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의 잠재력을 평가할 때 IQ를 사용한다. 그러나 IQ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온갖 지능들 중 주로 과학기술 능력을 측정하는 방법일 뿐이다. 어떻든 지금까지 실시된 수많은 IQ 검사들을 볼 때 인종 간 점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대체로 동아시아인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이 백인이며, 아프리카 흑인은 백인보다 훨씬 낮다. 여기서 인종 개념이 거시기 하다면 '개체군(population)'로 바꾸어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균적으로 보아서  흑인은 대체로 백인에 비해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처해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 현실이다. 흑, 백인종을 평균적으로 비교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꼴이다. 정확한 결과 치를 얻으려면 동일 소득수준, 유사한 주거환경, 유사한 교육환경에서 측정해야 하지만 모든 환경적 요인들을 그처럼 완벽하게 통제한 후에 IQ를 측정해야하지만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측정한 통계의 결과를 가지고 흑인은 선천적으로 백인보다 IQ가 낮다는 주장한다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을 무시하고 흑인이 백인보다 선천적으로 IQ가 낮을 리가 없다고 믿는 것 또한 자칫하면 도덕주의적 오류(moralistic fallacy)에 빠질 수가 있다. 왜냐하면 개천에서는 용이 아니라 미꾸라지가 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듯이 열악한 흑인들의 현실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어디까지나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흑인들의 관리 능력이 매우 부족한 것은 현실이다. 거리에 나가 보면 일자리를 구하며 서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남자들이다. 남아공에서 여자들이 남자 보다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것은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정부 자리는 많지만 정원사 자리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흑인 여성들이 흑인집 보다는 백인집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만하다. 그러나 바람 부부는 지난 16년간 흑인들을 고용해서 일을 하거나 가르쳐 보면서 때로는 실망하고 포기하고 체념하면서 이제는 나름대로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그것은 같은 내용을 수 없이 반복 교육하면서도 내가 지치지 않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나름의 도가 튼 것이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바람 부부와 나는 흑인 가정부가 만든 음식을 먹었고 직원들은 각자가 가져온 음식을 먹었다. 음식의 질에 있어서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라고 해봐야 다른 직원들이 먹는 것과 별로 다른 것이 없는 밥과 토마토, 오이, 당근, 배추를 썰어 놓은 것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이 정도 음식이라면 어차피 가정부도 있으니까 회사에서 만들어서 다 같이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나중에 바람 부부가 직원들 점심 문제로 이야기를 했다. 구름이 ‘직원들 점심을 해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냈지만 평소에 직원들에게 엄격하다고 할 구름에 비해서 어머니처럼 모든 것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바람이 동의를 하지 않아서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이 되었다. 알고 보니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회사에 이웃 나라도 아니고 남아공으로 오기 위해서는 두 나라를 거쳐야만 올 수 있는 말라위에서 새로 온 4명의 직원이 있었단다. 처음에 그들이 교통수단도 불편한데 아침 8시 까지 출근을 하려면 밥을 못 먹고 올 것이 뻔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다른 직원들이 “우리는 왜 밥을 안주느냐?”고 이의를 제기해서 중단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단 어떤 것을 제공하기 시작하면 그 이유와 과정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나에게’ 혹은 ‘더 좋은 것을‘ 주기를 바라는 심리 때문에 섣불리 시작하기가 어려웠던 것이었다.

인간에게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은 가장 기본적인 먹는 문제 이전에 먼저 고려해야할 것은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했다. 물론 이 문제는 흑인들의 의식의 문제라기보다는 사용주와 고용인의 의식의 차이의 문제일 것이다. 비록 사용주가 선의를 가지고 있어도 고용인들의 그 선의를 받아드릴 수 있는 의식이 없으면 실행이 되기 어려운 것이다.


선택적 기억


쿠루가 국립공원을 가는 길에 도시를 벋어나자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대규모 농장들을 보면서 투투 대주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에 왔을 때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함께 기도하자!' 하였고 우리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을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듯이 그 말 역시 사실의 한 단면을 말해 줄 뿐이다.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를 단순하게 생각하면 부유한 백인들이 토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흑인들이 굶주리는 것 같이 생각되지만 사실은 정반대로 백인들의 대규모 농장 때문에 흑인들이 그나마 굶어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전통적으로 흑인들이 해왔던 가족농 단위로 농사를 지어서는 현대의 식량문제가 해결될 수 없고 대규모로 농업을 해야 하는데 흑인들은 그럴만한 관리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순히 농장주의 지시를 받아 일만 했을 뿐 언제 어떻게 과학적으로 농장을 운영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좋은 예로 백인을 강제로 내쫒고 땅을 빼앗은 짐바브웨가 나락으로 떨어져 국민들의 대탈주 사태를 빚어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쿠루가 국립공원에 도착해서 동물을 찾아서 신경을 곤두세우며 초원의 전후좌우를 살피다보니 40년 전 월남에서 목숨이 걸린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거기에 오랜 동안 단련된 택시운전사의 주행 중에 주변 환경을 감지하는 동물적 감각(?)은 바람 부부와 원주민인 흑인 운전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번번이 그들이 미처 보지 못한 동물들이 내 시각에 먼저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놀란 것은 나뭇잎 사이에서 코끼리를 발견한 것이 아니고 남아공 사람인 흑인 운전사가 코끼리를 난생 처음 본다는 사실이었다. 믿어지는가? 흑인이 코끼리를 처음 본다는 사실이? 운전사의 말로는 시골인 자기 동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임팔라라는 사슴 종류 밖에 없다고 한다.

국립공원 안에서 볼 수 있는 관광객은 대부분 백인들이었다. 보통 흑인들은 근처에 살아도 비용 때문에 들어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보호되는 국립 자연 공원 안에서도 동물을 보기가 어려우니 밖엔들 오죽하랴? 아프리카에 동물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졌다. 실정이 그렇다보니 이틀을 헤매도 동물의 왕인 사자를 알현하는 기회는 허락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만 잊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캐빈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에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출발해서 한 시간 쯤 지났을 때였다. 길 가에 동물들이 있어서 찍으려고 캠코더를 찾다가 소형 캠코더와 여권, 비행기 표가 들어 있는 가방을 두고 온 것을 깨닫게 되었다. 순간적으로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바람 부부를 성가시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가자고 했다. 가방 안에 돈은 거의 없었고 그동안 찍은 자료가 아깝기는 하지만 캠코더는 50불짜리 싸구려이고 비행기 표는 없어도 되고 조금 번거롭지만 호주 영사관에 가서 임시 여권만 다시 발급받으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남아공에서 더욱이 관광지에서 여행객이 두고 온 물건을 다시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람이 무조건 돌아가 보자고 주장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가면서 생각하니까 분명히 숙소에서 모든 것을 가지고 나왔고 레스토랑에서는 '여기서는 캠코더를 찍을 일이 없으니 가방을 차에 두고 내리자.'는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러므로 내 기억으로는 가방을 숙소에서 가지고 나왔고 식당에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차에 있어야만 하는데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적으로 추리를 해 보자면 내가 숙소에서 가방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 나는 식당에 들어갈 때 '캠코더를 찍을 일 없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분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숙소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쓰레기를 버리려고 한 손에는 쓰레기를 들고 다른 손으로 쓰레기통을 열다가 무심코 가방을 쓰레기통 옆에 놓고 왔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헛수고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거의 체념한 마음으로 다시 한 시간을 달려서 숙소에 도착하니 흑인 여성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내가 설령 숙소에 가방을 두고 갔어도 떠난 지 이미 2시간이나 지났으니 가방이 있을 리가 없었지만 쓰레기통까지 뒤져보고 관리실에 전화도 해 보고 했다. 그 사이에 바람은 내가 분명히 식당에는 가방을 들고 가지 않았다고 계속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숙소에 없으면 식당에 가보는 것이 순서라고 차를 타고 식당으로 갔다.


얼마 후에 운전사가 혼자 오더니 내 가방 비슷한 것이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다시 차를 타고 식당을 가니까 바람이 내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나는 남아공에서 주인을 잃은 가방이 2 시간이나 무사히 살아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이 믿기 어려운 미스테리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오히려 손님이 많은 식당이기 때문에 보는 눈이 많아 웨이터가 가방을 숨길 수가 없고 매니저에게 가져다 맡겼을 것이라는 추리를 해 볼 수 있었다.


가방을 찾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기가 막힌 것은 내 기억이 어떻게 그렇게 잘못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기억을 하고 정작 손으로 가방을 들고 들어갔던 행동은 기억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즉 나는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 만 기억하는 소위 '선택적 기억'을 했던 것이다. 만일에 바람이 내 기억을 존중해서 그냥 돌아갔다면 나는 영원히 가방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 우리 일행은 '인간의 기억은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라는 교훈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나는 도무지 내가 어떻게 그렇게 거짓 기억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한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미국에서 증인들의 잘못된 기억으로 죄 없는 사람들이 유죄 판결을 받아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고 심지어는 사형까지 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배고픈 흑인들


쇼핑센터에 갔다가 우유 값이 호주보다 많이 싸지 않은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국민소득이 호주의 1/3밖에 안되고 평균 흑인들의 수입이 1/10에 불과한 나라의 우유 값이 호주와 비슷하다니 가난한 흑인들이 어떻게 우유를 먹을 수가 있단 말인가? 호주에서는 아이들이 우유를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다. 최근에는 우유도 몸에 별로 좋지 않다고 해서 다른 대체 음료를 찾는 판이다. 그러나 아프리카 내륙으로 들어가면 우유는커녕 물조차 마음대로 마실 수 없는 환경도 많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출근길에 바람은 하루 종일 거리에 서서 먹지도 못하고 일거리를 구하고 있는 흑인들에게 주일에 샌드위치와 음료수라도 나누어 주었는데 좋겠는데 한 주간 내내 힘들게 일하고 주일 하루를 쉬는데 그 날마저 일을 하면 몸이 감당 할 수가 없을 것 같아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 도와준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질만한 곳이 없다는 판단이다. 교민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너무 많아서 걱정인 교회들이 있지만 그들을 참여 시켰다가는 선교를 내 세울 것이 뻔 하기 때문에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순수하게 봉사할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바람이 2 시간에 한번 씩 화장실을 가야 하는 건강 상태에서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면서 한국에 있는 조카들의 생일까지 일일이 챙기고 주변에 있는 사람 병원까지 데려다 주고 하는 것을 보면 그 조그만 몸뚱이에서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에너지가 나오지는 탄복할 지경이다. 쉴 사이 없이 움직이며 일하면서도 늘 베풀고 배려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오죽하면 사람 없는 산 속에 들어가서 일주일만 있다 오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까 싶다. 물론 이 모든 일이 옆에서 황소같이 일하는 만능 재주꾼 구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