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세계에서 정치 경제 문화등 여러부문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들중 서구를 제외하고는 일본이 사실상 유일합니다.
그것도 일본은 개항 20년만에 동양의 맹주 청나라를 굴복시키고 당시 일본 국가 세입의 두배를 배상금으로 받아냈으며 러시아마저도 격파를 하였습니다.
아울러 서구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비행기와 항공모함 전함을 자력으로 설계 제조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유럽이 르네상스부터 산업혁명을 거치는 동안 수백년동안 이룩한 발전을 일본은 50년만에 따라 잡았습니다.
이에 비하여 일본보다 더 발전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을 통한 선진 문물을 습득하기에 유리했던 우리나라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보다 10년 늦게 근대화를 시작했지만 우리는 좌초하고 말았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일본의 간섭이나 침략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살펴보면 정치 엘리트들의 사고가 조선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일본 역시 역사와 문화가 오래되었고 막부의 쇄국 정책이 있었으며 부패도 있었습니다.
조선처럼 유교 문화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었고 근대화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세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근대화를 추진하는 세력이나 지도자가 조선보다 많았고 유능하였습니다.
일본은 국가 주도의 산업혁명 자본주의 체제 그리고 근대화를 추진하여 단시간내에 성과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비스마르크를 통하여 근대국가로 진입한 독일을 벤체마킹하였고 그것은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치 엘리트들의 국가발전을 위한 신념과 비젼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우며 500개의 기업을 세운 시부사와 에이치는 파리 만국 박람회를 다녀온 후 관리가 되어 근대화 작업에 앞장섰고 정치가로서도 미래가 보장된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관직을 버리고 사업가의 길을 갑니다.
그가 남보다 더 먼저 눈을 뜬 서구문물을 이용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사업가가 된 것은 아닙니다.
그는 경제발전 서구 자본주의 시스템이 일본의 발전을 위하려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업가의 길로 나선 것입니다.
정치는 자기 아니라도 할 사람이 많지만  산업은 자신이 일본 자본주의의 초석을 놓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논어와 주판이라는 책처럼 일본 자본주의의 기초를 만들었고 일본의 기업들이 한국처럼 천민적 자본주의가 되지 않은 정신적 근거를 제공한 것입니다.
당시 조선에서는 고위 관리가 상인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없습니다.

일본 근대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치가가 오쿠보 도시미치인데 그는 명치유신 3년후 100여명의 사절단을 이끌고 유럽 각국을 견학합니다.
그런데 그 100명에는 고관들이 다 들어있고 중요 관리들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국가 예산의 2%를 사용하면서 무려 1년 10개월의 시간동안 유럽 나라들을 다니면서 보고 듣고 연구한 것을 100권의 보고서로 남깁니다.

이에 비하여 조선에서는 10년 후 1881년에 일본에 신사 유람단을 보내는데 60명의 중견 관리와 인재를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4개월동안 일본을 견학하고 돌아옵니다.
그후 청국에 영선사를 보내어 무기공장의 기술을 습득하도록 하였지만 보낸 조선의 양반 자제들은 하인들을 대리출석 시키거나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고 그나마 임오군란등으로 중간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근대화를 시작한 것이 불과 10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 왜 일본과 우리나라는 이토록 엄청난 차이가 벌어졌을까요?

사실 일본이 엄청나게 빠르게 성공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들은 명치 유신을 한지 몇년도 되지 않는 1876년에 근대식 군함을 가지고와서 조선의 개항을 얻어냈습니다.

일본의 근대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1. 과거부터 서양과 교류가 있었던 전통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조선도 실학운동이 있었지만 일본처럼 직접 서양과 교역을 하고 교류를 하지는 않았다.

2. 사쓰마나 죠슈번 처럼 개혁 주도세력이 나름 입지와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조선은 그런 점에서 개혁 세력이 개개인의 자각에서 시작되었을뿐 근거지를 지난 붕당이나 지지세력으로 결집하지 못하였기에 수구세력의 
반발에 쉽게 죄절되었다.

3. 조선은 성리학적 질서가 500년동안 너무 강고하게 뿌리내리고  그 세계관에 고정되어 현실에 대응하는 유연한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다.

4. 가장 큰 차이가 일본의 시부사와 에이치 오쿠보 도시미치 그리고 오쿠보 도시미치의 뒤를 이은 이또 히로부미등처럼 철저하게 국가의 부국강병을 위하여 헌신하고 유능하게 정치를 이끌어간 지도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위에 거명한 사람들과 일본의 근대화 주역들의 행동과 능력을 보고 당시 조선의 개화파나 수구 대신들의 면면과 모습을 보면 너무나 차이가 많이나서 결국 조선은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5. 일본 천황과 조선 왕실의 차이다.
일본은 천황의 권위를 회복하고 천황은 내각에 힘을 실어주어 정치적 안정을 가져왔는데 우리나라는 황금 같은 시간과 재물을 대원군과 민비의 싸움 그리고 그후에는 척화파와 수구파의 싸움 민비와 외척의 전횡등으로 허비하고 말아서 근대화의 구심점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고종은 나름 근대화에 적극적이고 어떻게하든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자 하였지만 지나치게 민비와 외척에게 의존하며 민비는 사실상 자신과 외척의 권력유지외에 부국 강병에 대하여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중 하나가 바로 외국의 서적을 번역하는 일이었다.
막대한 국고를 들여서 외국의 모든 책을 번역하여 보급을 시켰던 것이다.
이로인하여 국민들의 의식이 높아지고 안목이 넓어졌던 것이다.

사실 산업혁명 초기와 근대에는 기술의 축적이 크지 않았기에 집중하면 일본처럼 열강의 대열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컸던 시대이다.
일본이 30-40년만에 비행기와 항공모함을 만든 것이 그런 예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해방후 70년이 되었지만 항공기 항공모함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돈때문만이 아닌 기술적으로도 그렇다
지금은 그만큼 고급기술이나 고난도의 소재와 기술이 축적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제 3세계들이 선진국에 진입하는 일은 더욱 힘들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제대로 된 선진국이 되려면 지금 정치 엘리트들이 파당이나 지역의 이익 개인의 안일보다는 국가의 미래를 보고 진취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데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올라가는 정치 행태와 마인드를 보면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