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법원에서 쌍용차 해고 무효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하고 고법으로 사건을 환송하였습니다.
1심에서 사측이 승소 2심에서 노조가 승소 대법원에서 원고인 해고자가 패소를 했습니다.

쌍용차 사태는 우리나라 노동 쟁의사상 아마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희생자 오랜기간 사회적 파장을 낳은 사건이었습니다.
패소한 해고자 156명은 이번 판결로 엄청난 절망감에 쌓였겠지요
그동안 많은 기업들의 정리해고와 이에 저항하는 투쟁이 있었는데 유독 쌍용차에서 직간접으로 많은 희생자가 나왔을까요?

그 이유는 회사가 어려워진 것이 상하이차의 먹튀에 있었고 이것은 당시 회사나 정부의 정책에 문제가 있었는데 손해를 노동자에게만 전가한다는 점에서 반발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의 대기업이나 강성 노조들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민노총의 지도부들은 80년대 의식화를 거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기업가를 사실상 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사측과 타협보다는 선명성을 드러내는 문화와 분위기 조합원에게 어필이 되는 그런 노동계의 문화나 정서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당연한 것입니다.
뭐 사측이 자료를 조작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정리해고 당시 쌍용차는 법정 관리상태였습니다.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는 자체가 이미 정상적인 회사 운영이 어렵고 부도인데 그냥 청산하는 것보다는 채권을 동결하고 존속시키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될때 허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돈을 빌리거나 투자한 투자자들은 이자와 원금을 받을 수 없고 주주들은 감자를 해야하는 손해를 입습니다.
따라서 노동자들 역시 구조조정등 희생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관점에서 이미 대법원 판결은 예상된 판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회사가 2400명을 정리해고 하기로하고 희망퇴직을 받고 구조조정에 들어갔을 때 노조가 반발하고 투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노조는 생각을 잘못하였습니다.

노조는 회사가 어려워진 것은 상하이의 먹튀와 투자약속을 이행하지 않아도 방치한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구조조정 없이 살리라고 하는 것이 주요 주장이었고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언제 이런 책임을 인정한 적도 없고 쌍차같이 국가 경제가 휘청할 현기차도 아닌데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근로자들의 구조조정 없이 회생시킬 것이라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주장은 필요없는 인력을 그냥 국민 세금으로 월급주고 고용하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인데 애초에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당시 쌍용차는 구조조정 없이는 회생이 불가능하였고 채권단 역시 법정관리로 손실을 본 상황에서 노조도 고통을 분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희망퇴직자에 대한 직장 알선이나 명퇴금 지급금액 인상등 실리적인 부분에 협상을 주력해야 했고 나중 경영 정상화시 우선채용등을 약속 받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노조는 전면적인 투쟁에 돌입하고 공장을 점거하였고 결국은 많은 피해를 내고 진압되었고 그후 여러가지 문제와 파업 후유증으로 자살이나 질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23명이나 되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당하였지만 쌍용차만큼 근로자들의 죽음이 많고 파업 후유증이 컸던 사례는 드뭅니다.
쌍용차를 위해 금속노조와 민노총에서 십수억의 지원금을 지원하였고 많은 시민사회 단체에서 응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은 결국 희망고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증권투자에서 손절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손절매하지 못하면 깡통은 물론 그로인한 정신적 문제로도 힘들어 집니다.
쌍용차는 손절매의 시기를 놓친것은 물론이고 가능성 없는 주장과 목표를 설정하고 외골수로 투쟁을 했기에 희생자도 크고 결국 이제 더이상 어떤 희망도 없습니다.

쌍용차 사태는 우리 사회의 문제해결 능력 그리고 노조의 투쟁방식이나 사고방식등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 쌍차를 통하여 교훈을 얻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노동계도 이제 시장이 무엇인지를 염두에 두고 투쟁이나 노조활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도 기업의 책임있는 당사자의 하나로 책임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흔히들 노조측의 주장은 우리는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다라고 주장하다가 회사가 이익이 나면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이익이 났으니 이익을 배분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는 이율 배반적인 것입니다.
근로자가 열심히 일해도 경영이 잘못되면 회사가 망하거나 어려울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근로자가 열심히 일해도 경영자가 잘 하지 못하면 이익이 나지 않기에 이익이 났다는 것은 경영자의 경영과 자본가의 자본도 몫이 있는 것입니다.

결국 기업은 모두가 함께 이익도 손해도 보아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아무래도 노동자가 불리한 입장이고 기업가가 더 많은 몫을 가져가지요
근로자는 을인데 을의 입장에서 갑을 상대할때 적개심이나 투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이익이 상충되는 면도 있고 일치되는 면도 있는 것이 기업과 근로자의 관계입니다.
결국 어려울때 어떻게 하는 것이 근로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후일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인가하는 실리를 따지고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회사와 신뢰관계를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이는 기업도 평소에 신뢰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오직 투쟁 일변도와 기업이나 자본가에 대한 적대감만으로는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이익을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쌍용차 사건을 통하여 우리 노동계도 무언가 자기반성을 하여 쌍차 조합원들의 고통과 희생이 단순히 사측이나 정부의 탄압이나 외면이 아닌 노조 자신과 노동계의 대응에도 중요한 원인제공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