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하지 않으려는 소유는 쓰레기다. 소유의 가치는 사용의 몫이다. 당신이 얼마나 소유하는지 난 관심없다. 그러나, 당신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난 관심많다.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고듣고 만지고나서야 비로소, 나의 소유를 당신도 사용하도록 許할것인지 不許할것인지 좌우한다.

투자자가 아닌 투자가(家)는 남이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알아내는데까지만 자신의 소유에 대한 남의 사용을 '흔쾌히' 許한다. 그러나 쫌생이는, 남이 얼마나 훌륭히 사용하는지를 보고도듣고도 최소한, 만지고서도, 제소유를 남이 사용하려함을 不許한다.

한편 호구는, 남이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지도듣지도 최소한, 만지지도않고서, 제소유를 남에게도 사용하도록 許한다. 꼬봉은, 남이 얼마나 한량히 사용하는지를 보고도듣고도 최소한, 만지고서도, 제소유를 남이 사용하려함을 許한다. 마지막으로 깡패는, 제자신이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여주지도들려주지도 최소한, 만지게해주지도 않고서, 호구와 꼬봉의 소유를 제소유인양 사용한다.

깡패 맥여살리느라 바닥난 가산의 호구와 꼬봉은 제모자람은 간과한채 소유 그 자체를 惡으로 몰아세우기 시작한다. 영리한 쫌생이와 영악한 깡패는 허겁지겁 제소유를 챙겨 철새따라 나라를 떠나고 바닥난 가산의 호구와 꼬봉만이 득실대는 도시에서 무소유는 善으로 둔갑되어 엄한 투자가(家)를 공공의적으로 낙인찍는다.

이제 남은것은 오직, 정적silence 뿐이다. 망국의 도화선은 쫌생이와 깡패가 지피지만 망국의 마침표는 호구와 꼬봉이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