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량면은 지금도 그대로 면단위 구역으로 존재한다. 묘량에서 살 때 나이가 대충 4~세 아닌가 추정한다.

뚜렷한 기억과 애매한 기억 두 가지를 차례로 적어보겠다.

그날은 비와 바람이 몹시 거칠게 몰아치고 있었다. 대낮인데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어서 햇빛 같은 건

구경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가 근무하던 초등학교에서는 새 교실 두어칸을 짓고 있던 참이었는데 겨우 기둥

몇개를 세워놓은 단계였다. 그 기둥들이 비바람에 쓰러진다는 연락을 받고 아버지가 학교로 뛰어갔고 나도

뒤따라갔다. 아바지와 다른 젊은 보조교사 한사람이 기우는 기둥을 퉅잡고 죽을 힘을 다 해 버티던 장면을

나는 오래동안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지켜봤다. 기둥이 기우뚱 하는 순간 위기일발이란 조바심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바지와 보조교사는 필사적으로 기둥을 붙잡고 버티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마 새끼줄로 기둥들을 엮어서 무사히 건축을 해내지 않았나 추정된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때

몰아치던 사나운 비바람과 그리고 신축 교실 기둥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버티던 아버지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건축술이 발전한 지금이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광경일 것이다. 그걸 지켜보던 나는 몇살

이었을까?

 다음 장면은 내게도 수수께끼 같은 것이다. 묘량 초등학교의 자그마한 운동장에 비행기가 내려앉았다.

사람이 탑승한 비행기는 아닌 것 같은데 그 비행기가 땅에 내려앉는 모습을 나는 본 것 같다. 이 그림은

수십년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치로 따져볼 때 장난감 비행기나 혹은 모조비행기가 아니라면

그 작은 운동장에 비행기가 착륙하는게 불가능한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건 당시 꿈에

서 봤던 한 장면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꿈과 실제가 혼동되어 오래동안 꿈에서 본 것이 현실로 둔갑

해버린 게 아닐까? 나이가 너무 어려서 현실과 꿈을 혼동할 수도 있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까지 그 비행기 그림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묘량의 기억은 이것으로 막을 내린다. 그 이후로 우리는 묘량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포천은 지금은 군남이란 행정단위 명칭을 갖고 있는데 지금은 군에서 서열이 다소 처지는 곳으로

몰락한 지역이 되었다. 그곳에서 전에 살 때 교장이 일본인이고 독신자인 관계로 우리가 교장관사

에서 잠시 거주했었다. 전에 기술한 포천의 에피소드들은 대개 이 교장관사에서 살 때 일어난 일들

이며 분명히 내가 다섯살 때 일들이다. 왜냐하면 해방되던 해 나는 우리 나이로 여섯이었던 것이고

그땐 해방 전이었던 것이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교장관사에서 잠시 살기 이전에 우리는

술도가가 있는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다. 술도가를 하는 부잣집이라 가옥에 방이 많고 마당

도 넓었다. 술도가 집 주인 가족들은 우리를 가까운 친척처럼 매우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우해줘서

더부살이라는 느낌은 그닥 느끼지 못했다. 그집에서 술을 빚기 전에 나오는 새까만 깨묵을 많이

얻어먹던 일이 떠오른다. 앞서도 말했지만 식량사정이 좋지 않아서 이 깨묵을 식량 대용으로 자주

섭취해서 나중에는 물릴 지경이 되었다. 이 술도가 집에 살 때 기억나는 두가지 경험이 있는데

서로 상극이 되어 시점을 잡기가 참 애매한 점이 있다. 그래도 차례대로 서술해보겠다.

 

 어느날 한낮에 그집 높은 대청마루에서 잠을 자다가 나는 퍼뜩 깨어났다. 둘러보니 늘 옆에 있어야

할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렸을 때 심한 울보였다. 일단 한번 울음보를 터트리면 좀처럼 그

치지 않았다. 내가 잠든 사이에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나는 몹시 화가 나고 억울했던 것 같다.

나는 특기인 그 요란하고 맹렬한 울음보를 터트리고 말았다.

'엄마는 도대체 잠 든 나를 두고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물론 이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고 대충

이런 사념으로 분통을 터트린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