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의 전제는 '서열' 이요, '권위' 의 전제는 '자격' 이다. 이때 권위없는 권력은 언제나 위태롭기 마련이다. 근데 가만보면 저 자격이란 것이 워낙에 '가변적, 시대적, 주관적 등' 이라 만인에게 권위있는 권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선봉인 박정희 前 대통령은 독재 커리어라 자격미달, 대한민국 민주화의 선봉인 김대중 前 대통령은 전라도 네이티브라 자격미달.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 유독, 박정희 前 대통령, 김대중 前 대통령에게 역사의 스팟라잍이 집중되는것은 두인물의 '집권' 시기에 국민들의 '권익' 이 '결과적' 으로 향상된 덕분이다. 그 결과가 의도되었든 의도되지 않았든 말이다.



정계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박태준 前 포항제철 회장, 정주영 前 현대그룹 회장에게 역사의 스팟라잍이 집중되는것 역시, 마찬가지다.

권력보다 어려운것은 권위요, 권위보다 어려운것은 권익이다. 사람들이 보다 기대하는 것은 정당한 권력보다는 합법적 권위요, 사람들이 보다더 기대하는 것은 합법적 권위보단 합리적 권익이다. 마침내 내 손아구에, '빵 한쪼가리' 라도 쥐어주지 못할바라면 영화 '타짜' 의 짝귀 말마따나 '닌 내한테 안돼, 드 배아와' 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불평등한 인간세상이지만 '역사' 는 공평하다. 권력과 권위를 분배하는 것은 인간세상이 만들어놓은 불평등한 스펙 그라디엔트의 몫 또는 탓이지만, '권익' 이 공유되는 것은 불평등한 스펙 그라디엔트와는 아무런 단일말의 상관조차 없기 때문이다. 권력과 권위는 분배의 운명이지만 권익은 공유의 운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