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 이전 기억들은 모두 포천과 묘량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앞서 얘기했듯 초등학교 교직자이던

아버지가 면단위 시골인 이 두 지역을 오락가락 하며 근무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점점 미궁 속으로

들어간다. 여전히 그림과 색채는 선명한데 시점이 애매한 것이다. 다섯살 이전 내가 본 세계가 포천과

묘량이란 시골에 제한된다는 게 재미있다.

포천에서 누구네 집에 초대되어 점심 한끼를 잘 먹었던 그림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집이 금융조합

이사네 집인데 아마 전에 함께 눈사람 만들던 오누이네가 그곳을 떠나고 후임으로 온 사람의 집이었

을 것이다. 카인과 내가 무슨 이유로 그 집에서 점심대접을 받았는데 가기 전에 어머니가

'그 집에 가면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당부해서 그집 부인 앞에서 무척 조심했던 기억이 난다.

부인이 우리를 다다미 방에 앉혀놓고 밥통에서 밥을 공기에 퍼담아 하나씩 주었고 김과 간장, 단무지

등 주로 일본식 식단으로 우리는 점심을 맛있게 먹고 부인과 몇마디 담소를 주고받고 공손하게 인사

하고 그집에서 물러나왔다. 말성꾼인 카인도 그날만은 아주 으젓하게 행동했다. 이게 아마 내가 최초

로 남의 집에 초대받은 기록이 될 것이다. 엄연히 조선사람이지만 일본식 식생활 풍습을 깔끔하게

보여주던 그 안주인의 모습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포천은 시골이긴 하나 곡창지대가 많아 당시 군

에서 두번째로 처주던 개화지역이었다. 금융조합이 있던 것이 그 증거이다.

 포천에서의 기억은 일단 여기서 끝난다.

 

 포천에 오기 전 우리는 묘량에서 살았다. 앞서 말했듯 묘량에서 살기 전엔 또 포천에서 살았다. 역주행

이란 점을 감안하기 바란다. 묘량을 거쳐 다시 포천으로 옮겨 갈 것이다. 묘량에서는 몇가지 재미있는

특이한 경험들이 있었다. 우리는 작은 마을의 조그만 초가에서 살았는데 담장 건너 바로 이웃집이 있

고 그집에 누이 둘과 사내 아이 한명이 있었다. 그 누이들과 우리 누이들이 나이가 비슷해서 특히 친

하게 지냈다. 그 누이들이 성격이 매우 착하고 특히 우리 누이들에게 곰살맞게 굴어서 집에서 누이들

로부터 이웃집 누이들 얘기를 매일같이 들었다. 그런데 이웃집은 농사 지을 땅조차 없는지 매무매우

궁핍해서 늘 끼니를 거른다는 것이었다. 당시 일제의 양식수탈이 심해서 좀 산다는 집에서도 식량사

정이 여의치 않았다. 쌀 한웅큼에 고구마를 잔뜩 넣어 만든 고구마밥, 시레기 죽, 보리가루 개떡 등을

나도 끼니 때 예사로 먹었다. 그것도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게 행운이었다. 이웃집 누이들이

우리집에서 보리가루, 감자 등을 자주 꾸어갔다. 잠시 빌려 갔는지, 그냥 얻어 갔는지 명확하지 않다.

몇차례 거래가 거듭되다가 드디어 어머니가 누이들에게

"이제 아무게네에게 더 꾸어줄 식량이 없다. " 고 선언해버렸다. 누이들이 어머니에게 간청했으나 받

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 뒤 며칠이 흘러갔다. 내가 마당으로 나갔는데 이웃집 담장 가에 그집 누이

둘과 남자 아이, 이렇게 셋이 담장 뒤에 나란히 우두커니 서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이들

말대로라면 그들은 며칠째 끼니를 거른상태였다. 촛점 잃은 시선으로 먼 하늘을 보던 그 세 자매의

모습이 마치 가난뱅이들을 묘사한 루오의 그림 한폭처럼 오래오래 내 기억에 남아있다.

야산 고사리도 그땐 좋은 식량감이었다. 고사리를 삶아서 그냥 먹었는지 거기 양념을 해 먹었는지

혹은 고사리와 밀가루 보리가루를 반죽해 전을 만들어 먹었는지 분명치 않으나 고사리를 따다가

자주 먹은 기억은 있다. 산에 가면 고사리를 쉽게 수집할 수 있었다. 고사리를 채집하러 그다지 멀

지 않은 야산으로 나갔던 일이 두어번 있었다. 이웃집 아이들과 늘 함께 갔다. 그런데 막상 고사리

를 찾으면 그게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고사리를 찾으면 마치 금이라도 발견한양 소리지르며 달

려가 고사리를 꺽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나는 명절 때 상에 오르는 고사리 나물을 무척 즐

겨 먹는 편이다. 나의 빙모님은 추석 때 방문하면 나를 위해 따로 고사리 나물을 준비해둘 정도이

다. 그러나 아무도 내게 그런 '고사리의 추억'이 있다는 걸 모른다. 고사리 채집이 네살 때일까? 다

섯살  때일까? 둘 중 하나일텐데 명확하지 않다. 이웃집 오누이의 이름도 내가 이십대까지는 기억

했 것 같은데 지금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네살은 그렇다 치고 세살 때 혹은 두살 때 일들을 기억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 나이에도 과연

'자아'라는 걸 의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인가? 자료를 찾아보면 일정한 연구기록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일단 접어두겠다. 묘량에서는 아주 선명한 하나의 기억과 안개 속 풍경 같은 다소 애매

한 하나의 기억?이 더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