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전에 자주 보던 분들은 아마 이 이름을 기억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사실은 그의 드라마를 한편도 본 일이 없다. 드라마를 자주 보는 아내 말에 의하면

한때 시청율 기록도 갖고 있던 유명 작가라고 한다. 검색해보면 작품과 간단 이력이 금방 나올텐데 나는 그것도

한바가 없다. 이 조소혜 님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으나 한참 활동할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되었다. 이 작가와 나 사이에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한참 거슬러 올라가 6월항쟁이 한창이던 시기 작가회의 작은 강당. 당시 나는 데모와 농성을 주도? 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에도 농성을 위해 바닥에 스치로폴을 깔고 앉아있는데 웬 개량한복을 입은 서른 남짓 사내가 내 앞으

로 와서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전국단체이므로 당시 지방이나 곳곳에서 얼굴도 모르는 시인 작가들이 농성 때나

데모 때가 되면 모여들었다. 그는 아마 시인이던가. 그가 인사를 하고 나서 내게 뜬금없는 말을 했다.

"저희 이모님이 늘 선생님 얘길 하십니다. 선생님께 매우 고마워하고 계세요."

"...? 이모님이 누구신데요?"

"조소혜라고 드라마 작가이십니다. 물론 잘 아시겠죠."

"조소혜...?  아아 기억이 납니다. 알고 있지요. 그렇군요. "

그 이름을 내가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름이 흔한 이름은 아니었던 탓이었다. 그렇구나. 결국 그렇게 되었

구나. 나는 얼른 속으로 생각했다.

"조소혜씨 지금 서울에 있나요?"

"롴키 산맥 근처로 휴양 가셨어요. 한달 뒤 쯤 오실 겁니다."

실내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사실 더 할 말도 없었다. 드라마 작가는 돈을 잘 버니까

여름에 휴가여행도 롴키 산맥으로 가는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야기는 또 여기서 한참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70년대 후반쯤 되지 않나 생각된다. 조선일보 뒷골목에

<삼조사>라는 출판사가 있었다.  사장이 사교성이 좋아서 몇몇 작가들과 번역자가 한때 거기서 자주 만나

바둑도 두고 가끔 술도 한잔씩 마시고 이런저런 얘길 나누곤 했다. 마흔 다 되어 늦게 결혼한 나는 신혼기

였던 걸로 기억한다. 하루는 외출에서 돌아온 사장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 밖에서 누가  선생님을 꼭 만나뵙겠다고 하는데요."

"....?"

"옆 골목에 있는 <수향>이란 찻집에서 지금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웬만하면 한번 만나보시죠."

"그런데 누구죠? 왜 나를 만나겠다는 거죠?"

그 자리엔 다른 작가도 두어명 더 있었다.

"가보시면 아실 겁니다." 사람 좋은 사장이 씨익 웃었다. 나도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무료하던 참인데

잘 되었다 싶어 나는 얼른 밖으로 나왔다. 찻집은 손님이 거의 없고 조용한데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를

곱게 입은 웬 처녀가 한쪽에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흔한 말로 맡며누리 감처럼 복스럽게 생긴

얼굴이었다. 내가 나타나자, 그녀가 벌덕 일어서서 내게 인사했다.(계속

*더치커피 한잔 마시고 담배 한대 피운 뒤 금방 속편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