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4일(금) 오후 3시부터 순천대학교 박물관에서 (재)향남문화재단(이사장 현고 스님)과 무등공부방(대표 강정채 전 전남대학교 총장)이 공동주관한 ‘호남, 길을 열자 대토론회’에 참석해 패널 발언을 했습니다. ‘호남 지성들의 각성과 역할로 호남의 미래를...’이라는 주제를 다룬 이 날 토론회에는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이종범 조선대 교수 등이 기조 발제를 맡고, 박맹수 원광대 교수, 박상철 경기대학교 정치대학원장, 조상현 목포문화원 사무국장 그리고 제가 주제별 발제를 맡았습니다.

저는 ‘호남 인재들의 미래, 어디서 찾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원래 준비한 원고는 꽤 분량이 많았고 새정치연합의 친노세력을 비판하는 내용을 상당히 포함했습니다만 친노에 대한 비판은 표현을 순화해달라는 요청도 있고 패널 발언이 너무 길어지면 진행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분량을 많이 줄였습니다. 

발제 끝나고 토론시간에도 제 발언에 대해서 동의하는 발언이 나왔고, 뒷풀이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공감한다’고 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친노세력에 대한 분노는 이런 발언들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되더군요. 관념적인 활동가/지식인들의 현실 인식이 대중들보다 오히려 뒤쳐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장소가 넓지 않았지만 자리를 꽉 채우고 나중에는 양쪽 복도와 뒷쪽에 서 있는 분들도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주최측의 소개로는 전남/북 각지와 충청도에서 많이 오셨고, 경남쪽에서 참석하신 분도 계셨다고 합니다.

다음은 제가 발제한 내용입니다.


1. 영남은 인삼뿌리, 호남은 무 뿌리?

오늘 기조발제 등 저보다 앞서 발언하신 분들의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만, 약간 거대담론 성격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4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담론과 명분이 있어도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서는 생각지 못했던 함정이 숨어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제가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는 이런 구체적인 이슈를 정면에서 다루고자 하는 취지를 갖고 있습니다.

호남의 소외와 차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측면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즉 △호남 지역의 산업과 경제력의 발전 △공공 및 민간 분야의 공정한 인사 정착 △호남을 향해 퍼부어지는 인종주의적 혐오 척결 등이 그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세 가지 문제 중에서 호남 출신 인재에 대한 인사차별을 해소하고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호남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주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호남 출신에 대한 정부와 민간 부문의 인사차별 문제가 심각합니다. 현 정부에서 국가 의전서열 10위까지 호남 출신 인사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 감사원장,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권력기관장에도 호남 출신은 한 명도 없습니다.

국민 권익 보호와 정의 구현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사법부도 예외가 아닙니다. 고위직인 지법원장 및 고법원장의 경우 2014년 9월 현재 영남 출신이 28명 중 16명으로 57.1%에 이릅니다. 이들은 향후 대법관 및 대법원 주요 보직 후보자라는 점에서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남독식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은 ‘능력에 따라 인사를 하다 보니 부득이하게 생기는 현상’이라고 반박합니다. 영남 사람들이 더 똑똑하고 유능해서 좋은 자리에 오르는 걸 어떻게 하느냐는 논리입니다. 

영남 출신 우수 인재가 많아서 이들을 중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아전인수 식 억지가 깔려 있습니다. 공직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핵심 기준은 해당 인력이 공무원으로서 얼마나 중요한 경험을 축적했느냐입니다. 즉, 공직 생활 초기부터 알짜 보직이나 노른자위 부서 위주로 근무했던 사람이라면 당연히 더 중요한 경험과 지식, 실적을 축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부터 영남 출신들에게 유리하게 인사를 해놓고 이것을 사후에 합리화하는 논리가 “우수한 사람을 쓰다 보니 영남이 많아지는 것”이라는 억지인 것입니다.

그나마 공직사회는 덜한 편입니다. 고위 공직자들의 경우 출신 지역과 학교 등이 공개되기 때문입니다. 민간기업의 경우 이러한 검증 절차가 전무합니다. 당연히 영남 편중과 호남 차별이 훨씬 심할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자료가 있습니다.

기업 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지난해 8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30대 그룹 중에서 사장단에 아예 호남 출신이 단 한 명도 없는 재벌사는 삼성, GS, 한화, 롯데, 한진 등 5개였습니다. 30대 그룹 전체의 사장단에서 영남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42%로 서울(28%), 경기/인천(9%)을 합친 것보다 5%p 더 많습니다. 30대 그룹 전체 사장단에서 호남 출신의 비율은 6%로 충청(11%)의 절반 수준이며, 강원도(4%)보다 약간 더 많습니다. 그리고 영남 출신은 호남 출신의 딱 7배입니다. 7배, 이 정도면 그냥 괜찮은 수준인 겁니까?

범위를 500대 기업 전문 경영인 526명으로 넓혀보겠습니다. 출신지가 확인된 373명 중 영남 출신이 140명, 호남 출신이 34명이었습니다. 영남이 호남의 4.1배이군요. 30대 그룹에 비해서는 호남 소외가 덜하니 그나마 감지덕지해야 할까요? 그래도 먹고살 쥐구멍은 남겨주셔서 감사해야 할까요?

이 사실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대기업으로 갈수록 영남 편중과 호남 소외가 심해진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뭘 의미할까요? ‘역시 영남 출신들이 똑똑해. 영남 출신을 많이 채용할수록 기업 경쟁력이 높아지고 규모가 커지는구만’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분명히 계실 겁니다.

박정희정권 이래 우리나라 재벌들이 금융지원과 외자도입 등 국가의 자원 배분에서 어마어마한 특혜를 받아서 성장해왔습니다. 대기업에서 영남 출신의 비중이 큰 것은 우리나라 역대 영남 정권의 영남 출신 고위 공직자들이 노골적으로 영남 출신 재벌들의 이익을 옹호해왔고, 이들 재벌은 다시 인사 관리에서 자기 고향 출신들에게 특혜를 베풀어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중소/중견기업 등은  어떨까요? 통계는 찾지 못했지만 상당한 시사점을 주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습니다. 중견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모여서 대화하며 “우리 회사에서는 현실적으로 호남 출신 인재 채용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꺼내자 다른 회사의 인사 담당자들도 “우리도 마찬가지”라며 동의했다고 하더군요.

중소/중견기업은 대기업이나 공기업, 공공기관, 정부부처 등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 갑(甲)의 고위층이 영남 출신인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실무진도 영남인 경우가 많고 결국 그들을 ‘갑’으로 상대하는 을 기업의 담당자가 호남 출신인 것은 매우 불리한 요소라는 겁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