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회사에는 보통 흑인의 10 배의 월급을 받는 네덜란드계 3 세대인 마티아스라는 백인이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매니저급으로 모든 일을 관여하는 줄 알았더니 내가 보기에는 아무리 보아도 빈둥빈둥 거리는 것이 별로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나 바람이 요한네스버그 시내가 아니고 먼 곳으로 영업을 하러 갈 때는 흑인 운전사와 가지 않고 반드시 마티아스를 대동하고 간다. 남아공의 환경에 익숙해서 상황처리 능력이 있는 백인 젊은 녀석을 보디가드겸 해서 데리고 다니는 샘이다. 실제로 같이 다녀 보니 나는 햇볕 아래에는 맥을 못 추는 체질이라서 틈만 있으면 손바닥만한 그늘이라도 찾으려고 열심인데 마티아스는 땡 볕에도 끄덕 없이 몇 시간을 서 있었다. 언제 어디서 어떤 흑인들을 만나도 아무 표정이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거리낌 없이 “Hi! bro!(brother의 줄임말)" 하면서 친근하게 닥아서는 모습이 흑인들이 경계심을 풀면서도 오히려 두렵게 만들었다.

마티아스가 하루에 왕복, 1,000Km 길을 다녀오는데 왕복 2 차선 도로에서 중앙선을 넘어 끊임없이 앞 차를 추월하며 운전을 하는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두른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도로는 좁고 대형 트럭이 많이 다니는 아프리카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실제로 그는 그런 식으로 시속 150 Km 속도로 하루에 2,000 Km도 운전을 해 본적이 있다고 한다.


그와 좀 친해진 다음에 별로 할 일 없이 건들거리며 다니는 것 같아 보여 " 네가 하는 일이 무어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랬더니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 "돈 안내는 놈 위협하는 것, 돈 안내고 도망가는 것 쫒아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마피아 마켓팅이구나!" 했더니 낄낄거리며 웃었다. "언제부터 밝혀 주었다. 그래서 "아니? 어떻게 날짜까지 기억하냐!"고 물었더니 그 날은 자기 생애에서 특별한 날이라서 기억을 한단다.


그가 말하는 특별한 사연은 이렇다. 아버지가 우체국장이라서 집안 식구가 모두 우체국에 일을 하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체국에서 일을 해보니 지루하고 장래성도 없어서 프랑스 외인부대에 지원을 했단다. 2일 간 테스트를 받고 합격을 해서 입대하기 하루 전에 바람 부부가 함께 일을 하자고 해서 마음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마티아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 자신도 젊은 시절에 어떻게 프랑스 외인부대에 들어 갈수 있을까를 꿈꾸던 적이 있었기에 그의 심정이 쉽게 이해가 되었다. IMF시기에 허구적인 한국인 외인부대원 수기가 출판되어 외인부대 입대 붐을 낳아서는 간단한 불어와 적성시험을 대비한 외인부대 입시학원까지 생겼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전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외인부대는 언제나 희망 없는 백성들의 로망인 모양이다.


나중에 하도 궁금헤서 구름에게 마티아스가 회사의 상황으로 볼 때 별로 중요한 일은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직원의 10배를 주면서 그를 써야할 이유가 있는 거냐고 물었다. 구름의 답은 마티아스가 고등학교 때부터 이웃에 살고 있어서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일 뿐만 아니라 가족보다도 더 믿을 수가 있기 때문이란다. 한 마디로 옆집에 살고 있는 건달스러운 백인 청소년을 잘 길러서 평생 데리고 써 먹는(?) 것이다. 더욱이 기가 막힌 것은 바람이 몸이 너무 피곤해서 견딜 수 없을 때 마다 타이 마사지를 받으러 가는데 마티아스를 데리고 다녔더니 단골 타이 마사지 아가씨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회사 통장에 이름이 같이 되어 있어서 마티아스가 마음만 먹으면 돈을 마음대로 인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가 다른 직원들이 하는 일을 하나도 할 수 없어도 신뢰 때문에 그만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신뢰의 값은 이렇게 비싼 것이다!


남아공에 짧은 기간 체류하면서도 남아공 사회를 심층 분석할 수 있었던 것은 방문 기간 전후에 리서치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지난 20 년간 '오고 가는 현금 속에 싹 트는 타협', 게김, 엉김, 막무가내, 약자를 등치는 법 등등 아프리카식의 문화 속에서 산전수전 공중전 온라인전을 두루 두루 거친 구름이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차를 타며 오고 가며 했던 이야기들을 한 번에 모두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휴대폰에 모두 녹음을 해두었다가 돌아와서 듣고서 글을 썼다.


겉에서만 보면 남아공은 글자 그대로 무질서와 혼돈의 나라 같아 보인다. 남아공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지만 애초부터 남아공은 위험을 전제로 설계된 나라이다. 호주의 행정 수도인 캔버라가 행정 중심으로 지어져서 차를 타고 다니도록만 설계가 되어 걷거나 이웃과 소통하기가 어렵게 되어 다른 도시 보다 정신 질환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고 하듯이 남아공은 범죄가 많을 수밖에 없도록 건설이 된 것이다.


보편적으로 세계 어느 곳이나 대 도시는 소득에 따라 주거환경이 구분되는 형태로 되어 있다. 보통 미국의 경우 도시 북쪽에는 고소득층이 거주하고 남쪽에는 비교적 저소득층이 산다. 시드니만 해도 북쪽과 해안가인 동부는 고소득층이 남부와 내가 사는 서부는 저소득층이 사는 것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그런데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악명 높은 '그룹 지역법'(Group Areas Act)이라는 것을 만들어 어느 인종은 어느 지역에서 살아야 한다고 구역을 지정해 놓았다. 이 법에 따라서 흑인은 주거지역에 제한을 받으면서도 백인들이 쉽게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백인 거주 지역 가까이 흑인 거주 지역을 하나씩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 흑백이 비교적 가깝게 아귀다툼의 가족적가축적인 분위기로 섞여 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주거 조건이 천국과 지옥 만큼이나 격차가 벌어진 상태에서 어느 누가 편안하게 살 수 있겠는가? 오히려 편안하면 반측이지....


우리 나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심하게 무장을 하고 대치된 상태에서도 잠 잘 자고 밥 잘 먹고 살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있는 사람은 철조망에 전기펜스를 두르고 살고 없는 사람들은 호시탐탐 침입할 기회를 엿보며 사이 좋게(?) 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은 우발적인 범죄 보다는 기획범죄의 목표물이 되지 않기 위하여 전 국민이 신병훈련소에서 배우는 사주경계를 생활화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르크스가 표현 했던 대로 명실상부하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모두가 서로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고 남아공은 세계 최대의 보안 시장이 되었고 확인, 점검이 일상화 된 것이다. 한 마디로 남아공에서는 어디나 모든 문에는 실제로 문지기가 붙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남아공의 집들이 철조망이나 전기 펜스를 친 것을 보고 우리나라의 5,60 년대가 떠올려졌다. 물론 우리는 남아공처럼 범죄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공권력이 강력한 분단 체제의 국가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라서 모두들 먹고 살기가 어려웠기 까닭에 좀도둑들이 많았다. 그래서 집들의 담이 높았고 담을 쌀 때 철조망을 치거나 유리병을 깨어서 올려놓기도 했었다. 그 당시 신당동에 성처럼 높은 담을 쌓고 살던 이병철의 집이 생각났다.


만델라가 낳고 자란 SOWETO는 전통적인 요한네스버그 흑인 밀집 빈민지역으로 악명이 높았던 지역이다. 지금은 정부에서 방 2개짜리 오막살이집을 한 쪽에서 계속 짓고 있지만 인구 1,000만의 요하네스버그의 거의 절반이 사는 SOWETO 지역의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걸음마 단계이다. 주민의 절대 다수는 아직도 절대빈곤에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SOWETO 지역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해서 빈곤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의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기도 하다.

남아공이 백인들 중에서도 과거에 전쟁까지 치렀던 영국계와 네덜란드계의 불편함, 남아공 주민들과 이웃 나라에서 흘러 들어오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 빈부의 격차에서 빚어내는 높은 범죄율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운영이 되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만약에 어느 날 남아공의 모든 흑인들이 부처나 예수와 개별 카운셀링을 받아서 범죄가 없어진다면 수많은 경비 산업 인력, 경찰 등등 당장 실업자 신세가 되어 국가가 지탱될 수가 없을 것이다. 적당히 도둑과 강도도 있고 적당히 경찰도 있고 하면서 사회가 굴러 가고 있는 것이다. 한 직장, 한 사무실에서 월급의 차이가 10배, 20 배, 심지어는 100배의 차이가 나도 폭동이나 내란이 일어나지 않고 그런대로 굴러가고 있는 곳이 바로 남아공인 것이다.


남아공은 단순히 한 국가가 아니라 사람과 물자, 돈이 모두 이곳에 모이고 흩어지고 있는남부 아프리카의 허브와 같은 곳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위험 하다느니 가난하다느니'하고 단순하게 평가하거나 단정 할 수 없다. 위험한 가운데 안전한 곳도 있고 가난한 가운데 돈이 되는 것도 있는 세상의 모든 혼란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런 나라이기 때문에 틈새에 강한 한국인의 체질에 딱 맞는 곳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이 어떤 인간인가? ‘척하면 3척이고 '쿵'하면 담 넘어 호박 떨어지는 소리에 익숙한 눈치와 깡, 약싹 빠름 없이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던 민족이 아니던가?

그런 까닭에 이런 땅에서라도 위로는 한 수 위인 유태인, 중국인, 인도인 형님들을 모시고도 생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영어가 좀 되고 약간의 자산이 있고 한국에서 별 볼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내일 당장 남아공 티켓을 사라고 권하고 싶다.


일요일에 노천 마켓에 갔다. 중국 사람들이 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고 있지만 남아공은 중고품이 먹여 살린다. 중고품이 없는 것이 없었지만 흥미 있는 것은 철근 등의 건축 자재도 판다는 것이다. 그 무거운 것들을 트럭에 실고 와서 팔다가 안 팔리면 도로 실고 가는 것이다.

바람 부부도 처음에 한국에서 입지 않는 중고품 옷을 벌크로 사다가 노천 시장에서 파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그들은 소자본을 만들어서 한 달에 한 번씩 중국을(한국에서가 아니라 남아공에서) 가서 안경테를 사와서 일 주일에 몇일 씩 팔러 돌아다니는 보따리 장사를 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보따리 장사를 하는 이야기는 들어 보았어도 바람네처럼 남아공에서 지구의 정반대편인 중국으로 보따리 장사를 한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일주일의 대부분의 시간을 비행기가 아니면 차에서 지낸 샘이다.

바람네는 지금까지도 돈 때문이라기보다는 환경 때문에 중고품을 산다. 심지어는 기르는 3 마리의 개도 신품이 아니라 유기견 센타에 후원금을 내고 중고품을 데려다 기르고 있다.


토베카


사무실에서 청소와 주방을 담당하는 40대 여자인 토베카는 매우 단정한 모습에 머리 모양이 매일 바뀌었다. 알고 보니 가발을 썼고 가발을 여러 개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보통 한 개에 15,000원 정도 하는 가발을 3,4개 씩 가지고 조심스럽게 관리하면서 쓰던지 대충 쓰다가 버린다든지 한다. 흑인들은 머리칼이 길게 자라주지 않기 때문에 멋을 부리려면 연장을 해야 하는데 동네에서 야매로 하면 만원 제대로 된 미장원에 가서 하면 3,4만원 한단다. 그런데 머리를 그렇게 재개발하면 삼프로 시원하게 감을 수가 없기 때문에 물을 대충 뿌려서 청소를 한다고 하니 얼마나 불편할까?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몇 달 동안이나.

이런 흑인들 덕분에 가발 장사하는 한국 사람들이 먹게 살게 되는 것이다. 가발 장사를 하는 교민에게서 아프리카 열대에서는 백인이나 황인종의 머리처럼 착 달라붙는 머리카락은 습진이 생기기 쉬워서 적당치 않고 흑인들의 머리처럼 꼽슬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창조주의 오묘한 뜻을 알게 되었다.

흑인들의 머리카락은 나사같이 살을 파고 들어간단다. 그래서 흑인들의 머리빗은 황인종이나 백인들이 사용하는 빗과는 달리 ‘솔’ 같이 생겼단다. 더욱이 흑인용 삼푸는 사람이 사용하는 삼프가 아니라 말의 꼬리를 닦을 때 쓰는 삼프란다. 그런다보니 독한 삼프를 써야 해서 머리카락이 상한단다.

흑인들에게는 스트레이트파마가 유행인데 꼬부라진 머리카락을 곧게 피려면 돈이 보통 많이 드는 게 아니란다. 특히 소위 레게 머리라고 하는 머리를 꼬는 것은 무척 돈이 많이 든단다. 이처럼 흑인들에게는 머리관리가 최고의 우선권을 차지해서 통계에 의하면 식비의 1.5배가 머리 관리에 들어간다고 한다. 하여간에 흑인들의 머리 관리에 대한 정성과 노력은 그들의 경제 규모로 볼 때 가히 우주개발에 맞먹을 정도(?)로 투자와 정성을 쏟고 있는 현실이다. 오죽하면 흑인 사회의 대학가에서 ‘머리를 내추럴 하게 놔두자‘는 캠페인까지 벌였을까?


사실은 흑인들은 원시 상태 부터에서도 자기 몸을 치장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보았듯이 팔과 목에 현란한 구슬을 두른다든지 머리카락을 복잡하게 땋는다든지 하는 것이다. 아마도 자연세계의 단조로운 생활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생계비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대가를 치루면서 치장을 하는 현상이 자연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도 오로지 서구적 미의 기준에 따라서.


구름이 나에게 흑인들이 사는 모양을 보여주겠다는 배려에서 청소부 레베카를 데려다주기로 했다. 사실은 얼마 전에 레베카가 이사를 했는데 격려금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사는 곳도 가보고 돈도 주려고 하는 의도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가는 길에 묘한 일이 있었다. 구름이 흑인들이 이용하는 쇼핑센터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오겠다면서 차를 세우고 레베카에게 "너는 필요한 것이 없니?"라고 물었다. 레베카는 '없다.'고 했는데 그 뉘앙스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구름이 차에서 내리자 레베카가 두터운 입술답게 더듬더듬 이야기를 하는데 구름이나 바람이 너무 잘 해주기 때문에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어도 미안해서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분명히 나도 "너 살 것 없니?"라고 들었는데 레베카는 "무엇을 사줄까?'로 이해를 한 것이다. 양 쪽 다 그 정도 영어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닌데 의사소통의 오해가 생긴 것이다. 왜 그런 오해가 생겼는지는 그 다음 이야기에서 밝혀졌다

구름과 바람은 늘 고용인들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려고 노력을 했기 때문에 그 날도 현이 '너 살 것 없니?"라고 물었을 때 "내가 사줄 터이니 필요한 것이 없니?"로 이해를 했던 것 같다. 나중에 구름에게 물어보니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잠시의 혼동이었지만 그것은 감동적인 혼동이었다.

구름이 거침없이 흑인들 사이를 걸어가는 것을 보고 토베카에게 '이 지역은 안전한 모양이지?'하고 물었더니 구름과 바람은 보통 흑인이 아니면 가지 않는 지역에도 전혀 꺼리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드나든다고 했다. 자기는 이 회사에 다니는 것이 매우 좋다면서 바람 부부에 대해서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토베카는 기술직이 아니기 까닭에 회사 안에서 비교적 적은 임금인 300불 정도를 받고 있다. 그런데 그녀의 집에 가보니까 방범 창살이 설치된 깨끗한 방에 침대를 비롯한 가구를 제대로 잘 갖추어 놓고 살고 있었다. 그녀는 월 90불 정도의 방세를 지불하고 있는데 좀 더 싼 곳도 있지만 안전을 위해서 이 곳을 택했다고 한다. 모든 집에 전기가 흐르는 담장이 기본인 남아공에서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은 가진 사람대로 적게 가진 사람은 적게 가진 대로 안전을 위해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니까 에릭 프럼이 말하는 소유가 존재를 위협한다는 말은 여기에서도 증명이 되는 셈이다.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이 사회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아서 잃어버릴 걱정이 전혀 없는 사람일 것이라는 결론도 나올 수가 있는 것이다. 하기야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염려해야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닌가?


회사에는 남아공에서 두 개의 나라를 통과해야 갈 수 있는 말라위에서 온 흑인들이 있다. 같은 아프리카이지만 말라위는 영어권이 아니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지만 일거리를 찾아서 남아공으로 내려온다. 회사에서 1년에 한 달간 유급 휴가를 주는데 문제는 고향에 갔다가 제 시간에 맞추어 돌아오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길거리에 나가면 모퉁이 마다 자기를 불러 주기를 바라면서 하루 종일 서 있거나 앉아 있다가 오후까지 불러 주는 사람이 없으면 점심도 굶은 상태에서 걸어 갈 힘조차 없어서 휘청거리면서 양철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인데 그들은 왜 제 때에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휴가를 얻어 귀향을 하는 사람은 고향에 가서 팔 수 있는 물건을 사 가지고 가서 파는데 수금이 안 되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혹자는 아니? 돈을 벌러오는데 그냥 오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국경을 통과할 때 200불 정도의 돈이 없으면 통과를 시키지 않기 때문에 그 돈이 없으면 오지 못하는 것이다. 무작정 떠돌아다니는 것을 막기 위한 법이지만 안정된 직장이 있는 사람의 통행에도 지장을 주는 것이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정해진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사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당사자가 돌아왔을 때 일자리를 없앨 수가 없기 때문에 파트타임으로 다시 시작하는 방법을 쓰려고 한다. '생산 양식이 인간의 상황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던 마르크스가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