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는 이괄의 반란 정묘호란 병자호란등 세차례나 도성을 버리고 몽진을 하고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항복을 했던 왕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오래도 집권을 한 것을 보면 악하고 무능하며 이기적인 자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아 장수하는 모양이다.

병자호란을 이야기할 때 척화파를 빼놓을 수가 없다.
조선 선비들 전체가 대체로 명을 숭배하고 청을 오랑캐라고 무시하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국정을 운영하는 관료들은 현실을 직시해야만 하는데도 그들은 대책없이 청을 금수의 나라나 도적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침공에 대해서는 실제적으로 아무런 대비도 헌신도 하지 않고 조선 선비 특유의 말로 때우는 정치를 하였다.
조선의 척화파가 얼마나 경직되고 객관적 현실인식이 안되었는가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1636년 용골대와 마부대는 청태종의 황제 즉위식과 조선 대비의 문상을 겸하여 사신으로 왔는데 조선 조정은 당시 용골대를 따라온 몽고의 족장들에 대하여 예법에 어긋난다고 하여 국서조차 접수하지 않고 결국 용골대는 쫒겨나듯 조선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1636년 4월 11일 청태종은 황제로 즉위를 하는데 만주 몽고 한족으로 투항한 신료들이 모두 모여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며 절을 하는데 오직 조선의 사신인 나덕헌과 이확은 절을 하지 않고 서있다가 청나라의 관원들에게 심하게 매질을 당한다.

생각해보라
청태종이 황제로 즉위하는 자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절을 하는데 오직 조선의 관료 두사람만 절을 하지 않고 서있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었을까?
그러면 그들은 과연 명분에 입각하여 죽음을 불사하고 절을 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그들이라고 왜 두렵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절을 하면 귀국후 조선에서 받을 처벌과 비난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청태종의 국서를 받아오다가 이대로 국서를 가져가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을 알고 통원보라는 곳에서 국서를 보따리에 싸서 여관에 놓고 대신 내용을 배껴서 가져오는데 평안감사가 ㅎ홍명구가 그 국서의 내용을 보고 조정에 사신 나덕환의 목을 배라고 상소를 올린다.
다른 사람들도 왜 자결하지 않고 국서를 받아왔느냐면서 탄핵을 하여 결국 그 둘은 유배를 당한다.

 목숨걸고 절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신으로서 국서를 받아오는 당연한 일을 했는데도 귀양을 가야하고 비난을 받아야하는 조선 척화파들의 이 경직되고 상황파악이 안되는 태도를 보라
조선은 그것도 부족하여 대사성 이식의 이름으로 청나라에 국서를 통원보에 버렸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신을 보내었다.

조선 조정은 이제 청나라와 전쟁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논의가 분분했지만 12월 9일 청태종이 압록강을 건널때까지도 아무런 실효성 있는 방책은 마련하지 못하였다.
오죽했으면 명나라 감군 황손무나 도독 심세괴가 청나라에 사신을 보내 그쪽 사정을 정탐하고 웬만하면 화친을 유지하여 나라가 망하는 것을 
방지하라고 하였겠는가?

12월 6일 의주의 용골산성에서 청나라의 침입을 봉화로 알렸지만 황해도의 도원수 김자점은 무시하고 있다가 청군이 안주를 지나자 그제서야 조정에 보고를 하여 조정에서는 13일에서야 청군이 침입했음을 알고 강화도로 피난을 가려했지만 이미 청군은 녹번동에 와 있었고 결국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14일 피난을 갔고 15일 청나라 사신은 벌써 남한산성 앞에 와있었다.

청나라를 극렬 비토한 조선이 전쟁에 대비한 것은 고작 강화도 행궁을 불편하지 않게 수리한 것과 정예병을 강화도와 남한산성에 배치하고
도원수와 도제찰사에게 겨우 수천명의 병력을 주고 침입로 인근성의 주민들을 산성으로 피난시켜 농성하게 한 일이 다였다는데 이때문에 청군은 아무런 전투도 하지 않고 단시간에 서울까지 들이닥치게 된 것이다.

남한 산성에 갇혀서 일어난 일들은 다 아실테고 그안에서도 척화파는 대책없이 결사항전만 부르짖었는데 비변사의 원로 대신들은 현실적인 화해의 조건들을 찾았지만 젊은 언관들과 척화파들은 무조건적인 옥쇄를 주장하였다.

결국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과 수십만명이 포로로 잡혀가고 거금을 주고 속환시켰으나 사대부 여자들은 대부분 이혼을 당했다.
이것이 성리학을 근본으로 삼아 3백년이 넘게 내려온 조선의  정치요 지배층의 정신인 것이다.

그런데 아래 새누리를 인조와 기득권에 비유했지만 척화파와 비견될 만한 것이 운동권과 친노 깨시민들이다.
이들은 아무런 대안도 없이 선동만 일삼으면서 역사와 문화적 배경 경제적 상황이 다른 서구 북유럽을 숭상하면서 무조건 자신들의 주장만 외치며 다른 주장은 이단적으로 몰아부쳐 입을 막아 버린다.

현실적으로 미국을 배제하고 동북아 평화와 대한민국의 번영을 논할 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적인 반미를 주장하고 일본이 물러간지가 언제이고 친일파들이 죽은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친일파 사냥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인터넷에서 가수 홍진영의 아버지가 뉴라이트와 관련이 있다고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매도를 하는 것을 흔하게 보는데 깨시민들이다.
이들은 현실을 보지 못하고 조선의 척화파처럼 낡은 이데올로기에 갇혀있으며 모든 것을 선악 이분법 속에서 자신은 선 상대방은 악이라는 구도로 보기에 자기 주장을 절대시하고 상대를 무시하며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개새끼내지 무지한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모든 사안을 지나치게 명분에 집착하거나 확대해석을 한다
세월호에 대한 정부의 무능한 대응을 가지고 세월호 학생들을 학살했다고 주장하는 것등이 한예이다
이들은 무능하여 이들이 집권시에나 그후 야당으로서 제대로 대안을 내놓거나 합리적인 투쟁으로 성과를 얻거나 선거에서 이긴적이 없다.
사고방식 또한 너무 경직되어 도데체가 옳은 주장을 수용할 줄 모르며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세상이 잘못되었고 새누리는 악의 축이고 친일파이며 국민은 무지하며 개새끼들이라는 것인데 바로 척화파들의 행태와 너무 일치한다.

척화파들이 고상하게 명나라를 숭배하고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할 때 정작 명나라는 간신들로 가득차고 원숭한 같은 능력있는 충신을 죽였으며 청나라는 오히려 시대에 맞는 제도와 갱신으로 강희 건륭 옹정의 100년 치세를 열어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영토와 문화발전을 비롯한 백성을 살기좋게 만드는 일을 하였다.
반대로 무능한 숭명주의자들 척화주의자들이 주로 집권했던 조선은 이러한 청의 융성함을 보고서도 배울 생각은 안하고 내내 백성들은 고통을 당하고 집권자는 당파싸움에 궁중암투로 날을 지세다 외척들의 전횡속에 결국 망국의 길로 떨어지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가 없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병자호란 당시의 상황을 연상케하는데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기득권들과 대책없이 강경론만 주장하고 입으로만 떠드는 척화파들로 가득찼던 당시의 조정처럼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가 딱 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