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도 안산 소재 남양공업(대표 홍성종)이 인터넷에 올린 채용공고의 파문과 충격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호남 본적인 대한민국 국민을 외국인과 같은 범주로 묶어 채용 자체를 막은 내용도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악랄했던데다 사건의 경위에 대한 남양공업의 해명에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된 채용공고는 그 자체로 불법입니다. 우리나라 고용정책기본법 제7조에는 사업주가 근로자를 모집하고 채용할 때에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신앙 △연령 △학력 외에 출신 지역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의식한 때문인지 남양공업은 채용공고의 내용이 알려지고 여론이 끓어오르자 홍성종 대표이사 명의로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고 이 사건이 외주업체의 단순한 실수에 의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 업체가 한겨레신문 등의 보도에 밝힌 내용을 보면 외주업체의 젊은 신입직원이 여러 업체의 모집요강과 댓글 등을 살펴보고 내용을 정리해서 올리다보니 문제가 됐던 ‘외국인/호남 본적 채용금지’라는 부분이 포함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으로는 몇 가지 의문이 풀리지 않습니다.


우선, 사원채용의 실무절차는 외주업체에 맡긴다고 하더라도 채용 대상의 자격요건이라는 핵심 내용을 외주업체에 일임했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기업 분위기에 비춰 설득력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채용공고를 냈던 외주업체는 올해 10월 하순부터 남양공업과 거래를 시작한, 거래 실적이 겨우 한 달 정도에 불과한 업체입니다. 그런 업체에게 자기 회사 신입사원 자격요건 결정을 일임한다구요? 회사 생활을 해본 분들은 대부분 “믿기 어려운 얘기”라고 얘기합니다.


남양공업의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문제가 남습니다. 외주업체의 신입직원은 여러 업체의 모집요강 내용 가운데 왜 하필이면 ‘외국인/호남본적 지원 금지’라는 내용을 찾아내 올렸을까요? 해명이 사실이라면 남양공업 외에도 불특정 다수 기업들이 채용공고에 ‘외국인/호남본적 지원 금지’라는 내용을 올려왔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그런 채용공고 내용을 문제 삼은 사람이 없었을까요? 혹시 이번 남양공업 사태 이전에 그런 채용공고를 한번이라도 보신 분 계십니까?


댓글 내용을 참조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말이 안됩니다. 특정 회사의 사원을 뽑는 자격요건을 정하는 데 그 회사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댓글 내용을 참조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냥 변명을 위한 변명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정말 그런 댓글 내용을 참조했다면 남양공업의 평소 분위기를 아는 외주업체가 ‘알아서’ 그런 댓글을 찾아 반영했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의문을 단순한 트집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증거가 또 있습니다. 과거 남양기업을 지원했던 사람이 올린, 이 회사가 전라도 출신을 뽑지 않는다고 했다는 경험담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것입니다. 고객사의 분위기를 읽어야 하는 대행업체의 반응 그리고 과거 남양공업에 지원했던 사람의 경험담 등을 종합해보면 이번 사건은 단순한 실수나 해프닝이라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배경을 깔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양공업의 이번 채용공고는 명백하게 불법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현행법의 저촉 여부를 떠나 더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첫째 본적이 전라도인 사람을 외국인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설혹 실수라 해도 그 실수는 호남 출신들을 대한민국이 아닌 외국인으로 취급하려는 광범위한 사고방식의 일부가 표출된 결과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본적 전라도’를 따지는 것은 고향이나 출생지만을 보는 것도 아니고 부모나 조부모가 호남인 사람까지도 가려내서 이 나라 국민의 자격을 뺏겠다는 얘기입니다. 조상이 전라도면 무조건 ‘홍어’라고 까대는 일베식 사고방식의 전형입니다. 호남 사람의 정체성을 혈통과 유전에서 따지겠다는 선언이며 명백하게 인종주의적 편견입니다. 저희 지역평등시민연대(지평련)가 문제를 제기해온 ‘인종주의적 지역차별 및 혐오발언’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우리나라 다수의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암암리에 호남출신의 채용기피를 자행하고 있다는 항간의 소문이나 주장들이 단순한 의혹을 넘어 엄연한 현실이며, 그 가운데 극히 일부 사례가 이번에 수면위로 드러난 사건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평련은 문제가 된 채용공고문을 직접 올린 채용 대행업체나 담당 실무자의 책임을 묻는 것은 이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일시적인 분노의 해소보다 더욱 근본적으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평련은 이 사건의 당사자들을 포함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분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이것은 사건의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라는 것을 밝혀둡니다.


1. 정부

박근혜정부가 지역간 화합을 중요한 국정과제로 설정한 것에 대해 지평련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그러한 노력이 큰 성과를 거두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응원합니다. 하지만, 온갖 분야의 거창한 구호성 해결책을 고민하기에 앞서 출신지역에 따른 기업체 채용 금지가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상상을 초월하는 전근대적 인종주의에 대해서도 특별한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요구합니다.


출신지역이나 인종주의적 기준에 따른 편견은 당사자가 아무리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여도 차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어떤 사회적 병폐보다도 훨씬 악질적입니다. 법적인 장치를 피해 비공개적인 방식으로 영향력을 키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폐해를 낳기 쉽습니다. 정부가 이 문제를 강 건너 불처럼 수수방관하지 말고 문제의 시급성과 심각성을 인지하고 빨리 대책 마련에 나서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2. 현대자동차

남양공업은 이번 채용공고 내용을 자신들도 몰랐으며, 평소 호남 출신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가 밝힌 호남 출신 임직원의 숫자나 채용공고 작성 경위 등은 말 그대로 사건 당사자의 주장일 뿐입니다.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얘기입니다. 남양공업의 원청업체인 현대자동차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채용공고 내용대로 전라도 본적인 사람이 현대자동차 1차 협력업체에서 일할 수 없다면,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한 자동차 제품도 전라도 본적인 사람에게는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게 논리적으로 일관된 태도일 겁니다. 현대자동차가 남양공업의 채용공고 관련 내용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와 함께 협력업체를 선정하고 관리하는 자체 기준에 비추어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밝혀주는 게 도의적이거나 사업적인 관점에서 합당하다고 봅니다.


3. 여야 정당

새누리당은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이자 국회를 대표하는 과반수 정당임에도 수백 수천 만에 달하는 국민들이 실제적인 차별행위 앞에 직면해 있고, 자칫 심각한 국민 분열과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는 지역차별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습니다. 조속한 입장표명과 여당으로서의 해결책을 제시하여 줄 것을 요구합니다. 혹시 호남지역에서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표가 부족하다 하여 모든 국민들을 불편부당하게 대우해야 하는 공당의 의무를 망각하고 편파적으로 대한다면 준엄한 국민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분명히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은 국정에 직접 책임이 없는 야당일지라도 그 잘못은 새누리당보다 더 크고 막대하다 할 것입니다. 새정치연합은 호남 유권자 및 호남 출신 유권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정당입니다. 하지만 이 정당은 남양공업 파문이 발생한 이후 이 사건에 대해 어떤 발언이나 의견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건씩 발표하는 대변인 성명 등에서도 이 문제를 철저하게 외면합니다. 이 사실은 이 정당이 선거 때만 호남 표 달라고 할뿐 평상시에는 어떻게든 호남 정체성을 부인하고 싶어한다는 세간의 평가를 증명해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할 것입니다.


새정치연합 정치인들은 “지역 문제는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커지는 괴물과 같으니 모르는 척하는 게 상책”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호남이나 새정치연합이 피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그냥 잠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괴물은 누군가 자기를 건드려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끊임없이 도발해 덩치를 키우는 악마입니다. 새정치연합이 이 문제를 앞으로도 계속 외면할 경우 호남 유권자들 역시 새정치연합을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외면하게 되리라는 점을 분명히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4. 양심적인 지식인과 시민들

일부 보수적인 단체와 시민들은 작금의 사태에 남양공업을 비호하고 오히려 피해자들인 호남인들을 공격하는 적반하장식의 대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몰상식과 가치전도는 굳이 거론하기도 입이 아프고 더 보탤 필요가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칩니다.


그러나 지역차별 문제에 있어 우리나라 진보적 지식인과 시민들에게 느끼는 아쉬운 점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지역 문제만 나오면 “계급 문제가 우선”이라는 교과서적 답변을 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급의 현실적 표현이 매우 다양하게 변위되며 그 변위 각각의 특성에 맞추어야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그 분들이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계급적이지 않은 사안들에 대해 진보진영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역차별 문제에 대한 외면은 호남을 구태, 토호, 범죄집단 정도로 치부하고 싶은 호남혐오증의 또다른 변형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호남 혐오는 우리나라 기득권층이 가장 쉽게 권력을 창출하고 유지할 수 있는 무기이며 그런 점에서 이 문제에 대한 진보 진영의 외면은 결과적으로 기득권층에 대한 항복선언이자 적극적인 협조의 의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봅니다.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시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발언해주시기를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2014년 12월 7일 
지역평등시민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