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이 오스트리아에 가서 이원집정부제 개헌 발언을 했다가 최근에 박근혜에게 사과한다며 꼬랑지를 내렸는데, 오늘은 김태호 최고위원이 김무성의 개헌 발언에 반발하면서 사퇴까지 했네요. 김태호가 박근혜 접근을 위한 일종의 쇼로 보이기도 하지만, 김태호가 존재감 부각을 위한 기회로 삼을 정도로 김무성의 개헌 발언, 특히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개헌은 턱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죠.

저는 기본적으로 개헌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 환경에서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중심제보다 나은 제도가 있을까 생각되기도 하고, 산적한 현안, 특히 공무원연금 개혁, 공기업 개혁, 공직사회 개혁이 초미의 일이고 지금이 적기인 시기에 개헌 논란으로 개혁의 동력을 분산시키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원집정부제는 지금 국회의 꼬라지를 보아도 말도 안 되는 것이고 4년 중임제도 현행 5년 단임보다 나을 것이라는 보장도 못한다는 점에서 괜히 개헌한다며 힘을 뺄 필요가 있는가 생각됩니다.

프랑스는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 국민투표 부의권, 긴급조치권 등 우리보다 더 강력한 대통령 권한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남북대치 상태이고 불안정성이 많은 나라인 것을 감안할 때, 현 대통령의 권한이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할 정도로 막강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4년 중임제를 한다고 하더라도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선을 의식해 오히려 포퓰리즘적 정책을 펼 수 있고, 연임이 되면 초기부터 다음 대선에 대한 논란이 시작되고 조기 레임덕이 와 현실적으로 연임중의 대통령 업무 장악력과 추진력이 한계가 오게 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 정치계와 국회의 모습을 보면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기 쉽죠.

저는 그래서 개헌 같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우리사회 개혁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봅니다. 서민들을 위하고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을 줄여 주는 단통법도 반대가 많고 진통이 심한데 공무원연금 개혁 같은 중차대한 일은 얼마나 지난한 일이 되겠습니까? 이런 와중에 개헌까지 겹치게 되면 개헌 논란이 모든 아젠다를 흡수하여 시급한 개혁과제들을 추진할 수 없게 됩니다.


김무성의 개헌 발언과 관련하여 김무성을 비판한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의 글을 소개하오니 일독하시길 권합니다.


                   김무성 스타일'에 대한 비판적 명상  

 여당 대표면서도 야당보다 청와대에 더 대드는 ‘김무성 스타일’. 이런 스타일이 본격적으로 작동한 한 것은 지난번 철도노조 파업 때부터였다.

 

 철도노조의 불법파업은 당시, 여론의 따가운 눈살, 최연혜 사장의 단호한 자세, 박근혜 정부의 원칙적인 대처에 밀려 제풀에 사그라질 처지에 와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장외(場外)의 김무성’이 뛰어든 것이다.

 

 김무성이란 사람이 딱히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누가 꼭 와달라고 청한 것도 아니었고, 그리고 분쟁의 어느 쪽 당사자도 아닌 그가 대체 뭐라고 “사장도 물럿거라, 당국도 비켜서라” 하며 들이닥쳤다는 것인지, 영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리곤, 면허받은 심판관도 아니면서 명백한 불법파업자들의 손을 번쩍 들어주며 그들에게 ‘공동우승’을 선언해 주었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논리였다.

 합법과 합법이 맞붙었을 때는 물론 그렇게 끝내는 게 백번 좋다. 그러나 불법과 합법이 맞붙었을 때는 그렇게 끝내선 안 된다. 그렇게 해버릇하면 법에 의한 지배, 공권력의 권위, 합법과 불법의 구분, 옳고 그름의 판별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는 그런 처신을 통해 자신이 한국정치를 ‘중도통합’ 쯤으로 갖다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야당 일각(아마도 박지원)과 더불어 좋게 말해 소통의 정치, 나쁘게 말해선 ‘나눠먹기 짝짜꿍’을 하기로 했는지 모른다.

 ‘중도, 중도통합’이란 것 자체는 물론 나쁜 게 아니다. 그러나 명분이 아무리 번듯해도 실제는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다.

 

 ‘중도, 중도통합’의 명분 아래 김무성이 하자고 한 오스트리아 식 2원집정부제는 한국적인 현실에선 ‘더 좋은 대안’이 아닌, ‘더 나쁜 대안’이 되기 십상이다. ‘제왕적 대통령’ 대신에 ‘제왕적 국회’ ‘제왕적 정치꾼들’을 들어앉힐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의 국회, 지금의 여, 야, 지금의 정당들, 지금의 정치인 자질을 돌아볼 때, 이들이 오스트리아 식 2원집정부제로 지금보다 더 큰 실권을 거머쥐게 되는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한 개도 모자라 300개의 금(金)들이 일시에 우~ 하고 달려들어 “내가 누군 줄 알아?” 하고 갑(甲)질을 해댄다면 그걸 무슨 수로 견디느냔 말이다.

 

 지금의 정계는 기회주의적인 여당과 교조주의적인 야당이 서로 싸우면서도 함께 공생(共生)하는 체제다. 이 체제는 공천을 통해 몰(沒)가치적인 기능주의자들(여당)과, 이념색채가 짙은 아스팔트 꾼들(야당)을 뽑아 올려 오늘날 같은 일탈국회, 부패국회, 불임(不姙)국회, 장외투쟁 국회, 막장국회를 만들어 놓았다.

 

 ‘김무성 2원집정부제’는 이런 한심한 여, 야 정계로 하여금 마르고 닳도록 내치(內治)를 말아먹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계는 청산의 대상이지, 개헌의 주체나 수혜자가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

  ‘김무성 식 중도통합’은 대북 자세에서도 지난 시절의 섣부른 햇볕을 닮아가려 한다. 북한이 고사포를 쏴오자 그는 저들의 소행을 나무랐어야 할 계제에 반대로 우리 쪽을 향해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고 탓했다. 자극? 지난 70년 동안 누가 ‘자극 질’ 했는데?

 6. 25 남침 이래 천안함 폭침에 이르기까지, 온갖 못된 ‘자극 질’은 우리가 했나 북한이 했나?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은 우리의 국가원수를 입에 담지 못할 성적 모욕으로 ‘자극'하고 있다. ‘멀쩡한 무대 씨’는 이걸 깜빡 잊었기라도 한 것일까?

 

 “전단지를 날려도 누가, 언제, 어디서 보내는지 모르게 해야 한다”고 충고하는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또 필요하기도 하다. 실제로 대북풍선단장 이민복 씨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스스로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김무성 식’으로 덮어놓고 “북한을 자극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건, 북한이 싫어 할 언행은 일체 입 밖에 꺼내지 말라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런 식이라면 북한의 3대 세습도, 인권참상도, 정치범수용소도 시비하지 말아야 하는 건가?

 

 대화하자는 마당에 굳이 산통 깰 언행을 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당연히 해야 할 정당한 말까지 ‘저쪽이 싫어할까봐’ 하지 않는다면 그런 정당하지 않은 대화는 할 가치가 없다.

 

 김무성 대표가 진실로 대권을 지향하겠다면 그는 이런 등등의 지적들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해야 한다. 법치주의, 권력구조, 대북정책, 이 세 가지는 너무나 막중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덧붙인다면, 김무성 ’대권추구 예상자‘는 정치 공학적 기술 이전에 “무엇이 정당한가?” 하는 ‘철학 과외’부터 좀 더 많이 받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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