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떤 청년의 죽음과 사회적 학살

이 문제와 관련해 무척 슬픈 사건이 기억납니다. 2009년 3월 10일 29살 청년 정 모씨가 한강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보도입니다. 고려대 정외과 98학번이던 정 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결국 2006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알바로 생활하며 고시원에서 살아가다가 삶을 비관해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기사는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청년 세대의 실상을 그린다고 했지만 저에게는 기사 중에서 다른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청년이 전남 담양에서 고교를 졸업한 후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지방의 농촌 고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정외과에 입학했다면 이 청년은 학습 능력과 발전 가능성이 뛰어난 인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만일 이 청년이 전남 담양이 아닌 가령 경상도 어느 지역 출신이었다 해도 저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우리 속담에 ‘서 발 장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너무 가난하여 집안에 세간이랄 것이 거의 없거나 외로운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저는 자살한 정 모씨의 상황이 저 속담 그대로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청년에게 학비를 지원했거나 최소한 빌려줄 친인척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대학 학비가 비싸다지만 요즘 돈으로 주위 친인척 몇 사람이 힘을 모아 2천만~3천만원 정도만 지원했어도 저 청년은 무사히 학업을 마치고 빌린 학자금도 갚고 사회의 괜찮은 인재로서 살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에서 손꼽는 인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지원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서 발 장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 하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돈네 팔촌까지 뒤져봐도 저런 돈을 지원할만한 경제력을 가진 사람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 한 청년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주지만 심층적으로는 저 청년을 둘러싼 집안과 일가친척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하나의 샘플이지만 그 샘플을 통해서 호남 사람들 태반이 처해있는 현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서 발 장대를 휘둘러도 사돈네 팔촌까지 거치는 것 하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 청년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인 타살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이 호남 출신들 거의 대부분에게 ‘강 건너 불’이 아닌 언제든지 현실화할 수 있는 위협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거의 사회적 학살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1980년 광주민주항쟁 당시 희생자 규모는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수백 명 이상이지만 박정희정권 이래 호남 소외와 경제적 낙후, 왕따 등 객지 생활의 어려움 등으로 사망한 숫자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광주항쟁 당시의 희생자의 몇백, 몇천 배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박정희정권 이래 호남 지역의 두드러진 인구감소 그리고 서울 지역 저소득층 가구주의 압도적 다수가 호남 출신이라는 사실이 이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타개할 대책이 여와 야,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호남 내부에서도 진지한 고민과 발언이 별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3. 호남도 변해야 한다

저는 무엇보다 먼저 호남 사람들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얘기입니다만, 제가 지역차별과 호남 혐오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났을 때 호남 출신들이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그런 활동은 호남 아닌 다른 지역 사람이 하는 게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문제인데도 자신의 노력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이 생각, 이걸 노예근성 아니면 뭐라고 표현해야 합니까?

호남 사람들이 이 문제와 관련해서 갖고 있는 깊은 피해의식과 자기검열을 극복하지 못하면, 스스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자세로 발언하지 않으면 호남은 정말 앞으로 영원히 이 나라에서 사라져버리는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호남 사람들이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그 존재가 소멸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호남 출신 엘리트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합니다. 현재 호남 출신 엘리트들이 호남 소외와 차별 문제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심각한 직무 유기에 해당합니다. 일부에서는 호남 엘리트들이 이 문제에 무관심한 이유에 대해 ‘호남 출신으로서 사회지도층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영남패권 세력들과 타협해온 관성 때문’으로 해석합니다.

간단히 말해 영남 엘리트들의 눈치를 보면서 성장해온 후유증이라는 겁니다. 이런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면 호남 엘리트들은 영남 엘리트와 호남 민중들로부터 동시에 외면받는 존재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호남 민중들의 신뢰를 잃은 호남 엘리트는 영남 지배계층에게도 별로 쓸모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호남의 소외와 차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과제는 모두 중요하지만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순위를 정해 시급한 순서대로 해결해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투입할 자원이 제한적이고 우리의 역량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우선순위를 정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 호남의 고립을 피하고, 영남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체 시민의 동의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과제를 선택하여 성과를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과를 통해 얻은 신뢰와 명분을 통해 그보다 더 상위 단계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인사상 불이익의 철폐나 산업 경제적 부흥 등을 전면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다른 지역 시민들의 이익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고, “호남에게만 혜택을 달라는 거냐?”라는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호남의 세 가지 해결과제 가운데 인종주의적 혐오 발언의 척결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숙제입니다. 인사차별이나 산업정책의 소외 역시 호남 혐오 현상 위에서 합리화되는 측면이 강합니다. 또한 이 문제는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결코 필요성과 대의명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인종주의적 혐오발언 척결이라는 단일한 타겟을 정하고, 그것에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합니다. 공적/사적인 자리에서 호남을 혐오하고 비하하는 언행에 대해 최소한의 법적 제재장치를 만들도록 노력하고, 이것이 이루어지기 전에라도 그러한 언행을 하는 개인에 대해 집단적으로 항의하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접근 전략으로 저는 세 가지 연대/결합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즉 △호남 출신 엘리트와 호남 민중의 결합 △수도권 등 호남을 떠난 호남 출신들과 현재 호남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결합 △민주화 운동 등에 참여했던 호남 1세대와 2,3세대의 결합이 그것입니다.

호남 엘리트들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현재 호남 거주자들 역시 호남 출향민들이 타향에서 겪는 호남에 대한 증오와 소외 현상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민주화의 경험이 없는 2,3세대들은 직접 고생하며 싸운 부모들의 체험을 공유하지 못하고 오히려 호남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하거나 의식적으로 강하게 부정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치 일제시대 조선인 순사들이 자기 약점을 의식해 일본인들보다 더 악랄한 역할을 했던 것과도 비유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호남 출신들이 벗어나야 할 굴레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호남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마치 호남은 모든 것을 잘했고, 피해자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특히 일부 호남 출신들이 드러내는 반기업/반시장 정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 태도는 결국 호남의 처지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호남 지역에 공장을 설립하려 한 기업이 ‘지역 성향’을 문제삼은 이사진의 반대로 최종 단계에서 투자를 취소한 사례, 호남 지역 지방자치단체장이 어렵사리 혜택을 주어가며 괜찮은 사업체를 유치했는데 해당 지역 기초의원이 특혜를 문제삼아 결국 투자가 취소된 사례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철학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몰라도 이것은 자승자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기업/반시장 정서는 결국 호남 청년들의 진로를 시민사회나 정치권 등 소위 운동권으로 한정하고 미래를 제약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새정치연합이나 일부 좌파 세력은 호남이 자신의 당연한 권익을 옹호하는 행동조차 불순한 타협이자 오염, 지역이기주의로 몰아가곤 합니다. 노동 및 시민사회 단체에서 일하는 호남 출신 활동가들의 인식 전환을 기대해 봅니다.

오늘 발제하신 내용들에서도 사실 과도한 정신주의, 반물질주의가 너무 강하게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정신승리’라고나 할까요? 자꾸 이런 것을 호남의 정체성으로 내세우면 좌파들은 ‘너희들은 이슬만 먹고사는 사슴들’이라는 개념으로 호남을 옭아매게 됩니다. 호남의 정치적 입장을 내세우는 요구에 대해 토호니 부패니 비난을 퍼붓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호남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코 호남만 잘먹고 잘살자는 요구가 아닙니다. 까보전-까고 보니 전라도-라는 표현이 당연한 상식처럼 쓰이는 사회입니다. 아무리 옳고 정당한 발언을 해도 단지 그 발언자가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받는다면 이미 그 사회는 최소한의 합리성조차 상실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사회가 미래의 발전을 위한 건강한 접근이 이루어지고 험난한 국제사회 경쟁을 헤쳐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런 점에서 호남 차별 해결은 이 나라와 사회 전체의 핵심적인 합리성을 제고하는 노력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호남 내부에서 이런 토론회를 갖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시도가 시작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고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저 역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뛰고 있지만,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느낍니다. 호남차별을 거론하는 목소리에 대해 반발도 많지만 호응하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7일에는 국회에서 ‘인종주의적 혐오발언: 현황과 대책’ 토론회를 가졌고, 박주선 송호창 안효대 의원이 공동주최로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달 24일에는 서울대 단과대학생장 연석회의(총학생회)와 함께 서울대에서도 같은 주제의 토론회를 엽니다.

함께 노력해서 호남 차별의 극복과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나아갔으면 합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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