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가본 야구장은 외야에만 잔디가 깔리고 내야는 벌건 황토흙을 그대로 드러낸 모습이었다. 외야의 잔디 역시 좌익수, 우익수, 중견수가 서서 뛰어다니는 자리를 중심으로 벌건 흙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모래들이 휘날려 올라가서 야구장 위 하늘로 사라져가곤 했다. 당장이라도 황야의 무법자 장고가 권총 차고 기관총 든 관을 질질 끌고 나타나도 별로 이상할 것 같지 않은 그런 황량함이 있었다.

 

그 야구장을 가득 채운 것은 어떤 정적이었다. 그랬다. 묘하게도 야구장은 조용했다. 배구나 배드민턴 경기가 열리는 실내체육관은 말할 것도 없고, 축구나 육상경기가 열리는 트랙 운동장도 관중의 다소와 무관하게 항상 북적대는 소음이 공간을 채우는 것이 익숙했는데, 야구장만은 달랐다.

 

야수들이 공을 잡아 베이스에 던지고 아웃카운트를 잡고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잡을 때마다 선수들이 내지르는 기묘한 파이팅 소리가 정적을 깨트리긴 했지만 그것은 차라리 광활한 정적을 구성하는 한 부분처럼 느껴지곤 했다.

 

관중들도 그냥 그렇게 자리에 앉아 별 말이 없었다. 어쩌다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오기도 했지만 그것은 거대한 정적의 흐름 속에 어쩌다 섞여드는 이질적인 요소에 가까웠다.

 

나는 야구라는 것을 그렇게 처음 접했다. 그리고 그런 정적과 조용하게 내면에 침잠하면서도 경기에 그때그때 몰입할 수 있는 그런 집중과 여유, 단락 단락이 좋았다. 내가 이해하는 야구란 바로 그렇게 고저강약과 리듬, 단락 그리고 거대한 정적이 있는 스포츠이다.

 

언제부터인가 야구장에서 그런 정적이 사라졌다. 꽹과리 소리와 핸드마이크, 풍선 등 갖가지 응원도구, 관중들의 소음이 야구장의 빈 공간을 허락하지 않고 가득 채운다. 나는 야구를 구경하러 왔는데, 응원단과 치어리더들은 내게 온갖 동작과 박수, 반응을 요구하면서 나더러 누군가의 구경거리가 되라고 요구한다.

 

그런 역할극에 어느 정도 부응해주는 것도 살아가는 요령의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급적 따라주는 편이지만, 내면의 짜증은 점점 커진다. 좀 야구만 보고, 다른 생각도 하면서 앉아있게 놔둘 수 없겠냐? 왜 내가 내 돈과 시간 들여서 니들의 퍼포먼스에 동원되어야 하는 거냐?

 

야구장에 잘 가지 않게 된 이유 중의 하나다. 아마 이런 의견은 무시해도 될만큼 소수이리라. 그래서 야구장은 더욱 가지 않게 된다. 설혹 기아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에 나간다 해도 정말 기꺼운 마음으로 표를 사서 가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 팀의 시합 결과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된 것도 상당히 오래 전 일이기는 하지만.

 

박기량이라는 아가씨의 TV 출연 발언에 대해서 논란이 오가는 것을 보면서 해보는 생각이다. 그 아가씨의 발언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고, 그냥 엉뚱한 생각을 해보는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