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세월호 구조활동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동안 수 많은 말들과 사건 비통 울분 난맥상 무책임등이 있었고 그 와중에 오보와 선동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유족들과 국민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하고 아프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아닌 언론이었습니다.

사고 첫날 전원 구조 오보부터 시작하여 언론이 조금만 더 확인하고 성의를 가지고 보도를 했으면 유족들이나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았을텐데 일선 기자나 데스크도 그저 선정성이나 특종에만 눈이 돌아가서 국민적 참사에도 불구하고 하이에나처럼 썩은고기같은 기사들을 양산해 내었습니다.

구조 첫날부터 며칠동안 기자들은 얼마든지 경비정이나 아니면 현지에서 어선을 빌려서 현장 구조 상황을 확인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팽목항에서 조명탄만 보면서 정부에서 불러주는대로 받아쓰기에 바빴습니다.
유족들은 정부 발표대로 열심히 구조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현장에 가보니 아무런 구조활동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안 사실이지만 해군 함정이 출동하고 구조대원이 왔다고 바로 구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바지선 계류, 인도 선 설치등 사전작업에만도 여러날 걸리는 일인데 정부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고 언론도 확인하고 진실을 보도하지 않았고 애가타는 가족들에게 불신과 상처를 깊이 심어주었습니다.  )

이번 사건을 통하여 새삼 언론의 문제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정부도 결국 언론을 통한 여론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잘못된 행위를 견제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언론인과 그 분야 전문 지식인들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너무나 침묵을 지키고 비겁합니다.
그래서 일부 편향적이거나 전공이 아닌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선동하는 논리에 대하여 학문적 과학적 반론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기 일수입니다.
우리나라 언론의 고질병은 너무 깊고 정부와 공무원은 그나마  여러가지 모양으로 책임을 지지만 언론이나 기자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이제 국민이 현명하게 비판적으로 언론보도를 해석하고 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주장들을 정리해서 소화시켜야 할 판입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의 가장 큰 결과물은 우리 정부나 정치권 언론등 우리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중요한 집단들이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천안함 사건때 그렇게 떠들었던 에어포켓이나 구조 가능성이 허황된 이야기라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언론은 또다시 72시간을 떠들기 바빴는데 저는 애초에 믿지 않았습니다.

비록 조선일보지만 현지에서 수색을 총괄한 잠수 책임자의 인터뷰와 다이빙벨에 대한 기사를 올립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1/18/2014111800844.html?nstop 

잠수사 40명 이끌며 세월호 수색… 백성기 잠수총감독]

당시 에어포켓 있다느니 72시간 살 수 있다는 등
그런 말들은 모두 거짓말… 힘들수록 진실 말했어야…
잠수사 설득해 영상 촬영, 수중상황·자료 100%를 가족에 공개해 신뢰 쌓아
실종자 7명 더 찾았으나 배 무너질 듯해 수색중단… 가족들도 상황 받아들여

 그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세월호 수색이 난관에 빠져 허우적거렸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얻은 가장 큰 교훈은 '힘들수록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최초의 거짓말을 발판 삼아 또 다른 사기극이 판을 친다"고 말했다.


	부산 연안여객터미널 부두에서 백성기 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국민이 받을 충격을 완화시키겠다는 핑계로 거짓말해선 안 된다. 장기적으로 신뢰를 잃는다”고 말했다.
 부산 연안여객터미널 부두에서 백성기 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국민이 받을 충격을 완화시키겠다는 핑계로 거짓말해선 안 된다. 장기적으로 신뢰를 잃는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바로 사고 해역으로 간 건가?
"아니다. 부산에서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언론에서 '(생존이 가능한) 72시간이 남았으니 열심히 구조하면 된다'고 했다. 이건 아닌데 싶었다. 마지막까지도 수색을 못 하고 있던 4층 선미 다인실(SP-1) 외벽을 뚫어낼 잠수사들을 추가로 소집하면서 5월 27일 88수중 일원으로 사고 해역에 가게 됐다. 당시엔 감독 직책이 아니었다."

―도착했을 당시 상황은?

"세상 모든 일이 처음이 중요하다. 언론과 공무원들이 사고 초기에 했던 '듣기 좋은 거짓말'이 현장을 망치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마지막까지 힘들었다. 세월호 내부에 에어포켓(산소가 남아 있는 공간·air pocket)이 있다느니, 최대 72시간까지 생존이 가능하다느니 하는 건 다 거짓말이다. 공무원과 잠수사들은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살리지 못한 죄인들로 여겨지고 있었다."

―침몰선 안 실종자가 에어포켓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한 해외 사례도 있는데?

"그건 격실이 철재로 이뤄진 배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격실을 목재로 만든 세월호는 에어포켓이 남아 있을 수 없었다. "

―잠수업자 이종인씨는 "선수 부분에 에어포켓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안에 있을 생존자를 다이빙벨을 투입해 구조할 것"이라고 했는데.

"한마디로 사기다. 사기를 사기라고 말할 수 없게끔 몰아간 사기극이다. 그것 때문에 수색 시간을 손해 봤지만 차라리 그렇게라도 거짓이 드러나 다행이다. 

―구조 작업을 하면서 뭐가 가장 힘들었나?

"잠수사들이 실종자 가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7월 언딘이 해경과의 유착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철수했다. 백씨는 이때부터 잠수총감독을 맡아 민간 잠수사 40여명을 지휘했다. 그가 처음 한 일은 수중 상황을 100% 실종자 가족에게 공개하는 것이었다.


	지난달 18일 오전 9시 30분쯤 세월호 내부를 수색 중이던 한 민간 잠수사가 헬멧에 부착된 수중 카메라로 찍은 세월호 4층 선미 다인실 부근. 목재로 이뤄진 격실 벽면이 보인다.
 지난달 18일 오전 9시 30분쯤 세월호 내부를 수색 중이던 한 민간 잠수사가 헬멧에 부착된 수중 카메라로 찍은 세월호 4층 선미 다인실 부근. 목재로 이뤄진 격실 벽면이 보인다. /백성기 잠수총감독 제공

―잠수사들의 반대가 많았을 텐데?

"당시 잠수사들이 쓰던 마스크엔 카메라를 달기가 어려웠다. 카메라를 달 수 있는 마스크가 현장에 1~2대뿐이었다. 사비를 털어 4대를 구입했고, 원래 갖고 있던 2대를 수리해 현장에 가져왔다. '이 마스크를 쓰면 바지선 위에서 현장을 함께 볼 수 있으니 더 안전하다'고 설득했다."


백 감독이 이끄는 잠수사들은 지난 5월 27일부터 수색종료일까지 169일간 실종자 7명을 찾아냈다. 하지만 실종자는 9명에서 더 이상 줄지 않았다. 잠수사들 사이에서 "이젠 그만둬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액 일당을 챙길 수 있는데 왜 그만두려 했나?

"모르는 사람들은 '일당 97만원이나 되는데 왜 포기하느냐'고 말하지만, 세월호 내부를 잠수해보면 그런 말이 절대 나올 수 없다. 수색을 계속하면 사고는 시간문제인 상황이었다. 


백 감독은 "당신이 만약 사고 대책본부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마음 아프더라도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만 인정했어도 사고 초기 공무원들이 당한 조리돌림 등 대혼란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남은 돈은 없고 장비만 남았다"고 말했다. "헬멧 4대 사는 데 2000만원, 에어뱅크라고 산소 배합비율을 미세 조정해주는 장치 3대 사는 데 5000만원쯤 들었다. 잠수 안전은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받은 일당은 현장에 다 투자했다."

―그 고생을 하고 빈손으로 가면 부인이 뭐라 안 하나?
 그는 "해군 소령은 한 달 수당이 40만원, 중사들은 그 정도도 못 받았다"고 말했다. "하루에 1만원꼴이니 우리와 거의 100배 차이다. 하지만 그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해군 존경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이씨는 1일 오후 4시 진도 팽목항에서 "우리가 공을 세웠을 때 분란과 사기 저하가 일어나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게(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아서"라며 철수 이유를 밝혔다. 이씨는 "구한다면서 왔는데 못 구하고 가게 돼 실종자 가족들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또 "가족 여러분은 (날) 사람같이 안 볼 것이다. 죄송하다는 말밖에…"라고도 했다.


		1일 성과를 내지 못한 다이빙벨을 싣고 바지선이 진도 팽목항으로 돌아오고 있다. 다이빙벨 뒤로 이종인(맨 오른쪽)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보인다. /이덕훈 기자
이씨는 이날 오후 2시 팽목항에 입항했지만 두 시간 동안 바지선에서 나오지 않았다. 몇몇 실종자 가족은 바지선 위의 이씨를 보며 "이종인 사장은 실종자 가족들 데리고 장난친 것밖에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씨의 바지선에 동승했던 한 실종자 가족은 "이씨의 말 한마디 때문에 기존 (수색) 작업에 너무나 큰 차질이 생겼다"고 말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처음에 다이빙벨을 만능이라고 소개한 기자들 누구야"라고 소리 질렀다.


	다이빙벨 논란 일지표
다이빙벨은 지난 18일 종편 방송인 jtbc가 메인뉴스에서 "다이빙벨을 사용하면 20시간 연속 작업이 가능하다"는 이씨 주장을 보도하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큰 기대를 모았다. 











이씨는 25~26일 다이빙벨 투입에 두 차례 실패한 후, 29일 재시도를 위해 팽목항을 출항했다. 30일 오전 3시쯤 세월호 선체와 이씨 바지선을 연결하는 버팀줄을 설치하던 이씨 측 잠수사 2명이 조류에 휩쓸려 100여m 떠내려가다 해군에 구조됐다.

 이씨 바지선에 동승한 한 실종자 가족은 "잠수사가 바지선과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휩쓸려 갔다. 그런거 보니 실력도 의심되고 개판이더라"고 했다. 이씨는 이후 다이빙벨을 수심 20m까지 내렸지만 에어호스와 통신선이 꼬이면서 케이블이 끊어져 실패했다.


이씨는 이날 오전 11시쯤 갑자기 합동구조단 바지선에 연결했던 자신의 바지선을 풀고 스스로 사고 해역에서 철수했다. 철수 당시 이씨는 "해경이 수색 작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두 명 더 있어봤자 의미가 없다"며 "2시간 잠수에 성공했기 때문에 다이빙벨 효과는 입증했다"고 말했다고 대책본부 관계자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