그 저널의 최저 서비스 또는 기본 서비스 아이템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어느 기업을 막론하고 품질의 관리란 서비스나 제품의 최상급 상태가 아닌 최저 또는 기본 수준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나는 내가 생각한 만큼 저널의 품질을 올리지도 못했고, 후배 기자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도 못했다. 하지만 당시 내가 했던 고민이 무의미했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2. 엑셀과 파워포인트


부끄러운 얘기지만 명색이 IT분야의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사용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냥 아래아한글로 기사를 입력하고, 그림이나 표 등은 계산기를 두들겨 대충 손으로 그려주면 편집부가 알아서 지면에 반영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이 좋았던(?) 시절은 기자 생활을 뒤늦게 그만두고 일반 기업에 취직하면서 끝이 났다. 내 나이 딱 50세 되던 해였다. 경력 기자로서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간 것이 아니고 그냥 실무자급이었기 때문에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직접 다루어야 했다. 가장 간단한 키 조작조차 하지 못해 버벅대던 나는 겹 띠동갑으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온 여성 실무자에게 물어가며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새로 배워야 했다.

 

그 동료는 다행히도 친절하게 가르쳐 주어서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귀찮게 물어보는 게 미안하고 나잇값 못하는 게 창피하기도 해서 가급적 내가 해결해보고 안되면 물어보곤 했지만 물어보는 것 자체를 기피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 업무에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인 엑셀과 파워포인트 기능은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지금도 익숙한 것은 전혀 아니고, 간신히 컴맹을 벗어난 수준이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나는 옛날부터 교육이란 것을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긍정하는 접근'이라고 규정하는 개똥철학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엑셀과 파워포인트의 학습 경험을 통해 내 자신이 그 개똥철학의 정당성을 입증한 기분이었다.

 

3. 서울시향과 박현정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의 막말 파문이 터지고 박 대표가 언론을 상대로 해명이란 것을 했을 때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울시향의 대졸초임 연봉이 3천만원인데, 경력 6~7년차 직원이 엑셀조차 못하더라”는 발언이었다.

 

저런 현상이 서울시향 직원들의 개인적인 능력이나 또는 게으름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나처럼 50살 넘었던 사람도 필요하니까 배우게 되더란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 사실이 더욱 명백하다. 간단히 말해서 서울시향이라는 조직은 엑셀 등 최소한의 사무 합리화 도구조차 사용할 필요가 없는 방식으로 업무를 운영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박현정 대표처럼 조직과 업무의 효율성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분위기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쌓아온 사람에게 저런 분위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는 짐작이 간다. 속된 말로 안 봐도 비됴라고나 할까. 울화통이 터지고 폭발 지경에까지 이르고 실제로 폭발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폭발이 이번에 문제가 된 서울시향 직원들의 폭로 재료가 됐을 것이고.

 

박현정 대표가 직접 관장하던 서울시향 직원들은 연주자들이 아닌, 일반 사무관리 업무 종사자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업무를 관리하고 역량을 개발해 조직과 업무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대표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이번 사태에서 표면적인 쟁점은 막말이나 성희롱 등이지만 본질은 박 대표의 업무 합리화 노력에 대한 서울시향 사무관리 직원들의 저항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정명훈이 서울시향 운영에 행사해온 영향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 박현정 대표의 막말 사례라고 알려진 발언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것이 명확해진다.

 

4. 서울시향과 정명훈


정명훈은 서울시향 지휘자이자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상당수 연주자들을 물갈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구조조정을 한 것이다. 정명훈이 박현정 대표의 막말이나 성희롱 등에 대해 “이것은 인권 문제라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던데, 순전히 인권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막말이나 성희롱과 밥줄을 끊은 것 가운데 어느 게 좀더 심각한 사안인지 논란이 될 것 같다.

 

정명훈이 지휘자로 온 이후 서울시향의 연주 수준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그의 물갈이가 일종의 합리화 노력으로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준이 박현정이 시도했던 사무직원들 업무의 개선 노력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연주자들의 밥줄을 끊은 노력은 합리적이고, 박현정의 시도는 인권침해라는 것은 이중기준이다.

 

정명훈은 이 과정에서 막말이나 성희롱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르게 봐야 할까? 하지만 정명훈이 서울시향 운영에 끼치는 막강한 영향력이 그러한 막말을 낳은 요인의 하나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적어도 정명훈 자신은 박현정의 언행에 대해 말할 자격이 사라진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 이번 사태의 배후에 정명훈의 의지가 직간접적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명훈이 서울시향에서 받는 지휘자 연봉이 국제 클래식 음악시장에서 인정받는 객관적 가치에 비해 과다하다는 평가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번 사태에서 정명훈의 급여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고 본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정명훈이 지금 받는 급여의 2배를 더 받아도 무방하다.

 

단지, 서울시향과 서울시 그리고 서울시민들이 정보 비대칭성 해소와 제대로 된 토론 등 합리적인 절차를 밟아서 그것을 인정한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절차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울시향 내부 업무의 합리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박현정 대표가 만들려고 하다가 엉뚱하게 분란만 일으키고 좌초한 그 시도가 사실은 이런 합리화로 가는 방향이었을 거라고 나는 이해한다.

 

5. 마무리


맨 처음 했던 특종 얘기로 돌아가 보자. 특종 기사를 터뜨리면 그 매체와 기자의 인지도가 올라간다. 하지만 그 효과는 일시적이고 단기적이다. 언제 나올지 기약도 없는 특종 기사 읽으려고 특정 언론매체를 선택해 읽는 독자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가장 기본적인 기사가 얼마나 꾸준하게 일정한 품질로 일관된 형태로 전달되느냐가 결국 독자의 선택을 좌우할 수밖에 없다.

 

정명훈이 서울시향 지휘자로서 올린 성과를 여기에 굳이 대입하자면 일종의 특종기사라고 비유할 수 있다. 물론 특종기사는 좋고, 그런 특종을 쓴 기자는 칭찬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특종 기자의 영향력이 커져서 회사의 업무 시스템을 특종 취재 중심 즉 자기 중심으로 고정시키고, 나머지 부분의 합리화를 방해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기자는 잘라내는 것이 그 저널의 장기 전망을 위해서 바람직하다.

 

현실적인 가능성이 없는, 말도 안 되는 비유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소규모 저널에서는 사실 정도의 차이를 떠나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실제로 발생하는 경우이다.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 시장이나 서울시향의 위상을 국제 음악시장에 견주어 보면 언론계에 무수히 많은 소규모 저널에 비유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서울시가 정명훈과 계약을 연장한다고 한다. 지휘자로서 정명훈의 역량이나 취임 이후 성과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서울시가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서울시향의 장기적인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정명훈은 부정적인 영향을 더 끼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박현정 대표 막말 파문에서 드러난 서울시향 내부의 갈등 구조가 이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 하나, 이번 파문 이전부터 정명훈을 둘러싼 논란에서 정명훈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논지를 보면서도 내 생각을 굳히게 됐다. 사실 논란의 핵심은 정명훈의 실력이나 몸값, 위상이 아닌데도 정명훈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 분이 얼마나 뛰어나고 귀한 분인데...”라는 식의 논리로 일관한다. 실력이 뛰어나면 불공정 계약 나아가 그 불공정 계약마저 뛰어넘는 불합리한 기득권을 관행화하는 게 옳다는 얘기인가?

 

나아가, 정명훈을 비판하는 논자들을 향해 “당신들이 정명훈을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는 논리를 전개하는 데 이르면 말문이 막힌다. 이 발언 하나만 놓고 봐도 그 사람들은 정명훈을 둘러싼 논란에 뛰어들 자격 자체를 상실한다고 봐야 한다.

 

서울시향이 한 사람의 스타 대신 제대로 된 시스템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구조를 갖추었으면 한다. 그런 시스템이 갖춰질 때 정명훈 같은 지휘자의 역량도 제대로 발휘될 것이고 나아가 더 훌륭한 지휘자를 영입하거나 육성할 수 있는 인프라도 갖추게 될 것이다.

 

정명훈이 그만두면 서울시향의 브랜드나 연주 수준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나? 사실이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명훈이 서울시향에 긍정적인 역할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끼친 증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향을 위한 정명훈이 아니라, 정명훈을 위한 서울시향을 만들어왔다는 얘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던 언론매체의 자매지가 있었다. 그 자매지의 편집장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평소 회사에 불만이 많던 기자들이 동조 사표를 썼다. 그때 사장이 나에게 하던 얘기가 있었다.

 

“그 친구(편집장) 평소 업무는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기자들 관리를 잘한 것 하나는 인정해줘야겠지.”

 

그래서 내가 그랬다.

 

“평소 업무는 잘 모르겠지만 기자들 관리야말로 엉망으로 한 것입니다. 정말 편집장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자기가 그만두더라도 후속 업무가 전혀 지장이 없도록 했을 겁니다.”

 

나는 내 주장처럼 편집장으로서 기자들 관리 업무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위의 자매지 편집장처럼 못하지는 않았다. 아, 그런데 이거 말해놓고 보니 내가 내 뒷통수 치는 얘기 같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