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흑인들은 색깔이 어둡다보니 어쩐지 비위생적이고 더러울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백인들보다도 훨씬 깨끗하고 주변 정리정돈도 잘하고 있다고 한다. 일단 개인적 위생이 철저하고 아무리 허술한 양철집이라도 일단 자기 집 안은 반들반들하게 해놓고 산다는 것이다. 원래 그런 이들이 엄격하게 영국식으로 교육을 받으면 일급 하인으로는 적격인 것이다. 거기에다 순종적이기까지 하니 백인들이 오랫동안 부려먹기가 얼마나 쉬웠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자기 몸과 집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에는 철저하지만 자기 집 문밖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을 넘어 무질서 난장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남아공 정부에서 주택정책을 세울 때 처음부터 공동 공간이 많은 아파트 대신에 개인이 살 수 있는 작은 집을 지어서 공동의 공간이 전혀 없도록 했다고 한다. 흑인들에게는 공동이라는 개념이 존재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된 것일까? 단순히 민도가 낮은 탓일까? 원래 흑인들은 자연 속에서 혼자서는 생존을 할 수 없고 농사나 사냥을 하더라도 항상 모든 일을 공동으로 해야 했었다. 그런 흑인들이 도시화 되면서 공동의 정신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아닐까?

이러한 흑인들의 고립분산적인 개인주의는 단순히 개인의 생활습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남아공의 경제 산업 전반에도 결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중부 이남의 모든 국가들이 남아공으로 물건을 사러 오기 때문에 아프리카 남부의 물류집산지이다. 대형 트롤리 트럭을 몰고 요한네스버그에 와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러 다니기 어려운 조건을 이용해서 중국과 인도인들이 허술한 유통센터를 세워놓고 도매상들을 입주 시켜서 한 곳에서 물건을 모두 구입할 수 있게 만들어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 그들은 거대 자본이 투자된 서구식 쇼핑몰 중심으로 운영되는 남아공의 유통 체계를 쥐고 있는 백인들이 할 수 없는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한국도 요즘 돌아가는 모양이 점차 그렇게 되어 가고 있어서 걱정이 에베레스트 산이지만 남아공에는 재래시장이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중국인, 인도인들 탓에 가난한 흑인들이 값 싸게 물건을 구입할 길이 생긴 것이다. 결국 남아공 땅에서 중부 아프리카 이하의 상권 전체가 백인, 중국인, 인도인 등에 의하여 좌우되고 이익을 얻는 것이다. 백인들은 위에서 인도인, 중국인들은 바닥을 긁어서 돈을 버는 것이다.


남아공 흑인들이라고 해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 리가 없지만 남아공의 흑인 엘리트들이 위험성이 많은 독자적인 사업 보다는 안전하게 백인들의 회사에 취직을 해서 월급을 많이 받고 편하게 사는 길을 택하는 것은 내 집 안만 깨끗하면 되고 공동공간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심리와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흑인들이 모험적인 길을 두려워하고 안전한 길만 찾으려고 하는 이유는 오랜 동안의 식민과 차별의 경험이 내재화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흑인들이 제도적으로 길들여지고 훈련되어져서 무기력하게 된 것은 현실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아무래도 주원인은 350년 간 지배해 온 백인 탓이다. 백인들은 흑인들을 착취만 했지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즉 백인들은 흑인들을 부려먹기 쉽도록 만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청소하는 법이나 허드레 일이나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정도여서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상태를 만들었다.


쿠루가 국립공원을 가기로 하고 아침부터 준비를 하는데 출발 직전에 구름이 운전사에게 가정부에게 가서 망원경을 좀 가져 오라고 시켰다. 조금 있다가 가정부가 운전사와 함께 나타나 "무엇을 찾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구름이 운전사에게 "Binocular가 무엇인줄 모르느냐?"고 물으니 고교를 졸업한 운전사는 모른다고 했다. 실제로 영어가 공용어인 남아공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영어를 못하는 이들이 많다. 영어 수업 시간이 1 주일에 한 시간이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서 운전사는 Binocular라는 말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자 구름은 설명을 해주면서 "내가 몇 번이나 말 했느냐? 모르면 물으라고." 했다. 흑인들은 'Yes'와 ' No'로만 대답하고 묻는 것을 두려워해서 잘 묻지를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일만 시키고 몇 번씩 확인을 해야 한다고 한다.


백인들은 흑인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안 가르치는 비교육적인 노력을 해서 흑인들이 인습에서 벋어나기를 두려워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백인 정권에 의해 그 어떤 기초적인 교육도 받지 못한 흑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 동안의 악명 높은 흑백분리 정책의 교육은 주인이나 백인에 대한 순종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백인들은 흑인들을 부려먹기 쉽도록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지금도 나이 먹은 흑인들은 순종적이고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잘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등학교에서도 청소하는 법이나 허드레 일이나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정도여서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상태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안 가르치는 비교육적인 노력을 해서 흑인들이 인습에서 벋어나기를 두려워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 결과 남아공이 백인들로 부터 실질적 독립을 성취했을 때도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이러한 불안정한 시기에 이미 서부 열강과 치열한 투쟁을 거쳐 내성을 기른 주변 국가들로 부터 밀려온 외국 흑인들에게 모든 면에서 상당 부분의 잠식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비교적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했기 때문에 투쟁을 통해서 권리를 획득한 주변국가에 비해 경쟁력이 약화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흑인들의 순종적인 태도는 흑인들이 가지고 있던 원초적 문화 속에 연장자나 권위를 가진 자에 대한 존경심을 발로라고 보아야할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남아공 흑인들의 모습 속에서 구한말 조선의 형편을 떠올렸다. 당시의 우리의 처지와 상황이 아주 비슷했을 터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선 말기나 일제 강점기에 조선 땅에 들어온 외국인들이 얼마나 좋았겠는가? 아마도 조선인들부터 경계도 받았겠지만 상전 대우를 받던 선교사들이 그런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사람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이든 간에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윗사람에 대한 존중심에 직업윤리가 가미된다면 고용인으로서는 그 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고용주들에게는 이러한 남아공 흑인들의 공손한 태도가 당연히 매력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해석을 하고 보니 나도 모르게 아프리카에 오고 보니 뉴라이트가 된 기분이다. 아니 뉴라이트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아프리카 나라 중에서 정치적으로 제일 안정이 되어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의 투자가 생산성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남아공이 행정적으로 정비가 되어있지 않은 탓일 것이다. 몇해 전 남아공 광산 폭동 사태에서 본 것처럼 남아공은 노조의 힘이 셀 수 밖에 엇다. 개인적으로 어찌해 볼 수가 없으니까 조직의 힘이 강한 것이다. 지강에서 문제가 생기면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이야이기 하지 않고 노조에 가서 이야기하고 노조에서 사람이 오는 식이다. 하여간에 임금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제조업에 투자가 이루어지 않는 원인에는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바람 부부는 건강한 사업을 통해서 이윤을 창출하고 많은 사람을 고용해서 교육하고 훈련을 시켜 그들의 살 길을 만들어 주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디가 '아프리카 바람'인 것이고 나는 그들이 이 꿈같은 이야기를 조금씩 현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남아공에 온 것이다.


마틴 루터 킹의 유명한 인권 대행진 연설에 "우리는 너무나 오래 동안 '안 돼'라는 말을 들어왔다."는 감동적인 구절이 있다. 실제로 백인 치하의 흑인들은 'No'라고 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흑인들은 지금도 비교적 No라고 할 줄을 모른다. 비록 Yes라고 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서 언제든지 지시를 하고는 일이 제대로 되어 가고 있는지 항상 확인을 해야 했었다는 선교사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경험이 없고 아는 것이 없어 어찌할 줄 몰라 새로운 시도를 겁내하는 흑인들에게 바람 부부는 '안 돼'가 아니라 반대로 '해봐!'를 강조하고 있다.


남아공의 빈부의 격차에 대해서 간단히 말하자면 ‘이제 인종으로만 빈부를 설명하긴 쉽지 않다.' 는 것이다. 왜냐하면 길거리에서 백인 거지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흑인의 나라가 된 남아공에서 도태된 백인들의 삶은 어찌 보면 더 처참할 수 있다. 왜냐하면 흑인들은 전기, 수도가 없어도 아무데서나 움막을 짓고 자연스럽게(?) 살아 갈 수 있지만 백인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백인이라고 다 잘 사는 것도 아니어서 바람네 회사에도 30 명 직원 중 백인이 세 명인데 두 명은 급여가 중간 정도이다.

시내내에서 굴러다는 차 중에 한국 돈으로 최하 5천만 원, 웬만하면 억 대가 넘는 BMW와 Mercedes Benz가 가장 흔히 보이는 차종들인데, 그런 차들의 반 수 훨씬 이상이 흑인들이 몰고 다닌다. 새 차라면 거의 흑인이 차주라고 보면 된다. 수익이 1억이 넘는 흑인의 수가 한국과 비슷하거나 많다.

남아공에서는 자기 차에 운전사를 따로 두는 사장은 거의 없다. 그러나 동양 여자이기도 하고 언제나 피곤에 쩔어 있는 바람은 부득이 흑인 운전사를 데리고 다닌다. 남아공에서는 원초적으로 무료 주차가 존재할 수가 없다. 차가 주차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지키는 사람이 있다. 남아공에서 주차는 단순히 주차 뿐만이 아닌 차를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부가기능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형 쇼핑 센타라도 반드시 차를 지키고 차가 잘 드나들도록 원하지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친절(?)을 강제로 베푸는 인간에게 얼마간 세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도 남아공은 여자는 55세 남자는 60세가 지나서 달리 가입한 연금이 없다면 한국 돈으로 20만원 넘는 연금 무조건 받는다. 이 점에서는 노인들에게 20만원을 줄 돈이 있니 없니 하고 있는 우리가 잘 아는 나라 보다 나은 것이다.

어디나 그렇지만 문제는 빈부의 격차이다. 물론, 당연히, 그래도 가난한 자의 대다수는 흑인이다. 게다가 주로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엄청난 수의 주변국에서 일 자리를 찾아 몰려온 흑인들이다. 남아공에서는 한 마디로 ‘흑인=가난’의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