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일에 살면서, 일년에 두세 번 정도는 오케스트라를 보러간다. 음악 수준이야 둘째 치고, 갈 때마다 두 가지에 기묘하게 놀란다. 

 하나는 내가 전에 살았던 작은 대학 도시에서나, 혹은 지금 사는 중간 규모의 도시에서나 (중간 규모라고 해도 주도긴 하다)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는 날엔 공연장이 평일이건, 주말이건 가리지 않고, 빈 자리가 정말 하나도 없을 정도로 관객들로

 꽉꽉 들어찬다는 것이고, 또 하나 놀라운 것은 그 자리를 가득 채우는 관객들 중에 정말 나 같이 비교적 젊은 층에 속하는 독일 사람들을 눈을 부릅뜨고 찾아 봐도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클래식 공연장의 좌석의 가득 채우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장년/노년층이며, 연주회에 나타나는 그네들은 적어도 그들의 복식으로 미루어 보건대, 최소한 독일의 중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분이 우리나라는 클래식 음악회장을 찾는 사람들이 비교적 젊은 층이 많은게 흥미롭다고 하셨지만, 반대로 나는 독일 

 젊은이들이 왜 클래식 음악에 무관심한지가 궁금했다. '뭐 독일이야 워낙 클래식 본고장이라 클래식이 무관심한 젊은 세대들이 나중에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클래식이라는 장르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겠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요즘엔 생각이 좀 달라진 게, 그렇게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형성된 음악적인 취향이 성향이 확연히 다른 음악 장르로 바뀌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설사 바뀐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독일 장/노년 층 세대가 거의 집단적인 수준에서 클래식에 빠져 있는 것처럼 그렇게 좋아하게 될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고액의 일년 정액권을 끓어 놓고 그들은 부지런히 클래식 음악회장을 찾는다. 그네들에겐 중간에 제법 긴 휴식 타임을 이용하여 와인을 마시며 비슷한 부류의 상류층과 사교하는 것이 이미 습관화 되어 있다. 반면 젊은 세대의 독일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클래식 음악회라는 사교의 장을 통하지 않고서라도 자기 세대의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른 여건이 얼마든지 열려 있고, 또 그것을 주로 이용한다. 페이스북이나 각종 SNS..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예술적 기호를 매개로 비슷한 부류의 계층과 맺는 전통적인 사교의 방식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2.  


 그러니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은, 클래식 음악은 장기적인 관점에 보건대는 본고장인 독일에서도 사그러드는 예술장르라는 것이다. 꼭 클래식 수요자 관점이 아니라, 생산자 관점에서 보더라도, 독일 유수의 음악 대학의 거의 절반 이상을 아시아계나 러시아계 학생이 차지 하고 있으며, 독일 음대 교수들은 음대 안에 독일 학생들 비율이 한해가 다르게 비독일권 학생들로 잠식되는 것을 걱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장기적인 추세에 관한 매우 거친 예측일 뿐이며,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보건대 독일 만큼 클래식이 광범위하게 소비되고 있는 나라도 찾기가 어렵다. 베를린 필이나 뮌헨 필 같은 월드 클래스의 오케스트라의 경우 입장료 수입이나 주정부의 할당 예산을 제외하고서 후원금으로만 벌어들이는 돈이 한해 1300만 유로(한화 약 180억원)를 상회한다. (베를린 필 15m, 뭔헨필 13.5m, 슈피겔지의 다음 기사 참고. http://www.spiegel.de/spiegel/print/d-70228803.html그 후원금의 많은 부분이 직접 공연장을 찾고 클래식 음악을 소비해 주는 상류층에서 나온다는 것은 명약관화 한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예술 후원가 계층을 갖추고 있는가?     

 

 궁금해서 잠깐 구글링을 해보니 오랫동안 뭔헨 필을 지휘한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금은 드레스덴 슈타츠 카펠레 예술 감독이며 정명훈과 나이나 경력 면에서 얼추 비견될 만하다.) 이 올해 받은 연봉이 얼추 약 80만 유로 (한화 13억원) 정도 된다. 유럽 내에서 스타급 지휘자들의 연봉은 최대 백만 유로 정도(약 15억원)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럽보다 더 많이 준다고 하는 미국에서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들의 상임 지휘자에게 지급된 연봉 역시 200만 달러 (약20억원) 를 넘지 않는다.   

 

 3. 


 문제는, 자신의 묵직한 지갑을 클래식 음악 진흥을 위해 기꺼히 열 준비가 되어 있는 클래식 애호가층이 우리보다 훨씬 두꺼운 미국과 독일의 경우에서도 현 수준의 스타 지휘자의 연봉이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이 나온다는 것이다. (예컨대, 시카고 트리뷴의 이 기사, http://articles.chicagotribune.com/2009-05-17/news/0905150261_1_minnesota-orchestra-virginia-symphony-big-five-american, 그리고 가디언의 이 기사. http://www.theguardian.com/music/tomserviceblog/2009/may/18/classical-music-conductors) 

 

 작금의 정명훈 연봉 논쟁에서 우울하게 인상적인 것은, 소위 클래식 애호가의 입장에서 정명훈의 고액 연봉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전체적인 샐러리 구조의 불합리함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카고 트리뷴 기사에는 시카고 필하모닉 - 미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잘 나가는 오케스트라의 하나 - 을 구성하는 구성원 전체, 즉, 상임 지휘자를 비롯한 예술 감독과 스탭, 수석 연주자들과 평 연주자들의 연봉 정보가 드러나 있는데, 이 기사에 따르면 한화로 거칠게 환산하여 지휘자의 경우 약 20억, 실무 이사진 4억, 수석들 3억, 평 연주자들이 1억 정도를 번다. 기사의 내용인즉 이런 (어떤 관점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매우 건전한!) 샐러리 구조 하에서도 많은 단원들이 자신의 현재 받는 급여 수준과 지휘자의 급여 수준에서 현저한 불합리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 시향은 어떠할까? 정확한 정보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2000대 초중반을 기준으로 KBS 교향악단의 연주자들의 평균 연봉이 2500 만원 정도였고 그것이 당시 우리 나라 최고 수준이었다고 하니 (이것은 말레이지아 오케스트라의 경우 - 평단원의 연봉이 7500만원 정도 된다고 한다 - 와 비교해도 터무니 없이 낮은 수준이다. http://www.donga.com/docs/magazine/weekly_donga/news281/wd281hh020.html), 미국에서 로린 마쩰이나 제임스 르바인 같은 당대 최고 수준의 지휘자들이 자신의 악단에서 평 연주자보다 대략 20배 많은 금액을 연봉으로 가져가는 동안, 정명훈은 약 100 배 많은 연봉을 챙겨간 셈이다. 이런 상대적인 비교보다 더욱 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미국이나 독일에서 일류 오케스트라의 정식 단원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연주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경제적인 토대가 마련된다는 것을 뜻하는 반면, 우리 나라에서는 가장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오케스트라의 정식 단원이 된다고 해도 당장의 자신의 생계를 위해 레슨 알바를 어쩔 수 없이 뛰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4.


 클래식 음악 같이 우리 나라에서 매우 바닥이 좁은 <문화>+<산업>에서 스타 지휘자들의 연봉은 얼마가 적정할까? 방점을 앞에 두는 사람들은 시장가치로 정명훈의 연봉을 측정할 수 없다고 말하고, 뒤에 두는 사람들은 정명훈이 그만큼의 <예술 수요>를 창출했다고 주장한다. 후자의 논리에 대해서는 우선 다음과 같이 답변할 수 있다: 틸레만 같은 정명훈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이름값을 가지고 있는 지휘자들은 그럼 정명훈 만큼의 예술 수요를 창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명훈보다 훨씬 덜 받는 것일까? 

 

 우리나라 같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재정적인 후원층의 규모가 국가 경제의 전체적인 규모에 비해 터무니 없이 작아 악단 재정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경우에는, 결국 산업이 아닌 <문화 진흥>의 논리가 동원될 수 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볼 수 밖에. '한 명의 지휘자의 예술적 자존심을 채워주는 것이 우선인지, 아니면 당장 열악한 조건에 내몰려서 레슨 알바를 뛰어야 먹고 살 수 있는 평단원들의 현실적인 처지를 개선해 주는 것이 우선인지'. 드러난 사실로만 미루어 보건대 정명훈의 급여를 현 수준에서 아래로 끌어내려 <현실화> 시키는 것이, 결코 정명훈의 예술적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명훈이 당장 유럽이나 미국의 어디를 가도, 지금 그가 시향에서 누리는 것과 같은 수준의 급여와 특권 수준의 다른 경제적 대우들을 누릴 수 없을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5. 


 가디언의 기사가 잘 지적하고 있듯이, 스타급 지휘자들의 과다한 연봉 문제는 비단 정명훈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양 클래식 음악계 전체가 당면한 문제일 수 있다. 현재의 스타급 지휘자들의 급여가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다는 것: 전 세계적으로 클래식 음악 시장은 장기 수축되는 추세인데, 클래식 음악을 매니지먼트하는 회사들과 중앙/지방 정부들은 현재도 카라얀과 베른 슈타인과 같은 극소수의 전설적인 지휘자들의 음반 발매를 중심으로 클래식 음악 시장이 돌아가던 시절의 경제 논리에 묶여 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고착된 구조가 클래식 산업의 생산자들 - 지휘자, 솔리스트, 수석, 평단원, 그리고 운영 담당자들로 이루어지는 - 이 살아가는 경제적인 생태 환경의 상대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클래식 산업은 호날두나 메시 같은 스타 플레이어들의 플레이에 열광하는 거대한 대중 소비자층을 갖추고 있지 않다. 프랑스 있을 때 데리고 있던 현지 연주자들 몇 몇 데려와서 수석으로 채워놓고, 거대 레이블 음반사들과 자비로 충당한 녹음 앨범 몇 장만 내면, 가뭄에 콩나듯 드문드문 하던 우리나라 클래식팬층이 수년 내에 들불 처럼 번지기라도 하나? 정명훈이라는 이름값만으로 사람들을 클래식 공연장으로 더 많이 불러 모을 수 있기만 하면 <이제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수준의 오케스트라를 갖게 되는> 건가?

 

 다 좋은데, 제대로 된 구조를 먼저 갖춰놓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클래식 음악을 업으로 하고 살아가는, 비록 젊은 시절에 정명훈 만큼의 명성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과 땀을 쏟았을 수도 있는, 많은 이름 없는 우리 연주자들이 고된 수련의 시간 끝에 힘들여 얻은 자기 직업 안에서 경제적으로 안심하고, 자신의 일에 매진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게 되기를 희망한다. 음악 예술이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혹은 나의 귀를 한낮 즐겁게 해주는 감각이 아니라, 나의 삶의 전체적인 느낌을 숭고함과 자기 존엄의 감정으로  신비하게 깃들게 하는 공적인 일이라면, 더더욱 내가 낸 세금은 그렇게 귀하게 쓰여야 한다. 


정명훈 같은 이름값 있는 지휘자가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자존심만 세울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사람들의 처지에서, 그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거나, 적어도 그 사람들의 내는 목소리를 짓밟지는 않을 때, 어두운 미래에 속한 클래식 음악이 우리 나라에서 조금씩 자신의 빛을 밝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