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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에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일베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김학준씨는 연구를 위해 일베 회원들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깊은 인상을 받았다. “첫째로 굉장히 착하다. ‘키보드 워리어’라서 현실에서 주눅이 든 것도 아니고, 할 말 다 하면서도 아주 예의 바른 청년들이 줄줄이 나오더라. 둘째로, 다들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한다. 10대 때부터 아버지를 존경하고 영향을 받은 이야기가 많다. 전반적으로 삶의 태도가 참 순응적이다.”

소수자 혐오, 정의, 자부심, 내용과 형식의 괴리, 그리고 순응주의. 일베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한데 모아놓고 보면 종잡을 수가 없다. <시사IN>은 일베 연구자 김학준씨와 데이터 기반 전략컨설팅 회사 트리움의 도움을 받아,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알려졌던 일베의 모습을 입체 조명했다.

첫 번째 질문은 여론에 충격을 준 ‘광화문대첩’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루저·지질이로 간주되던 이들은 어떻게 해서 이토록 강력한 자부심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무임승차론 앞세운 ‘일베식 정의 구현’



일베가 보기에, 여성·진보·호남이 공유하는 특징은 ‘권리와 의무의 불일치’다.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는 과도하게 요구한다. 여성은 데이트 비용을 내지 않고 남자를 등쳐먹고, 진보는 제 능력으로 성공하는 대신 국가에 떼를 쓰고, 호남은 자기들끼리만 뭉쳐서 뒤통수를 친다.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북한도 남한의 지원은 받아먹고 남한에 대한 의무는 다하지 않는 존재다.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성공해온 역사에 기여한 바가 별로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베의 눈에 이들은 2등 시민이다.

국가 건설의 주역은 남성·산업화세력·영남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대한민국의 주류가 되었다. 즉, ‘기여한 만큼 받았다’. 그런데 여성·진보·호남이 비주류의 권리를 내세워, 기여한 것보다 더 큰 보상을 요구한다.

구체적인 사례로 확인해보자. 세월호 유가족은 일베가 공격하기 쉬운 대상이 아니다. 이들이 가족을 잃는 과정을 전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봤다. 어마어마한 감정이입과 공감의 에너지가 있다. 하지만 일베는 세월호 유가족을 상대로도 전선 뒤집기를 시도한다.

그러려면 먼저 ‘특권’, 즉 과도한 보상이라 딱지 붙일 거리가 필요하다. 유가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베는 대학 특례입학과 보상금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한다. 이제 공격할 과녁인 ‘특권’이 생겼다. 이 구도에서 유가족은 ‘교통사고를 가지고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는 무임승차자’가 된다.

일베에게 이 구도는 이미 익숙하다. 일베가 끈질기게 공격 대상으로 삼는 5·18을 다루는 방식이 정확히 이렇다. 일베는 5·18 희생자 유가족이 ‘국가 보상으로 호의호식한다’고 주장하면서, 반대편에 ‘폐지를 줍는 한국전쟁 희생자 유가족’을 배치했다. 이제 5·18 유가족도 무임승차 딱지가 붙는다. ‘일베식 정의 구현’의 핵심은, 소수자가 국가로부터 받는 보호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이들을 무임승차자로 낙인찍는 과정이다. 무임승차자라는 규정이 일단 한번 먹혀들면, 이는 일베의 영향력을 넘어서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일베 코드가 보수를 유혹하는 이유



1976년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4년 후에 대통령이 되는 로널드 레이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임승차 스토리를 들고 나온다. 가짜 신원 수십 개를 만들어 복지 혜택을 싹쓸이해 캐딜락을 타고 다닌다는 한 흑인 여성을 레이건은 ‘복지 여왕’이라 야유했다.

복지 여왕의 무임승차 스토리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감세 공약은 레이건을 재선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훗날 복지 여왕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확인됐다. 레이건은 얄궂게도 이 복지 여왕을 ‘흑인’ ‘여성’으로 설정해, 소수자에 무임승차 낙인을 찍는 일베 특유의 기술을 40여 년 전에 보여주었다.



폭발적 진화 메커니즘이 일베의 뿌리



일베의 진화 메커니즘은 유머 코드만 극단으로 밀어붙인 것이 아니다. 무임승차 혐오라는 날카로운 칼도 결국은 이 폭발적 진화 메커니즘이 극한까지 벼려냈다. ‘진지 빨고 쓴 글’이 일간베스트 게시물이 되려면, 보수와 중도가 공유하는 무임승차 혐오를 간결하고도 정확하게 자극해야 한다. 경쟁은 무임승차 혐오의 ‘명중률’을 끊임없이 끌어올린다.

폭발적 진화 메커니즘이 없다면 일베가 예전만큼의 담론 생산 능력을 보여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극단성(반사회적 표현)과 전형성(보수 본연의 도덕 감정). 이것은 일베의 두 얼굴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한 뿌리에서 나온 쌍둥이다.




“권위주의 산업화의 아들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베 사고체계 최초의 가정, ‘소수자를 특권층으로 뒤집는 가치 전도’를 일단 그렇다 치고 논의를 끌어왔다. 그 가정을 받아들였을 때 일베가 어떤 논리를 따라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재구성했다. 이제는 마지막 수수께끼를 풀 차례다. 일베의 청년들은 왜 소수자를 특권층으로 뒤집는 가치 전도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을까. 이들은 왜 소수자에 감정이입하는 길 대신 혐오를 택했을까. 트리움의 도움을 받아 일베 이용자 담론 지도(아래 <그림 3>)를 그려보았다.

   
 

“‘아버지-서울’ 축이 압도적이네요.” 트리움 김도훈 대표의 말이다. 담론 지도는 ‘아버지-서울’ 축이 경부고속도로처럼 중심축을 이뤘다. “이 친구들한테 재밌는 게, 아버지의 삶을 거의 그대로 내면화합니다. 젊은 때는 아버지와 같은 권위에는 반항도 하기 마련인데 그런 게 없어요.” 그럼 서울은 뭘까? “상세 분석을 보면, 경상도에서(담론 지도에서는 '대구') 어렵게 자란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와서 나름 자리를 잡습니다. 인터뷰를 한 친구들이 그 서사를 자랑스러워하고 닮고 싶어해요.”

좋은(‘김치녀’가 아닌) ‘여자친구’를 만나 ‘서울’에 자리 잡고 ‘가족’을 이루는 꿈. 인터뷰를 한 일베 이용자들 대부분이 바라는 미래상이었다. 인터넷에서는 극단적 여성 혐오를 쏟아내고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는 폭식투쟁을 하던 그 일베가 맞나 싶은 평범함. 김학준은 논문에서 “평범함이 유토피아가 되는 시대”라는 표현을 썼다. 아버지 세대의 ‘평범한 성공 서사’가 이제는 특별해져버린 시대에, 인터뷰에 나섰던 일베 이용자들은 ‘평범함’을 쟁취하려 발버둥친다. 고통스럽다고 도와달라고 외칠 수는 없다. 그건 무임승차다.

센 놈에 붙어라.” 김도훈 대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권위주의 산업화 시대의 한국 사회를 버텨내고 살아온 아버지라면, 아마도 몸으로 느낀 생존전략일 겁니다. 강자에 저항했다면 ‘힘들게 시작해서 서울에 자리 잡는’ 성공을 거둘 확률은 꽤 떨어졌겠죠. 아버지 세대가 체득한 생존전략을 아들이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어요. 일베가 무엇인지 정의하라고 한다면 제 가설은 그겁니다. 권위주의 산업화 시대 생존자의 아들이 아버지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돌아왔습니다.”

‘센 놈에 붙어라’ 전략에서 소수자에 손을 내밀고 연대하는 것은 금기다. ‘국가-아버지’에 대한 순응은 소수자 혐오의 동력이 된다. 김 대표의 가설이 옳다면, 소수자 혐오가 먼저다. 무임승차 혐오는 정당화를 위해 뒤늦게 덧붙는다.

이렇게 해서 일베는 지독한 ‘구조맹’이 된다. 여성의 유리천장도 호남의 지역차별도 일베의 눈에는 구조적 불리함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 부족이 된다. 사회 구조 차원의 유불리를 인정하지 않으니, 소수자에게 주는 지원은 권리가 아니라 무임승차다. ‘구조맹’의 항의는 국가를 향하는 법이 없다. 김학준은 논문의 결론을 “일베 이용자는 근대 한국 체제가 가장 성공적으로 산출해낸 통치 대상이다”라고 내렸다. 국가는, 오직 국가만이 지나치게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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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충의 심적 부분이나 구성원 분석 부분은 아직 '가설'의 내용이지만 설득력이 강하네요.

결국 일제로부터 이어지는, 각자도생과 약육강식, 정의의 실종과 현실과 헌법`도덕의 괴리,
이 아수라장에서 살아남고 빌붙어 기생한 무리들이 세월호 유족들에겐 욕을 퍼부으면서도, 닭그네에게는 불쌍하다느니 하며 노예근성을 드러내는 무리가 되고, 그 밑에서 자란 무리들이 저렇게 되는 거겠죠.(일부에서는 벌레가 새끼친다고도 하더군요. 모 지역은 이미 일베충 산란지로 악명이 높고. 서울이야 워낙 사람들이 많으니 부각이 덜 되는 측면이 있지요.)


대법원의 지만원, 전사모, 원세훈 판례의 모습, 이와 대비되는 소수자나 반정권 관련자에 대한 엄단(히틀러 봐주던 독일 극우파 법조계스런)
특유의 '평등'정신을 하향평준화에 쏟으면서 만만한 공무원 등에게만 거품물고
정작 그러면서도 부자감세에는 눈을 감는 무리들. 서민증세도 야당 탓이라는 무리들.
바이마르 공화국을 무너뜨린 '히틀러 유겐트'들도 저렇게 왕당파 중산층 내지 지주층 출신 자제들이 많았다고 하더군요.
여기에 노동계급 하층 일부와 잉여벌레들, '보수'를 자처하는 무리들이 히틀러를 밀어주어 한때 50% 득표까지 접근했었고, 권력을 잡았죠. 지금의 한국만큼이나 극우에게는 허술하고 물렁한 잣대들도 더해져서.

지금 한국 돌아가는 꼴 보면 일본에서 아베 등이 넷 우익 이용해서 극우 여론 조성하면서 나라꼴 말아먹고 장기집권하는 것이 반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표밭인 노인층에게 복지 퍼주고, 그만큼 젊은층과 서민들을 빨아먹겠죠. 부유층 감세와 특권은 당연하고.
경상도 군바리들에 노비 벌레들이 3.1운동으로부터 이어지는 민주주의 공화국을 이리 망쳐놓은 걸 보면 참 암울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더더욱 암울한 것은, 반대편의 극렬 야권 세력은 '아버지에 대한 지나친 반항, 무책임, 내부적으로 애들 서열 다툼스런 패권경쟁, 실망스러운 아버지를 대신할 '또다른 우상''이 대세인 것 같은 것이겠죠.
이상돈 교수가 어제 경향신문에 '여야를 대체할 대안세력'의 필요를 외치던데, 조직 없이 들어가 코너에 몰린 안철수도 영 아쉽기 짝이 없고, 새누리는 이득으로 뭉칠 뿐인 부패와 무능 집단일 뿐이고, 야권은 조직도 돈도 부족한 채 지리멸렬해서 경상도 잉여정권을 연명시키는 일등공신 노릇하고 있고...

이래 저래 박정희를 비롯한 '보수'의 배설물이 아직도 이 나라를 병들게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저런 사회학적 연구 및 위아래 사상적 연구 등이 더해져 나름의 '계보학'을 만들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밑거름의 하나가 되면 좋겠네요. 어떤 면에서는 저런 노력들이 조금씩이나마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새로운 '인동초'가 피어날 기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가냘프게나마 희망을 가져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