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노무현 김정일 공동선언, 이른바 10.4 선언을 찾아봤는데 의외에도 내용이 충실하고 내가 보기에
방향이 잘 잡혀 있었다. 김대중 김정일 공동작품인 6.25 선언을 기초로 일부 보완하고 거기에 진일보한 실용적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서 노 전대통령이 비록 특검 때문에 비난 받기는 했으나 암튼 말년에 이 작품 하나는
제대로 만들어 놓았나고 생각했다. 물론 며칠 못가서 뒤집힐 걸 빤히 알면서 너무나 늦게 어슬렁어슬렁 가서
체면치레로 이런걸 만들었다는 비난 내지 혐의를 받을 소지는 있겠지만 암튼 그 선언 내용 자체는 흠잡을 데가
별로 없어서 참 아쉽다고 생각했다.
그걸 할 바에야 좀 더 일찍 서둘러서 뒤에 이명박이 빼도박도 못하게 굳히기를 했어야 하는데 노무현 입장에서
국내 번거로운 일 때문에 겨를이 없었던 모양이다. 참 아쉽고 아쉬웠다.

 비핵개방 3000-핵을 포기하면 일인당 3천달라씩 벌게 만들어준다. 이게 앞서 두 정권이 애써 만들어놓은
선언을 폐기해버리고 이명박이 놀라운 두뇌로 발명해낸 대북 정책 골자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돈 좀 갖고
있으니 말만 잘 들으면 굶어죽지 않을만큼은 도와주겠다는 회유정책이자, 달리 말하면 흡수통일정책이다.
그뒤 결과는 천안함, 연평도 등으로 다 알다시피 재앙의 결과로 결론 났다.

 박근혜도 새로 정책을 발명해냈다. 요컨데 앞 선 전임자들이 세워놓은 정책 따위는 자존심 상 답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여성대통령 특성에 맞게 기싸움 정책을 새로 개발해냈다. 상당히 새롭고 기발한
착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드레스덴 선언, 비무장지대 평화공원조성, 통일대박론 갈파, 통일준비위원회
상설기구 설치, 비록 일방적인 선언이고 조치이긴 하나 매우 화려하고 다채롭다. 그러나 요즘 제 모습이
드러났지만 박근혜 대북정책 핵심은 다량의 대북 풍선삐라 살포작전이다. 표현의 자유 운운하지만 사실
은 총리실 2억 지원, 행자부 4억5천 지원, 그밖에 아마 다른 기관 부서에서도 상당한 지원과 격려가 있었
을 것이다. 역시 흡수통일이라는 전제 아래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나는 박근혜의 말과 행동이 서로
너무 상이해서 그의 사고능력을 의심한 바 있는데 사실은 흡수통일이라는 일관된 정책을 꾸준히 밀고
간다는 걸 알고 의심을 거두었다. 그렇다. 풍선삐라 대량 살포, 통일부와 청와대가 표현의 자유라는 거룩
한 명제를 내세워 그다지도 집요하게 옹호하는 그 풍선삐라가 박 정권 대북정책의 결정판인 것이다.

 서독은 사회당이 세워놓은 통일정책을 기민당이 거의 그대로 이어받아 일관되게 진행해서 통일을 달성
했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임자가 만들어놓은 공동선언은 적어도 현시점에서 내가 보기에는 최선이 아니
었나 생각된다. 만약 그게 조금이라도 결함이 있거나 부족하다 생각되면 이명박이나 박근헤는 그걸
온전히 뒤엎을 게 아니라 재협상을 해서 일부를 수정하면 되는 것이다. 프랑스 비쉬 정권 같은 반역정권
이 만든 것도 아니고 엄연히 대한민국 대통령이 .합법정권이 만들어놓은 합리적 정책을 뒤집어버린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그 선언들이 흡수통일정책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세누리 대북 정책은 이렇게 야권과 명확하게 다르다.
사실은 흡수통일도 아니고 현상고착, 분단고착화가 그들에게 더욱 바람직할지 모른다.

 남북 기싸움에서 박근혜는 일정한 승리를 거두고 있다. 오죽 답답했으면 김정은이 서열 2,3,4인자들을
한꺼번에 내려보냈겠나. 그들이 설마 체육경기 구경하려고 인천까지 내려왔을 리 만무하다.

 내년이면 분단 70년, 아직 상봉을 고대하는 이산가족 수십만이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기다리지만
박상학이란 자와 부산 최모교수의 재가를 먼저 받아야 그 협상이 가까스로 이뤄질 수 있을텐데 시대의
새 영웅으로 부상한 이 두사람은 기고만장해서 삐라풍선을 거둬들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개성공단
사업자들을 비롯 대북사업을 진행하던 중소기업자들, 금강산 재개를 학수고대하는 현대아산, 이들도
일단 박상학과 최 모교수에게 매달려야 할 판이다. 그들이 지금 남쪽에서 가장 센 권력자들이다. 이제
분단 100년을 향해 나갈 일만 남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