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넥센이 승리하기를 바랬지만 삼성이 승리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 2014년 코리안 시리즈의 나의 관전포인트

왜냐하면, 두 팀의 대결은 한국프로야구 지향점 상징의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더하여 넥센은 물론 삼성이 승리한다 해도 한국프로야구사의 '새로운 역사'가 써지는 것이고 따라서 '스토리텔링 거리'가 풍성해질 것이기 때문에 '어느 팀이 승리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램은 이 두 팀 대결의 상징성에 비하여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단지, 그럼에도 넥센이 승리하기를 바랬던 것은 '있는 집 자식'과 '없는 집 자식'의 대결구도에서 약자를 편들 수 밖에 없는 정서와 두 팀 대결의 상징성에서 삼성의 상징성보다는 넥센의 상징성이 부각되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삼성이 가지는 상징성은 한국프로야구가 지향해야할 '시스템 야구의 완성', 넥센이 가지는 상징성은 또 하나의 지향점인 '프로야구구단 운영의 독립성'이다. 그리고 삼성의 '시스템 야구의 완성'은 굳이 이번 코리안 시리즈에서 우승하지 않아도 완결이 될 것이지만 넥센의 '프로야구구단 운영의 독립성'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없는 집 자식'을 편드는 정서와 맞물려 넥센이 승리하기를 바랬다.


그리고.......... 이 두 팀이 가지는 상징성의 달성은 바로 한국프로야구의 출발 이유인 '독재정권의 우민화 정책', 환원하여 아직도 한국프로야구에 짙게 그림자를 드리고 있는 '독재 정권 시절의 잔재'를 씻어내는데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는게 내 판단이다.


사실, either way이다. 무슨 소리냐 하면 삼성의 '시스템 야구의 완성'은 넥센의 '프로야구구단 운영의 독립성'에 버금가는 모기업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또 다른 방법이니까. 한국프로야구단에서 논란의 도마 위에 자주 오르는 '프론트'의 잡음에서 '삼성 프론트'는 거의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없다는 것은 이를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2. 김성근 감독, 형용모순적인 존재

김성근 감독. 위인전이나 자서전 읽기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꼈던 나에게 '김성근 자서전을 읽어볼까?'라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인물. 거부감이 호기심을 압도하여 끝내 읽지는 않았지만 한국프로야구에서 그의 존재는 형용모순적인 존재이다.

그는 독재의 잔재로 존재하면서 또한 한국프로야구에 짙게 드리운 독재의 잔재를 거두어낼 '종결자'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삼성의 '시스템 야구의 완성'으로 인한 독주가 계속된다면 타구단에게는 '아, 기업의 대결에서와 같이 프로야구에서도 삼성에게는 안되는구나'라는 포기감을 불러일으켜 현재의 운영체제를 답습하게 하거나 넥센이 우승하고 나아가 그 우승을 몇번 지속한다면 '있을 수 있는 헤프닝'으로 치부되겠지만, 김성근 감독의 존재와 그에 따른 유의미한 성적은 다른 프로야구단의 분발을 일으킬 것이다. 김성근 감독이 SK프로야구단의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이 가장 높았다'라는 '대세적인 평가'가 이를 방증한다.


2015년 프로야구의 관전포인트이다. 더우기 만년 꼴지였던 한화의 감독으로 부임하였기 때문에 과거 김성근 감독의 업적과는 달리 한화가거둘 성적에 따라 한국프로야구가 현재의 양태를 답습할 것인지 분발의 촉매제로 작동할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고 만일, 유의미한 성적을 거둔다면 삼성이나 넥센이 가지는 상징성의 한계인 타구단의 분발 촉구를 확실히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년 꼴지였던 한화에 뒤쳐진다는 것은 선수는 물론 감독도 스스로 무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니까. 더우기 벌떼야구로 표현되는 김성근 감독의 경기 운영스타일은 상대방에게 '약올림'으로 작동해서 지고는 못살게 만드니까. 과거 SK프로야구단과의 경기가 유독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고 또한 치열한 게임이 많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다른 프로야구단의 분발을 촉구하고 야구경기 수준이 높아진다면 삼성과 넥센이 가지는 상징성이 프로야구판 전체의 표준이 되지 않을까? 마치, 물론 내 개인적으로는 국보급 선수인 선동열 선수의 프로야구 감독으로서의 자질은 상당히 의심스럽게 생각하지만 그에 관계없이 선감독이 표방했던 '지키는 야구'가 현재 프로야구판의 정답으로 자리매김된 것처럼 말이다.


나의 예상이 현실화된다면 프로야구에 깉게 드리워진 독재의 잔재는 꽤 거두어질 것이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이 독재의 잔재라는 위치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프로야구가 고교야구처럼 감독이 일일히 간여해야한다는 것은 해결되지 않으므로. 그리고 그건 김성근 감독과는 무관하고 또한 김성근 감독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왜?


진짜 문제는 '엘리트 스포츠를 표방했던' 그래서 '운동기계를 양산했던' 그리고 과거의 유산을 청산하기는 커녕 더욱 심화되어가는 것이 현실이므로. '생각없는 운동기계들'에게 김성근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기계들에게 윤활류를 더 쳐서 정확하게 동작시키는 것이 고작이므로.


김성근 감독이 입에 침이 마르게 주장하는 '생각하는 야구' '플레이의 존재의 이유'를 현재 대한민국 프로야구 선수들이 이해하기란 솔직히 그들은 성장과정에서 '생각'과 너무 동떨어져 커왔으니까.


소질은 열심히 하는 것을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 열심히 하는 것은 즐기며 하는 것을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성근 감독이 말하는 '간절함'의 위력과 한계가 어느 지점인지 가늠할 것이다.



3. 김성근 감독의 또다른 존재의 의미,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시대에서 박카스 같은 존재


'확인되지 않은 설'에 의하면 프로야구 단장회의에서 '김성근 감독'을 감독으로 임명하지 않을 것을 합의했다고 한다. 김성근 감독이 프론트와 마찰을 일으키는 주된 이유가 바로 '성적만큼 선수들에게 보상하라'라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설로 치부하기에는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재벌들의 카르텔에서 한화만 자유로왔겠는냐?'라는 타당성 있는 의문 제기는 '아들의 복수를 위해 조폭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한화 김승연 회장다운 결단'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그 의문을 희석시키고 한화팬들의 '1인 시위'가 이 타당성 있는 의문 제기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만일 이 '확인되지 않은 설'이 사실이라면 재벌은 물론 대기업의 '간부를 대상으로 한 리더쉽을 주제로 한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한국 재벌의 이중성 나아가 한심하기 이를데 없는 인식이 현재형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 증명은 롯데의 CCTV 사건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어쨌든, 이 '확인되지 않은 설'을 뒤로 하고 김성근 감독은 만년 꼴지 한화의 감독으로 임명되었고 그 것은 하나의 신드롬으로 작동했다. 오죽하면 2014년 코리안시리즈보다 더 많은 기사의 소재가 되었다는 우스개 소리가 우스개가 아닌 사실이 되었을까?


비록 우리나라에서 단 열 명만이 자격을 부여받는 프로야구감독이지만 김성근 감독 신드롬은 그동안 프로야구 역사에서 화제가 되었던 것 중 '최동원의 코리안 시리즈에서의 4승'과 '몸만 플어도 상대방이 주눅이 든다'는 선동렬 현역 시절의 화제와 류현진의 거액으로 MLB에 진출하였을 때의 화제 이상으로 화제를 일으켰다.


오죽하면, 김성근 감독에게 지불해야할 계약금과 3년 연봉의 합계인 20억의 수십배를 한화는 이미 회수했다..라고까지 할까?


김성근 감독 신드롬은 그의 '이기는 야구'를 즐겨하는 팬들과 '쫌생이 그리고 상대방 약올리는 경기 운영'에 심한 거부감을 가지는 팬들이 합작해낸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의 화룡정점 격으로 박카스가 살포시 얹어져 있다.


박카스.

'정'이라는 코드로 장안의 회제를 불러일으켰던 오리온 초코파이 이상으로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그 박카스의 정서가 바로 김성근 감독의 만년 꼴지인 한화 감독 취임으로 야구팬은 물론 야구팬이 아닌 네티즌들까지도 정서를 달랬다.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일등이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팍팍한 현실에 지친 네티즌들의 정서를 촉촉하게 달랬다는 것이다. 만일, 만년 꼴지였던 한화가 아니라 그럭저럭 성적을 내는 프로야구단에 취임했다면 김성근 감독 신드롬은 지금처럼 강렬하지 않았거나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선수들의 회식자리를 피하는 것은 특정선수에게 편애하는 마음이 생길까봐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프로야구팬이라면 김성근 감독이 스타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선수는 주전에서 빼버린다는 것을 알고, 그래서 물론 그들이 유능하지 않기 때문에 조직에서 일등이 되지 못하지만, 그걸 인정하더라도 그들이 조직 내에서 찬밥신세가 되는 이유는 '조직이 개개인에게 공평하지 못한 이유도 상당하다'는 정서가 지배적인 대한민국에서 김성근 감독의 이런 언행은 그 언행만으로도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만일, 김성근 감독과 같은 리더가 우리 조직에 있었다면?'이라는 소망... 나아가 간절함이 김성근 감독 신드롬의 또다른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김성근 감독의 존재는 무한경쟁에 지친 네티즌들에게 활력소가 되는 박카스와 같은 것이리라.




4. 삼성은 박카스를 마셔야 한다


김성근 감독의 한화 감독 취임으로 발생된 박카스와 같은 활력소는 삼성에서 종결될 것이다.


삼성은 차갑다. 일등주의의 이미지에 하필(?) 로고마저 파란색이다. 한 때, 삼성에서 박카스 선전을 보고 '우리는 저런 광고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자탄을 했다고 한다. 아마 삼성이 박카스 광고와 같은 광고를 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뭥미?'라며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그런 삼성이 박카스를 마실 것인지의 양자택일의 앞에 있다. 삼성의 시스템 야구는 FA논란에서도 그 우수성을 입증한다. 그 것은 바로 '섬성에서 계약을 포기한 FA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이다'라는 주장으로 그동안 삼성프로야구단에서 계약이 안되 타구단으로 옮긴 FA들의 성적이 이를 방증한다.


그런 우수성(?)이 입증된 삼성의 시스템 야구 앞에 박카스라는 양자택일의 과제가 던져졌다. 그 것은 바로 '푸른 피의 에이스'라는 배영수 투수이다. 삼성팬에게 배영수란 그 간절한 우승을 삼성에 가져다 주기 위하여 자기의 몸이 망가지는 것도 불사한, 삼성프로야구단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삼성의 상징처럼 된 이만수 전 SK감독조차도 이런 진한 사랑을 받지못했다. 그 이유는 어느 네티즌의 술회에서 느낄 수 있다.


"4연패가 족하다고? 그만하라고? 선동렬에게 짓밟히면서  그리고 그 이후로 20년 동안 우승의 문턱에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던 심정을 너희가 이해하기는 해? 앞으로 10년 동안 최소한 다섯번 이상은 우승해야 그 눈물 흘렸던 세월을 보상받을까 누가 4연패가 많다고 하는가?"


유독.. 선동렬 전 기아감독의 기사에 지역차별드립은 물론 기아팬으로 보이는 한 네티즌의 비야냥인 '쟤네들은 자기 프로팀의 기사에 댓글 달지 않고 꼭 기아 기사에 와서 땡깡이더라'라는 말이 허투로 들리지 않는 이유이다. 그 이유를 뒤로 하고 '푸른 피 에이스' 배영수는 이런 '우승의 간절함'을 어느 정도는 해소하게 만들었으니 삼성팬으로서 배영수 선수는 선수 이상의 존재 의미를 가진다.


그런 배영수가 이번 FA 계약에서 삼성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배영수 선수의 '나만 삼성을 짝사랑 했던가?'라는 발언이 보도되자 삼성팬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삼성팬들은 성금을 모아 대구지방 신문에 상기와 같은 광고를 냈다. 이제 공은 삼성으로 넘어갔다. 삼성은 '푸른 피 에이스'라는 정서와 시스템 야구에서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어 보이는 과거 에이스라는 현실적 판단'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삼성이 박카스를 마실지는 삼성의 판단이다. 그리고 나는 삼성이 어떤 선택을 하던 지지를 보낼 것이다. 아니, 냉정하게 말하자면, 물론 삼성팬들에게는 섭섭하고 도한 비정할지 모르겠지만 배영수를 떠나 보내주는게 맞다...라는 판단을 한다. 그게 시스템 야구이므로. 그러나 프로야구 판 전체를 생각한다면 잡는게 맞다...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왜냐하면, 배영수를 떠나 보내는 것이 삼성의 시스템 야구를 발전시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전근대적인 운영방식을 탈피하지 못하는 다른 프로야구구단에게 악용의 사례를 남길 것이므로. '롯데의 최동원'은 단 한 명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노장이라서 대접을 받는 김성근 프로야구 감독과 노장이라서 버려지는 푸른 피 에이스 배영수의 대조적인 현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앞에 펼쳐지는 아이러니가 아닐까?


그리고 이 아이러니를 계급으로 풀어본다면, 지식화 사회에서 경력이 많은 지식인들은 대우가 나아지는데 현장노동자는 경력과 관계없이 차갑지만 정확한 기계에 밀려 생존권조차 위협받는 현실이라고 한다면 내가 너무 정치적일까?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