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의 어원은 작난(作亂)이라고 한다.


'어지러움을 만든다'라는 뜻으로 '만든다'라는 표현에 의도성 여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물론, 의도성이 포함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말이다.



장난은 作亂에서 출발하지만 드물지 않게 作難(어려움을 만든다)이 되버린다. 이 글 제목에서처럼 ''던진 돌'은 作亂이었지만 호수의 개구리에게는 作難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일베의 인종주의적 발언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모든 차별적 언어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발언자는 作亂이었지만 그 발언의 당사자대상자는 作難이 되어 버린다는 것.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맞아 죽을 확률'이 아니다. 흔히, '뭐, 그깟 장난에 화를 내고 그래? 속좁게?"라고 하는데 물론, 경우에 따라 진짜 속좁게 장난을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作亂을 일으킨 사람의 입장이고 作難으로 받아들인 사람의 입장을 더 고려해야 하는 것, 이걸 프랑스말로 '똘레랑스'라고 한다. 그리고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피해자 중심주의적 사고'도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경험학상, 作亂을 作難으로 받아들인다면서 상대방을 비야냥 대는 사람들이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사람들보다 作亂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는 '속좁게' 처신하는 경우가 더 많다.




作亂과 作難을 경제학 용어를 빌어 표현하자면 '장난의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작동한다. 즉, 作亂이 作亂으로 머무를지 아니면 作難으로 받아들여질지는 그 행위의 내용으로 결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게는 각 개인의 '한계 효용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오래 전부터 해보고 싶은 作亂이 있다. 18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갈 때 엘리베이터는 차가 움직이는 것처럼 가속도 구간... 정속도 구간... 감속도 구간...이 있는데..... 종종 엘리베이터를 타면 멀미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가속도 특히 감속도 때문에 그렇다.



인체의 변화에 대한 적응이 엘리베이터의 움직임의 정도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고 이는 우주선까지 적용시킬 수 있는데... 그 '썰'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18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때 내가 누른 1층 버튼을 취소하는 作亂을 해보고 싶다. 그렇다면 엘리베이터는 어떻게 될까? 목표점인 1층이 사라진 시점에서 엘리베이터의 동작 말이다.



당연히, 각종 안전장치가 탑재되어 있고 최악의 경우에 대한 대비도 되어 있겠지만(예전에 엘리베이터의 구동은 물론 shortest path 알고리듬을 개발한 적이 있다. 이 프로젝트는 중간에 'drop'되었지만 말이다.) 그걸 잘 알면서도 '혹시?'라는 생각 때문에 아작 감행을 하지 못하고 있는 作亂이다.



잘못하면 作亂이 정말 큰 作難이 되버릴 수도 있으니까.



출근 시간에 몇자 끄적여 보았는데..... 오늘.... 왠지.... 이 作亂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마구 드는 것은 계절이 변해서일까? 최소한.....



최소한 죽기 전에 이 作亂은 한번은 해볼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드릴 말은....



"절대 따라하지 말 것"



作亂으로 따라했다가 作難이 되어 '남탓'하지 말라는 야그.....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