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정당, 네트워크 정당, 오픈 프라이머리 등 정치 실험을 표현하는 용어는 다양하지만 그러한 용어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하나다.

바로 정당정치의 부정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나라 정치에서 정당의 역할을 부정하고, 그 기능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정당정치를 부인하는 이러한 시도가 의외로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 이유가 있다. 바로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실망과 혐오감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망과 혐오감의 근원은 사실상 정치 그 자체에 대한 혐오라고 봐야 한다.

이러한 정치 혐오감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진단이 제시됐다. 조선일보 등 주류 언론이 삼김씨 동반퇴진론을 의미하는 '낚시론'을 전개했던 것이 단적인 사례이다. 그 저격수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김동길이다. 내용보다는 그 목소리 크기와 표현의 선정성으로 승부하는 종편의 정치 대담에 요즘도 가끔 얼굴을 내비친다고 들었다.

주류 언론이 부추겼던 정치 혐오감이 의도하는 바는 명백하다. 이놈 저놈 똑같이 썩었으니 가리지 말고 따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냥 구관이 명관이라는 얘기이다. 양비론을 통하여 기존 정치구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그 구도에서의 강자가 계속 강자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나름 공을 들인 낚시론에도 불구하고 학자로나 정치인으로나 낙제점 판정을 받은 것은 삼김씨가 아니라, 그 삼김씨 더러 조용한 낚시터 소개해줄 터이니 정계 은퇴하라던 김동길 본인이었다. 삼김씨는 비록 수많은 문제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군사독재 이후의 한국 정치를 주도했다. 정치는 이놈저놈 다 썩은 가운데서도 단 0.001%라도 나은 사람과 정책을 고르는 기술이라는 사실도 이제 기본적인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정치적 편향이라는 것도 꾸준히 재생산되기 마련이다. 다만 시대의 유행을 반영하여 겉모습을 바꾸기 때문에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뭔가 새로운 상품처럼 보인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김동길 부류의 낡은 레파토리였던 정치 혐오증이 모바일 정당, 네트워크 정당, 오픈 프라이머리로 새단장하고 정치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편향이란 것은 항상 정치 소비자들의 잘못된 인식을 파고들며, 그 오류를 더욱 확대 재생산한다. 지금 모바일 정당론 등이 파고드는 정치 소비자들의 인식 오류는 바로 정당의 기능에 관한 것이다. 특히 정당의 기능과 국가의 기능을 헷갈리는 편향이 대표적이다.

단적으로 말해 국가는 가급적 국민을 구성하는 전체 계급과 집단, 지역의 이익을 편향됨 없이 고려하여 자원을 배분하여야 한다. 적어도 국가와 국민을 구성하는 집단들 사이에서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방식으로 대우를 달리할 수가 없다. 그런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자원을 배분하며 편중 인사를 하는 지배세력은 사실상 국가에 대한 반역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정당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정당이란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정책에서 국민들 내부에서 서로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정당이란 이렇게 다른 견해들이 대립 투쟁하는 가운데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해 비교적 비슷한 견해를 공유한 사람들이 모여 정치 권력의 획득을 위해 노력하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정권이란 그러한 노력과 투쟁의 결과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와 정당의 목표가 완전히 대립/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국가의 국정 운영 형태는 권력을 획득한 정당의 정치 노선과 철학에 의해 구체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정당은 특정 계급과 집단, 지역을 기반으로 그들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면서도 결과적으로 그것이 국가와 국민 전체의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조직이라고 봐야 한다.

가령 집권당이 특정 계급과 집단, 지역의 이익을 옹호하다 보면 국가 전체의 자원 배분에서 우선 순위가 갈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승자-패자의 구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문제 해결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결과적으로 후순위의 계급과 집단, 지역도 동일한 효과를 얻도록 해야 한다.

모바일 정당론 등은 이러한 정당 정치의 기본을 부인하고 있다. 즉, 정당이란 국민 일반이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 이념을 중심으로 특정한 계급과 집단, 지역의 이익을 대표하며 그러한 정치적 실천을 통해 장기적으로 국민 전체의 이익을 달성하는 조직이란 사실을 부인하고 그냥 정당이 국가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오도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당원과 비당원 가리지 않고 동일한 권리(실은 비당원에게 더 큰 권리가 주어진다)를 주는 비뚤어진 투표 방식이다. 특정 정당의 대표나 대통령/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 등의 후보 선출권을 광범위한 국민 전체에게 준다는 주장이 일견 그럴싸해 보이면서도 사실은 정당 정치의 기본을 부인하는 사기질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방식은 결국 서로 차별화되는 정치 철학과 노선, 정책을 통해 정당들이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여 국민의 선택을 받는다는 정당정치의 존재 근거를 무너뜨린다. 비유하자면 삼성과 애플의 스마트폰 로고를 없앤채 소비자들에게 선택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게 공평한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이러한 모바일 정당이나 오픈 프라이머리 등이 사실상 국민 전체의 선택이라는 명제와도 완전히 괴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국가가 법률에 기반하여 방대한 비용과 인력, 시간을 투입하여 홍보하고 관리하는 오프라인 투표도 끊임없이 부정선거 시비가 일어나고 투표율도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런데 일개 정당 그것도 그 중 특정 계파가 주도하여 기획하고 진행 관리하는 모바일 투표나 오픈 프라이머리가 공정과 객관성을 담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극히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통합민주당과 혁신과통합의 당대당 통합 이후 당 대표 선출, 대선후보 선출 등에서 모바일 투표 등은 끊임없이 부정 시비에 휘말려 왔다. 친노 계파의 당내 패권주의를 강제로 관철시키는 편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국민 전체에게 선택권을 준다는 주장과 달리 실제로 모바일 정당이나 오픈 프라이머리 등은 민주당 시절부터 제1야당의 중심을 구성해온 고참 당원들 특히 호남 출신 당원의 의사결정권을 배제하고 축소시키려는 기획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실제로 연령대가 높은 이들 고참 당원들은 모바일기기의 조작에 익숙치 않아 투표에 참가하기도 어려워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진성 당원들을 당내 의사결정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 현실이다.

이들 고참 당원들을 주요한 의사결정에서 배제한 대신 모바일 투표를 통해 제1야당의 대선후보 결정 등에 막강한 영향을 행사해온 사람들은 누구일까? 인터넷 등에서 목소리가 크고 높으며 주요한 커뮤니티 등에서 다수를 점하는 이른바 깨시민들이 그들이다. 물론 이들이라고 제1야당 참여가 배제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들이 과거 어떠한 정치적 선택을 해온 사람들인가 하는 점은 좀더 면밀하게,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 이들은 과거 김대중이 이끄는 제1야당을 호남당, 구태당, 토호당 등으로 비하해온 사람들이다. 당장 새정치연합의 대권후보였고 가장 강력한 계파 수장이라는 문재인부터가 대선후보를 노리고 민주당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집요하게 제1야당을 호남색 짙은 정당이라고 폄하하곤 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들 깨시민/친노들은 '정동영을 찍느니 차라리 이명박을 찍는다'는 편향을 드러냈고, 실제로 그렇게 실천했다. 조기숙이라는 유명 친노인사가 직접 통계까지 제시하며 밝힌 내용이니 별로 사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바일 정당, 오픈 프라이머리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제1야당의 키를 맡기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이다. 이 문제가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확실한 것은 새정치연합의 친노 세력이 모바일 정당, 오픈 프라이머리를 계속 밀어붙일 경우 그것은 이제 노골적으로 당에서 호남 색깔을 지우고 김대중을 지우고 노무현 정당, PK정당으로 가겠다는 선언이 될 것이다.

그것은 노무현 이후 분명해진 여당도 영남, 야당도 영남, 보수도 영남, 진보도 영남이라는 구도의 완성이라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