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나라 현대사의 논란 중 하나였던 '새마을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었네요. 등재일은 2013년 6월 18일.

문화재청은 18일 밤 “광주광역시에서 21일까지 열리는 제11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가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 기록물’에 대한 세계기록유산 등재 여부 심사를 벌여 등재를 권고했다”며 “유네스코는 국제자문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등재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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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새마을 운동의 유래는 이 운동을 계획한 류태영 박사의 증언이 있습니다.
1972년 대통령 비서실 초대 새마을운동 담당이었던 류태영 농촌청소년미래재단 이사장이 2010년 2월 10일 한국행정연구원 명사특강 초청으로 “새마을운동 초창기 청와대에서 겪은 비화”라는 주제로 새마을운동이 일어나게 된 동기와 역사적 배경, 그리고 전개과정에 대한 경험담을 소개하였다. (이하 요약)

(중략)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런 식으로 국가적인 경제개발계획사업을 추진하여 상당한 효과를 얻어 전체 국민소득을 올리고 삶의 질을 향상 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50년 만에 찾아온 큰 가뭄으로 농촌은 어려움을 겪었던 1971년이 새마을 운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60년대 중, 하반기부터 일본에서 추진 중이던 “아타라시이 무라 츠쿠리(新しい村づく り)운동” 즉, ‘새 동네 가꾸기 운동’을 참고로 하여 당시 내무부에서 “새마을 가꾸기 사업”이라는 농촌 개발 사업을 활발히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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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점 하나 : 아타라시이 무라 츠쿠리(新しい村づく り)운동이 1960년대 일본에서 추진 중이었다?

3. 위키의 기록입니다.
일각에서는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농촌진흥운동과 비슷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지만, 총독부와 같은 일방향적인 구도보다는 일반민의 호응을 얻어 시행되는 구 소련, 북한 등의 인민 동원 체제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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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점 둘 :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것이 아타라시이 무라 츠쿠리(新しい村づく り)운동이 아니라 농촌진흥운동이었다?

의문점 셋 : 반공을 국시로 삼았던 박정희 정권에서 공산권의 제도를 모방했다?


세 개의 의문점에 대한 정리.

1. 우선. 새마을 운동을 직접 계획한 류태영 박사가  '일본에서 추진 중'이라고 했는데 이 증언 날짜는 2010년 2월 10일. 

2. 그런데 이 “아타라시이 무라 츠쿠리(新しい村づく り)운동”은 조선총독부에서 실시했던 제도라고 합니다. 위키백과의 기록 중 '농촌진흥운동과 비슷하다는 지적을 한다"라는 기록은 그 기록 전문에 아래와 같은 2012년 기사가 발췌 게재된 것으로 보아 2012년경.

"2012년까지 팡가웨 지역에 새마을 운동을 기반한 마을을 짓는다고 하였다."

3. 그런데 반공을 국시로 삼는 박정희 정권 때 공산국가에서 시행한 제도와 유사하다? 뭥미? 


'일제 잔재를 지우기 위해 도망간 곳이 빨갱이 소굴???'



4. 그래서 자료를 좀더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중앙일보 일본어판. 전문 기사 중 관련 부분을 발췌 번역하여 올립니다.

2013年04月12日17時11分 [ⓒ 中央日報/中央日報日本語版] (기사 전문은 여기를 클릭)

「セマウル運動、日本の新しい村づくり運動とは内容も語源も違う」(1)
(새마을운동은 일본의 새마을 가꾸기 운동과 내용도 어원도 다르다- 1)


今月22日にセマウル(新しい村)運動が43周年を迎える。
(지난 22일은 새마을운동 43주년이 되는 날이다.)

セマウル運動の意味についてはさまざまな解釈がある。
(새마을 운동의 의미에 대하여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

時代によって、人によって、明暗が分かれた。セマウル運動に関しては誤解も多いが、
(시대와 사람에 따라 해석이 엇갈렸고 새마을 운동에 대한 오해도 많지만)

今回、セマウル運動の真実を問答形式で説明する。 
(이번에 이 운동의 진실을 문답 형식으로 설명한다.)


(중략)

- セマウル運動は日本の「新しい村づくり運動」のコピー版という歴史的な批判がある。
(새마을 운동은 일본의 '새로운 마을 가꾸기 운동'의 카피(コピ)라는 역사적인 비판이 있다.)

「私が知っている日本の新しい村づくり運動の意味は違う。
(내가 알고있는 일본의 새로운 마을 만들기 운동의 의미는 다르다. )

私たちの邑面洞のように日本には基礎自治体単位として市町村がある。
(우리(나라)의 읍면동처럼 일본은 기초 자치 단체 단위로 시정촌(市町村)이 있다. )


日本の市町村は小規模な単位で、数千にのぼる。
(일본의 시정촌은 소규모 단위로 수천개에 도달한다.)

零細な市町村単位で図書館・公会堂など公共福祉施設をつくろうとするため、非経済的だった。
(소규모의 시정촌 단위로 도서관 · 공연장 등 공공 복지 시설을 만드는 것은 비경제적이었다.)

このため日本では数十年かけて市町村の合併を進めてきた。それを新しい村づくり運動といった。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수십 년에 걸쳐 시정촌의 합병을 추진해왔다. 그것을 새로운 마을 만들기 운동이라고 한다)


セマウルは純粋な私たちの言葉だ。
(새마을운동은 순수한 우리말(한국어)이다)


新しい道の周辺に新しくできたり、きれいに整備された村を“セマウル”と呼んだ。
(새로운 길 주변에 새로 생기거나 예쁘게 정비 된 마을을 "새마을"라고 불렀다. )

私たちのセマウル運動は日本の新しい村づくり運動とは語源も内容も違う」 
(우리의 새마을 운동은 일본의 새로운 마을 만들기 운동은 어원도 내용 도 다르다)


의문점 넷 : 중앙일보에서는 류태영 박사의 증언을 완전히 뒤집으면서 어원도 내용도 다르다...라고 합니다. 좀... 의아하군요. 직접 계획한 사람의 증언이 틀리다?


류태영 박사의 증언은 이명박 정권 때인 2010년, 중앙일보의 보도는 2013년. 그리고 유네스코 등재는 2014년.... 작위적인 냄새가 나죠?


5. 그리고 이어지는 기사에서 새마을 운동과 관련되어 당연히 떠올려지는 의문인 '새마을 운동이 성공적이었다면 왜 이농 현상이 발생했을까?'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굉장한 성과로 알려진 것에 비하면 대답이 충분치 않아 보이네요.
--セマウル運動で農村の暮らしがよくなったというが、なぜ多くの人が農村を離れたのか。
(새마을 운동으로 농촌의 생활이 좋아 졌다고하는데, 왜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난 것인가.)

「国際復興開発銀行(IBRD)は農村開発のための特別対策がなかったとすれば、輸出経済がいくら発展しても都市と農村の格差はさらに広がっていたはずだと指摘した。
(국제 부흥 개발 은행 (IBRD)은 농촌 개발을 위한 특별한 대책이 없었다면 수출 경제가 아무리 발전해도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経済発展とセマウル運動の成果は相互補完的にシナジー効果をもたらした。産業化・都市化の過程で農村人口が減少するのは世界共通の現象だ。米国、英国、日本、フランスなど先進国の農村人口比率は韓国より低い。
(경제 발전과 새마을 운동의 성과는 상호 보완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농촌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세계 공통의 현상이다. 미국, 영국, 일본 및 프랑스 등 선진국의 농촌 인구 비율은 한국보다 낮다.)


農村が貧しくてそうだろうか。違うと思う」 
(농촌이 가난해서 그런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당시 이농현상에 대한 각 나라의 통계를 비교 분석해보면 알텐데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네요. 당시 통계를(특히 대한민국)구할 수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6. 글쎄요.... “아타라시이 무라 츠쿠리(新しい村づく り)운동” 역사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다시 봐야겠네요. 기억으로 “아타라시이 무라 츠쿠리(新しい村づく り)운동”은 일본 메이지 22년에 실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유튜브 영상을 다시 보고 상위점이 있으면 추가하여 올리겠습니다.



당연히, 유네스코의 권위를 부정할 생각도 의도도 없습니다. 그리고 정파에 관계없이, 또한 새마을 운동의 찬반 여부에 관계없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사실은 축하해야 마땅한 일일겁니다.


그러나 잠깐만 훑어본 기록만으로도 이런 '불일치' 나아가 '위화감'을 느끼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하면 지나친 주장일까요? 그리고 하필이면 그 당사자관련자가 대통령 재임 중에 등재되었다...라는 것이 제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면... 제가 너무 민감한 탓일까요?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