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래 연필님의 본문 주장은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전형적인 '피해자가 피해자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사악한 논법이니까요. 연필님은 '거북하게도' 호남을 추궁하지 마시고 호남과 똑같은 양태를 보여 '선진국에 진입시키지 못하는' 영남을 추궁하시는 '거룩함'을 보이시는게 더 나을듯 싶네요.


2. 연필님 본문에는 전혀 동의를 못하지만 쪽글에서  '조선시대와 일제시대 호남이 더 잘살았다?'는 주장의 반박은 조선총독부 통계로만 보면 연필님이 맞죠.


제가 누누히 한국의 근현대사는 보수에 의하여 한번, 진보에 의하여 또 한번 크게 두번 뒤틀렸다라고 주장하는데 진실은? 둘다 거짓말~!!!!


3. 제가 언젠가 '조선총독부의 농지 통계본 것'을 토대로 '경지면적은 경상도가 더 넓었다' 그리고 '1인당 소출량도 경상도가 더 많았다'. 단지, 호남은 대규모 농지가 많아서 일제의 착취 대상이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구조는

첫번째, 해방 후 5만명이 대학입시에 지원했는데 통계에는 없지만 영남인이 더 많아서 그 것이 박정희 정권에서 영남인들이 대거 진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단지, 516 쿠테타 후 김종필의 불평에서도 보듯 박정희가 의도적으로 영남인들을 밀어준 부분도 분명 있다)


두번째, 미군정 당시 농지개혁에서 '친일파들의 농지는 개혁대상에서 제외되었는데' (통계는 못찾았습니다만 직감적으로)호남의 대규모 농지 소유주들은 농지개혁에서 제외되었고 그 중 상당수는 친일파였을 수 있다....(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가사를 반추해보시면 알겁니다. 유달산.... 그리고 오백년전 님 <-- 이순신이죠..... 오백년 전에는 왜구를 물리치는 중심지였는데 지금은 친일파가 득실득실...)


세번째, 625당시에는 자본민주주의 또는 민족주의가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미군정 여론조사에 의하면 사회주의 체제를 원하는 국민이 60% 이상이었고 공산주의 체제를 원하는 국민도 7%였습니다) 북한과 자발적으로 싸워 죽은 군인들이 많았다..는 것은 미군정 하에서 자작농들의 자본민주주의를 맛본 이유라는 것..


저 역시 더 많은 자료들을 확보하고 공부가 필요한 부분입니다만... 아래의 통계 자료(dcgell에서 퍼왔고... 제가 본 조선총독부 통계는 아직 못찾음)는 일제시대의 실상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억에 의하면 1920년대까지 호남은 경지로 개발된 토지가 별로 없었는데 중일전쟁 전후로 착취를 목적으로 조선총독부가 벌린 농촌진흥운동에 의하여 집중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죠. 제가 한번 언급한 아타라시이 무라 츠쿠리(新しい村づく り) ( 정치/사회 게시판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새마을 운동 기록물'과 엇갈리는 기록들  wriiten by Hanguru )


농촌진흥운동은 조선총독부가 주도하여 1932년~1940년 사이동안 전개하였던 관제농민운동이었다. 총독부는 당시 농촌경제의 몰락에 따른 소작농 및 농민들의 사회불안 억제와 소작농,농민들의 불만 및 각종 소작쟁의 운동 활성화를 통제하는 한편, 본격적인 중국대륙 침략전쟁을 앞두고 '황국신민화'정책의 효과적 달성을 위해 전개하였던 일종의 사회 교화운동이었다.
(출처는 여기를 클릭)






4. 아래 일제시대 때 농업호수 (소화14년은 1938년... 나머지는 덧뻴셈으로 연도를 추산해 보셈)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