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12일) 오후 3시 금천구청에서 열린 새정치연합의 '당원에게 길을 묻는다' 행사를 참관했습니다.


새정치연합이 위기인 것은 확실하고, 그 위기를 소속 국회의원들과 주요 정치인들 그리고 당원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도 확실한데 과연 그 진단이 어떻게 나오는지 해결책은 어떻게 제시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안내 데스크에서 저는 당원이 아닌데 참석하려 한다고 했더니 처음에는 입장을 막더군요. 접수하던 분이 다른 책임자를 불러 이것저것 묻더니 입장을 허락해주었습니다.


행사 시작하기 거의 1시간 전에 갔기 때문에 행사 준비하는 모습부터 볼 수 있었습니다. 새누리당의 행사에 가본 적이 없어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름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뭐랄까, 당원들이 당에 대해서 관심과 애정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만.


다만, 행사 준비나 진행에서 낡은 형식성이 여전히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좀 거슬렸습니다. 물론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참석 국회의원 누구누구에게 인사말을 시킬 것인지 그 자리에서 설왕설래하는 모습도 그렇고 준비가 체계적이지 않다는 느낌도 들더군요.


말 그대로 당원들에게 듣는 자리라면 국회의원이나 평소 발언 기회가 많았던 사람들보다 말 그대로 평소 드러나지 않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좀더 자유롭게, 좀더 편하게 발언할 수 있는 자리와 형식, 장치를 마련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다른 사람들의 발언은 대개 의례적인 인사말에 가까웠습니다만, 박원순 시장은 등장하면서부터 관심과 이목을 끌었고 발언 태도나 내용도 뭔가 작심하고 나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웃도리 벗으면서 "이제 좀 스티브 잡스 같습니까?" 하는 발언이나 태도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나이먹은 당원들과 대조되는, 젊은 세대를 의식한 발언이겠지만 유력 정치인이 기껏 스티브 잡스(가 별 게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고) 같은 기업인의 이미지나 차용할 생각을 한다는 게 좀...ㅠㅠ


발언 내용은 더욱 그렇더군요. 특히 과거 서울시장 후보 경선 때 "민주당은 선거인단을 버스로 실어나르는 동원 투표를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결국 누가 이겼느냐?"는 발언은 경솔했다고 봅니다. 당원 지정발언에서 어떤 고참 당원이 이 부분을 지적하며 "민주당은 동원 선거를 한 적이 없다"며 매우 정중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반박하더군요. 이후 이어지는 박 시장의 발언도 자기 과시라는 느낌이 강했고, 무엇보다도 현재 새정치연합의 문제점을 매우 안이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인용한 기사에 자세하게 나오지만, 박 시장은 자신이 희망제작소 등에서 기획 진행한 프로그램에 대해서 엄청난 자부심을 드러내면서 "이런 식으로 하면 한 달에 새정치연합 지지율이 10%씩은 오를 것"이라고 하더군요. 현상적으로 젊은이들과 지식인/전문가들이 새정치연합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문제가 기껏 저런 이벤트성 기획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말 그렇게 믿는지 묻고 싶어지더군요. 이 분, 기본적으로 정치적 컨텐츠와 이벤트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박 시장은 새정치연합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대립전선을 엉뚱하게 긋고 있다고 봤습니다. 즉, 과거 김대중이 이끌던 민주당 시절의 구태와 자신이 상징(?)하는 참신한 시민적 가치라는 대립전선으로 문제를 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박원순 시장의 정치적 내공이라는 데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한 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미주알고주알 따지기는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그러한 인식이 친노세력의 그것이라는 점, 그러한 인식으로 새정치연합의 문제를 진단하고 주도해온 친노세력이 얻은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좀더 철저한 고민과 모색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시장 본인은 친노세력과 분명히 구분되는 정치적 지향점과 노선을 추구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실제 내용은 친노세력과 구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는 겁니다.


사전에 지정해서 3분씩 발언한 당원들의 발언 내용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의 상황에 대한 위기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공정한 공천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SNS에서 새누리당에게 밀리고 있다는 한탄,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새누리당의 여론전에 대항하여 당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실탄(반박 논리나 자료 등)조차 전혀 제공되지 않았다는 한탄, 당의 운영이나 정책 개발에서 당원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당의 연구소나 운영기구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매우 뼈아플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내가 새정치연합 국회의원이나 주요 당직자라면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는 얘기입니다. 진짜 그 분들이 어떻게 느꼈는지는 알 수 없죠^^).


현장에서 신청한 사람에게도 발언권을 준다고 해서 종이에 질의 요지를 적어서 제출했습니다. 제가 발언하기에 앞서서 연세 많으신 고참 당원 한 분이 “현재 새정치연합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무엇보다 노빠들의 패권주의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당의 미래가 없다. 노빠들은 모든 당직에서 물러나 이선으로 퇴진하라”는 얘기를 하시더군요. 저는 다음과 같은 요지로 발언했습니다.


[나는 당원이 아니지만 그동안 민주당 계열의 정당 외에는 지지해본 적이 없다. 양해를 얻어 이 자리에 나왔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정당의 기본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지세력과 기반의 이익을 옹호하고 그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한 지지세력의 이익이 결국 국가 전체의 이익으로 연결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당의 존재 이유이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가장 강력한 지지기반인 호남을 위해서 무슨 노력을 했는가? 일베 같은 호남 혐오 언행에 대해서 당 차원의 목소리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지 않은가? 하루에도 몇 개씩 나오는 당 대변인 성명에 이 문제를 언급한 적이 없다. 표는 호남에서 얻으면서 실제로는 호남과 관련이 없는 정치세력으로 행세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이런 태도는 시장에서 좌판 깔고 장사하는 부모를 부끄러워하고 친구들에게 ‘저 사람 내 부모 아니라’고 부인하다가 신형 스마트폰 갖고 싶으면 부모에게 손 내미는 십대와 어떻게 다른가? 모바일 투표니 뭐니 하는 것도 결국 당원의 비중을 줄이고, 호남의 목소리를 제한하자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아까 박원순 시장이 과거 민주당의 투표 행태를 부인하는 식의 발언을 한 것도 문제라고 본다. 정당에서 자신의 전통과 기반을 무시하는 식의 발언이 이렇게 쉽사리 튀어나오는 것, 거기에 대해서 아무 문제의식도 없다는 게 정말 심각한 문제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결국 이 당은 김대중당과 노무현당으로 갈라지는 것밖에 길이 없지 않을까?]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는 새정치연합이 왜 정작 선거에서는 그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가에 대해서도 발언을 준비했지만, 3분이 지나 마이크가 꺼지는 바람에 그 부분은 간략하게 언급하고 생략했습니다.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그 자리에서 즉석 발언을 할 분들에게 발언 기회를 주자 새정치연합의 무슨 당직자라는 여성이 일어나 발언하더군요. ‘정당은 지지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그러려면 호남과 더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요지였습니다. 정확한 워딩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는지 ‘단절해야 한다’는 것인지 기억이 분명치 않습니다. 그나마 더 온건한 표현인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으로 일단 정리합니다.


그 여성의 발언이 새정치연합의 현재 주류세력의 가장 보편적인 인식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의 지지기반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호남을 버려야 한다는 식의 인식과 발언이 저렇게 ‘당원에게 듣는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튀어나오는 것이 바로 새정치연합의 현실이고, 이 당이 처한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이 당은 자신들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이런 인식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되지 않을까, 저런 발언을 접할 기회도 더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추미애 의원이 인사말을 하면서 새정치연합이 돌아가야 할 지점으로 김대중을 언급하면서 노무현을 빼놓은 것, 박지원 의원이 “모바일투표는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발언을 한 것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발언을 했던 새정치연합의 당원 한 분이 행사 끝나고 다가와서 “얘기 잘 들었다. 얘기 좀 더 하자”고 하셔서 금천구청 근처에서 30분 가량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영남패권과 호남의 소외현상, 새정치연합의 문제점 등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공직 생활을 하다가 은퇴하셨다는 그 분이 당원으로서 느끼는 분노와 비애가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 행사를 참관한 경험을 자체 정리하면서 새정치연합에 없는 게 두 가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신상필벌과 실사구시라는 두 가지 원칙입니다. 불공정한 공천이 신상필벌의 부재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현상이고, 당의 정책개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실사구시의 실종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당원들의 발언에서 드러난 문제의식으로 볼 때 신상필벌의 문제점에 대한 공감대는 비교적 광범위하게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당의 운영을 실제로 장악하고 있는 친노세력도 아마 어떠한 형태로건 이런 불만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과연 그들의 가장 강력한(실제로는 유일한) 무기인 모바일투표까지 포기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상당한 수준으로 공정성을 내세울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낼 겁니다. 나름 당원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방식이 되겠지요.


하지만 실사구시의 문제는 당분간 답이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 서민과 중산층이 이 당을 지지하지 않는지, 아니 지지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 당원 대중들을 포함해서 국회의원들과 당직자들의 문제의식이 너무 낡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자유주의 타령, 사람이 먼저라는 정신승리적 주문을 벗어던지는 과감한 문제 제기가 없다면 이 당은 당분간 대중의 지지를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 당의 유력 대선주자가 문재인이나 박원순 같은 수준 이하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렇지요. 새누리당의 삽질 등 요행에 힘입어 집권한다고 해도 그것은 이 당이나 국가, 민족에게 더 큰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경제 회복에 큰 족적을 남겼던 이 당의 정치적인 자산은 이제 거의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 당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정말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당에서 건질 것은 건지고 추릴 것은 추리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할 터인데, 그 첫 걸음은 어떻게 디뎌야 할 것인지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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