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와는 아무 상관이 있을 리가 없는 서태지가 '소격동'이라는 노래를 불러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노래 제목으로 특이하게 동의 이름을 붙였기에 도 도대체 소격동이 어디인가 찾아보았더니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었던 동네이었다.

소격동은 딱 한번 가본 곳이었지만 내 생애 별 의미 없이 의미가 깊은 사건이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국군보안사령부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큰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1965 년도에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이상하게도 ‘반혁명 사건’으로 여러 명의 영관급 장교들이 구속되었다. 당사자들의 주장으로는 박정희가 애초에 약소한대로 민정으로 이양할 생각이 없고 계속 권력을 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궐기했다고 하지만 그렇게 숭고한 목적으로 목숨을 걸지는 않았을 것 같고 무엇인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반대편에서는 장성 진급이 안 되어 인사 불만을 가진 장교들의 모의라고 해서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군부 세력 간의 세력 싸움이었다.
그러나 숙청된 이들의 말로는 비참해서 몇 명은 사형언도를 받고 이인수 대령이라는 이가 무기징역을 받았다.

이 대령은 5.16 군사반란 당시에 육군 참모총장으로서 박정희와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한 사이였던 장도영 중장이 임시로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을 맡았을 때 비서실장을 지낸 사람이었다.

나는 1967 년도에 야간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만나는 이들이 주로 직장인이었다. 그 중에 서대문 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있는 박상환이라는 선배가 있었다. 하루는 막걸리를 마시는 자리에서 평소에 잘 떠들던 박 선배가 한숨을 푹푹 내 쉬는 것이었다. 내가 ‘형? 왜 그래? “라고 물었더니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수인 가운데 이인수 대령이 있는데 인격적으로도 훌륭하고 여러 모로 배울 점이 많아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대로 잘 돌보아 주고 있었는데 이 대령이 어려운 부탁을 해서 고민이라는 이야기였다.

부탁인즉은 자기에게 편지를 전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그 편지는 우체통에 넣을 수가 없고 반드시 당사자를 만나서 직접 전달을 해 주어야 하는 편지인데 수신인이 당시 보안사령관인 윤필용 소장이라는 것이다. 박 선배가 이인수 대령의 부탁이기 때문에 거절은 할 수 없었지만 공무원 신분으로 그런 위험한 일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나도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19살 대학 1학년생이기는 했지만 무기징역을 받은 정치범의 편지를 당시에 나는 새도 떨어트릴 권력을 쥐고 있는 보안 사령관에게 전달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막연하게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원래 겁이 좀 부족하게 태어난 인간이라서 ‘그 편지 나 줘요. 내가 전해 줄게.’라고 했다. 박 선배는 “너 괜찮겠냐?”고 몇 번을 거듭 물었지만 당시 정치에 대하여 잘은 몰라도 박정희에 대하여 어쩐지 기분이 나빴는데 그런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일인데 ’만일에 물으면 사실대로 말하면 되겠지 뭐. ‘하고 단순하게 생각을 했다.

편지 봉투에 써 있는 주소대로 소격동에 있던 보안사령부로 찾아가서 사령관 면회를 하러 왔다고 했더니 정문에서 보초를 서는 헌병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너 임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왔어? “고 눈을 부라렸다.
내가 “사령관에게 전해줄 것이 있어서 왔다. ‘ 고 하니까 그제야 정색을 하고 ’그럼 맡기고 가라. ‘는 것이었다. 내가 "안 된다. 직접 전해 주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니까 인상이 굳어지더니 어떤 사무실로 데려갔다. 거기서 사복을 입은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편지를 달라고 하길레 여전히 안 된다고 했다. 보안사 측에서는 머리에 피도 안마른 녀석이 사령관을 만나겠다고 하니 기도 안차했지만 사령관에게 직접 전해 줄 것이 있다고 하니 위협을 해서 뺏을 수도 없고 하니 난처한 입장이 된 것이다. 보안사 직원이 나에게 ”군대 갔다 왔냐? “고 물었다.”안 갔다 왔다. “고 하니까 피식 웃으면서 ”그러니까 네가 고집을 부리지……. “하면서 실소를 했다.
과장이라 불리는 사복은 계속 나를 구슬리고 나는 고집을 부리면서 한 동안 앉아 있었는데 서로 물러설 수없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 보안사 측에서는 나를 그냥 보내줄 수도 없는 일이고 사령관에게 직접 전해줄 편지가 있다는데 나를 함부로 대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도 비록 위협은 없지만 그 자리에 무작정 버티고 있을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사무실에 역시 사복을 입은 한 사람이 들어오더니 “어? 성수 네가 여기 웬일이냐? ‘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았더니 2 년 전에 천호동에 있는 사설 독서실에서 공부할 때 고시공부 한다고 옆에 앉아 있던 30대 형이었다. 차종치종 이야기를 들은 형은 ’안심하고 나에게 맡기고 가라. ‘고 해서 나도 곤란한 처지에 잘되었다 싶어서 그 형에게 편지를 맡기고 와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형은 고시에 낙방하고 보안사 문관 시험을 보고 들어왔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 사건을 까맣게 잊어버린 15 년이 지난 후 한 번은 어떤 교회 앞을 지났는데 ‘정치범 사형수 이인수 신앙 간증’ 이라는 프랭카트가 걸려 있었다. 나는"어라? 저 양반이 언제 나왔지?" 하는 생각으로 그 교회를 들어가서 이 대령의 간증을 들었다. 집회가 끝나고 나서 조용한 시간에 이 대령에게 ‘혹시 서대문 교도소 교도관이었던 박상환에게 편지 보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고 물었더니 순간 억굴 빛이 변하면서 경계하는 듯한 자세가 역력했다. 내가 신분을 밝히고 그 당시 되어졌던 일을 이야기 하자 이 대령은 내 손을 덥석 잡더니 ”나는 이제까지 박상환이 편지를 전해 주었는지 알았더니............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도대체 그 때 편지 내용이 무엇이었느냐? “고 물었더니 윤 필용이 육사 동기로서 자신에게 신세를 진 일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정치적으로 패배해서 살 길이 없지만 가족들을 부탁 한다. ‘는 내용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편지를 전해 받고 윤필용은 그 후부터 가족들의 생계를 돌아보아주었다고 한다. 이 인수 씨는 내 손을 잡고 ’당신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의 역할을 해주신 겁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든 내가 할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요. 내가 신세를 꼭 갚겠습니다. ‘라고 했다.
그 이후 이인수 씨와 여러 번 만나서 좋은 시간을 가졌는데 몇 해 전 중국에서 교통사고로 먼저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과적으로 박정희는 그를 죽이려고 했고 나는 그 가족을 살린 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