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스타일로 지구촌에 이름을 알린 싸이는 인기가 절정이던 어느 날 미국 방송엔가 나와서 잠시 사과를 한 적이 있더랬다. 예전에 반미 성향의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다고 한다. 미국 누리꾼들이 밝혀낸 것인지 도둑 제발 저리다고 먼저 선수를 친 것인지는 모르겠다. 여튼 그때 나는 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 뭔가 이상해! 종속이론은 아직 우리들 뒤통수에 자리잡고 우리를 억누르는 현실인가?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남미에서 유래한 종속이론은 전성기였다.


그걸 보다 보니 2001년(내가 서른 두 살)에 미국 9/11 사태가 벌어졌을 때 항공기가 미국 뉴욕에 있는 국제무역센터 허리께에 박히는 화면을 보면서 곁에 있던 이들과 함께 짧게 '와아'하는 함성을 질렀던 생각이 난다. 아주 신난다며 난리 부르스를 친 것은 아니지만 나도 나름 반미 성향이 있었다(지금도 있다^^).


현장에 있지 않았으니 그 끔직한 물리적 충격을 느끼지 못할 터이고 영상 속 풍경은 그저 영화 속 풍경 같은 것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컴퓨터로 드론을 제어하며 사람을 살상하는 미군과도 같은 상태랄까. 


요즈음 저 두 이야기를 생각해보노라고 전부터 스멀거리던 기억이 하나 또 떠올랐다. 광주 5/18 희생자 유가족들이 관 속에 든 핏줄의 주검을 보며 울부짖는 사진을 두고서 홍어 택배 왔소라며 웃고 떠드는 일베 얼라들. 큼직한 칼로 네 토막을 낸 홍어 사진에 김대중 씨의 얼굴 사진을 합성해 놓고 김대중 씨의 생전 육성 파일을 첨부하여 홍어족이라고 비하한 사진들.


시사인 분석 기사를 보면 연령층이 다양하긴 하지만 일베 사용자는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어린 축에 속한다.


그네들을 보면서 9/11때 내 모습을 떠올렸다. 죽음이라는 건 인생에서 경험하는 가장 지독한 불가역이다. 그런데 천수를 누리고 떠난 핏줄에서게 경험하는 불가역(머리로 느끼는 불가역, 간접 경험)은, 사고사나 억울한 일로 단명한 경우, 거기에 집단적인 사망이 겹칠 경우에 경험하는 불가역(피부로 느끼는 불가역. 직접 체험)과는 꽤 다르다. 일베 사용자들은 그런 불가역 상황을 접한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을 테니 홍어택배/네조각 분시 사진을 올리며 홍어라고 비하하는 것은 일면 내가 서른 두 살에 9/11을 두고서 보인 모습과 얼마간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일베 사람들은 실제 상황이 어떠한지를 모르는 것이다. 실제 80년 봄날 우연히 광주 현장에 있었던 경상도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자신이 아는 사람이 홍어택배/분시 사진 가지고 희희낙락한다면 넌즈시 그럼 못쓴다라고 지청구를 할지도 모를 일.


분명 80년 봄날 광주에 있던 경상도 사람들은 있다. 소수이지만. 그 경상도인들은 원치 않게 전라도/경상도 지역감정이라는 걸 형해화?시킬 수 있는 존재가 된 셈이다. 특이한 좌표에 서게 된 것이다. 일베를 무력화시키려면 저 존재들을 소환하면 될지도 모른다.

9/11 당시 뉴욕 센터 인근에 살았거나 미국에서 오래 거주한 우리네 사람들도 어쩌면 저 좌표에 섰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반미주의자라 해도. 자신과 상황 사이의 거리에 따라 그렇게도 사람의 정서는 갈리는 법이다.


나는 발달학을 초점을 두고서 세상을 보는 편이라서 어쩌면 일베 얼라들을 조금은 더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싸이처럼 서른 두 살 내 모습을 미국인들에게 사과하지는 않을 거다. 사이처럼 굽신거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정확히는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아닌, 제국으로서의 미국 정부와 군산복합체에게. 그리고 싸이에겐 그렇게 해서 지켜야 할 큰 이익이 있었으니까. 나는 지켜야 할 실익이 없고/


그렇게 싸이는 노래 가사처럼 '완전히 새됐다'. 싸이도 일베도 우리들 안에 있던, 있는, 있게 될 모습일까?


일베 사람들의 발달에 겹치는 풍경은 '성체들 조종에 화답하여 뜻 모르고 따라하는 어린 아이들'. 

성체들이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