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간 Counsel님과 다른 아크로 회원들간에 여러 주제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오가는 것을 눈팅하여 왔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지만 저는 매우 유익한 논쟁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조금 단어들이 순화되면 좋겠지만, 저 정도는 논쟁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더 이상의 극단의 단어들이 나와 논쟁을 방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늦은 감이 있어 뒷북치는 것 같지만 최근의 논쟁에 대해 제 의견을 내놓아 보겠습니다.


1. 서북청년단 재건위의 행위에 대한 논쟁

서북청년단 재건위의 행위에 대한 Counsel님의 입장을 시닉스님 등 다른 아크로 회원분들이 비판한 것은 약간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느낌입니다. Counsel님이나  다른 아크로 회원분들, 그리고 저까지도 서북청년단 재건위의 행위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동일합니다. 저는 저런 서북청년단 재건위의 행위는 보수진영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아니라 세월호 문제를 풀어가는데도 방해가 될 뿐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Counsel님은 서북청년단 재건위가 현행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 한 그들에게도 양심과 사상,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인데 이를 다른 분들이 곡해하는 것 같습니다.

Counsel님의 주장은 서북청년단 재건위의 행위를 비판하는 것은 각자의 입장이나 관점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으나, 서북청년단 재건위의 행위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죠.

이 문제와 관련하여, 네오나치의 집회를 금지하는 것에 대해 이것을 잘못이라고 하고, 오히려 네오나치의 집회를 금지하는 것이 나치와 같은 것이라고 비판하는 유태인 변호사의 글을 복사해 올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유태인 박해를 정당화하고 인종차별을 부추키는 한 단체의 집회를 허가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의 나치의 범죄행위를 떠올리며 그 이념을 이어받은 신 나치주의자들에게 집회의 자유를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한번 깊이 있게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들의 이념과 주장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와 같지 않다는 이유로 집회와 언론의 자유를 박탈한다면, 혹시 그것이 나치주의 아닐까요? 돌이켜 보십시오. 바로 나치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던가요?

미국의 수정헌법에는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인 표현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나치가 싫다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사실은 그 자체가 나치주의 아닐까요? 나치당은 유태인에게 어떠한 반대의 권리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민주주의 적은 신 나치주의자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반대자들의 입을 틀어막아버림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우리 자신들 말입니다. 그것은 폭력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유태인입니다. 하지만 저는 유태인이기 때문에 나치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저는 민주주의자입니다. 저는 민주주의자이기 때문에 나치를 반대합니다. 나치주의보다 민주주의가 인간의 본성에 훨씬 가깝다고 믿기 때문에 나치주의를 반대합니다.

민주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자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가장 우월하다고 믿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정치적인 반대자들에게 자유를 제한하려 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그것이 옳다고 생각합니까? 과연 그렇다면 우리가 나치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요? 만일 이 땅에 나치주의가 다시 출현한다면, 그것이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들이 행하는 이 폭력적인 행위 때문일 것입니다.“

출처 : 대중매체 읽고 쓰고 생각하기 / 김슬옹, 송재희 저, 세종서적


저는 Counsel님의 입장이 이 유태인 변호사의 주장과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혹시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이라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이 유태인 변호사의 주장에 동의하고 지지를 보내고 있구요.


2. 5.18을 보는 입장

먼저 저의 5.18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시작하겠습니다. 5.18은 대중들의 자발적 민주화운동으로써 우리나라 민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역사적 의미가 큰 사건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Counsel님의 말씀처럼 실증주의적 자세도 필요하며, 5.18에 대한 관점이나 평가를 한 일방으로 강요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관계의 확인을 위한 작업들마저 5.18을 폄하하는 행위로 비난받는 경우가 많고, 5.18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이나 평가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정상적인 것이 아니며,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점이 있다면 바로 잡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사건)에는 항상 관련 이해당사자들이 있으며, 이 중에는 주체적 입장이 아니라 자기의 의지와 무관하게 휩쓸리고 희생되었지만 보상은커녕 변변히 자신들의 입장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다 함께 보듬고 나갈 대승적 자세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에 대해 2년 전에 영화 <레미제라블> 감상평에서 언급한 것이 있어 그대로 옮겨 봅니다.


저는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를 생각하면서 그가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쓴 또 다른 작품 <93년>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아마 레미제라블과 비슷한 시기에 조금 먼저 개봉되었던 5.18을 배경으로 한 <26년>과 오버랩 되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두 작품은 하나는 소설이고 하나는 영화이지만, 숫자를 제목으로 했다는 점과 민중의 저항을 배경으로 했다는 비슷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93년>은 프랑스대혁명기인 1793년의 방데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요. 인간에 대한 사랑을 결여한 이념과 사상의 공허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자비와 용서로 문제를 해결하는 레미제라블이 던지는 메시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저는 <26년>도 ‘증오와 복수’가 아닌 장발쟝의 용서와 자비를 매개로 했었더라면 어떠 했을까 하는 바램을 가져보았습니다. <26년>과 <화려한 휴가>가 나름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93년>이나 <레미제라블> 같이 5.18도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용서, 자비, 화해의 관점에서 한번 다루어 줄 때도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것일까요?


아직도 ‘나쁜 남자’가 멋있어 보이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앙시앙레짐의 충실한 수호자로 나오는 쟈베르 경감도 새롭게 다가오더군요. 자기 자신이 믿는 체계, 자기가 믿는 정의에 따라 쟝발장을 추적하고 앙시앙레짐의 법 아래 처벌하려하는 쟈베르 경감, 그를 보면서 문득 5.18 전남도청 진압에 직접 참가했던 사촌형이 생각났습니다. 쟈베르 경감은 자기의 자유의지에 따라 자기 신념을 관철하고, 저의 사촌 형은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그 현장에 투입되었던 것은 다르지만 두 사람이 인간이 내몰릴 수 있는 극단의 순간에 있었던 것은 비슷하다고 보여집니다. 사촌 형은 제가 운동권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당시의 경험에 대해 극히 말을 조심스럽게 했습니다만, 저는 그 짧은 이야기에서 사촌 형도 시대의 피해자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본인의 의사(자유 의지)와 무관했던 과거의 행위로 인해 자기 삶을 제대로 이야기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연 역사의 죄인일까요? 운이 나빴더라면 저나 여러분의 형제들이 사촌 형 대신에 그 현장에서 광주시민과 맞다뜨리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5.18이 장발쟝의 용서와 화해의 정신으로 바라보는 작품으로 나와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질곡의 역사를 직접 거둔 사촌 형의 삶 앞에, 겪어 보지도 못하고 그 현장에 내 자신이 없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말로만, 그리고 글로 그것을 대상으로 삼았던 제가 조금 편안해질 수 있겠다는 제 자신의 욕심이라고 비난해도 달게 받겠습니다.



또 5.18 민주화운동 정신에 반하는 행위가 당시 광주 지역에서 일어났다면 그것이 5.18 민주화운동에 묻어갈 수 없는 것이며, 그건 그것대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겠지요. 또한 이러한 사실을 전체 5.18 민주화운동의 일반 현상으로 확대 해석하거나 본질적 문제로 대두시켜 5.18 민주화운동을 폄하하는 행위도 용납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유태인 학살이나 박해가 독일 나치에 의해 주도적으로 일어나고 나치의 만행이 극심했지만 사실 폴란드나 소련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유태인 학살이나 박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태인 박해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독일 나치에게 덮어 씌우지만, 이들 유럽국가들이 자행한 행위들을 반성하거나 사과하는 것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독일 나치의 만행은 당연히 규탄하고 비판해야 하겠지만, 독일 나치의 과오 뒤에 숨어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반성없이 넘어가는 것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이죠.

역사는 객관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평가되어야 하고, 과장되거나 왜곡되는 것은 극히 경계해야 합니다.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을 넘어 미화하거나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후세들에게 자신들의 평가를 강요하기 보다는 객관적 사실을 드러내고 후세들이 스스로 평가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5.18과 관련하여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5.18 희생자(사망자) 숫자였습니다. 물론 2천명의 희생자(사망자)가 아니라 159명의 민간인 희생자라 하더라도 5.18의 의미가 퇴색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선배들로부터, 그리고 진보진영에서 출판된 5.18을 언급한 책자들을 통해 수천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으로 알고 있었고, 또 이를 주변의 사람들에게 알려왔던 입장이라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새민련(민주당) 국회의원(서영교)마저 국회라는 공개석상에서 그 희생자(사망자) 숫자를 실제(159명)와 다르게 2천명으로 언급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과장이나 왜곡이 자칫 역사적 의미를 퇴색시키거나 반대 진영의 폄하의 빌미를 제공하는 일은 없도록 객관적 사실에 충실하고 실증주의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5.18 뿐아니라 어떤 역사적 사건을 대할 때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3. 호남 차별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

먼저 지역주의(호남차별) 극복을 위해 전력투구 중이신 미투라고라님의 노력과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아이기스님과 Counsel님의 댓글 주고받기가 볼만 하더군요.

저 역시 우리 사회에 호남 차별이 은연중 만연해 있고 호남 출신분들이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의 시정을 위해 전체 구성원들의 많은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아이기스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기는 합니다만, Counsel님의 의견도 미투라고라님이 호남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인종차별 금지 법제화 과정에서 참고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두 분의 댓글 중에 새겨볼만한 문구들을 발췌해 올려 봅니다.


(아이기스님)

제가 보는 원리는 이렇습니다. 이러한 편향에서 최초의 고리는 영남이 아니라 이권입니다. 이권의 핵심은 정경유착이었고, 정경유착에서 우위에 있던 정치적 구성이 고스란히 경제적 구성으로, 차츰 이 양자가 사회전반 커뮤니티에 파급효과를 미치면서 타지의 소외가 발생했던 거고, 애향심이야 저먼 후순위로 밀려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이 궤도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여기에 부역한다는게 말이 안된다는 거고요.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긴 해도, 다수는 자원의 불공평한 배분을 강제하자는게 아니라, 본인이 불공정의 희생자니 바로잡으려는 - 착각이지만 - 입장이거나, 마치 힘겨루기를 정당한 경쟁으로 오인한채 - 역시 착각인데 - 편중에 대해 정당화를 하는거죠. 정치인은 이기적으로 악성이고, 주민은 이기적으로 멍청한거죠. 다만 뭐 다들 조금씩 멍청하고 이기적인거고 심하게 탓해봐야 인적 청산이란 과격성만 드러낼 뿐이니, 저는 의식의 변화와 제도의 정비를 주장하는데요.

해결은 힘의 논리로 정치적 집중을 통해 추가적인 배분에 올인할게 아니라, 주어진 배분을 효과적으로 쓰는데 집중하고, 동시에 추가적인 배분의 임의성을 제한하도록, 자치와 분권을 추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필요한건 지혜입니다. 고민하고 소통해야죠. 이 책임을 공적인 의무를 가진 정치인에게 물어야하고, 공적인 책임이 없는 시민들에게는 설득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도덕적으로도 바람직하고, 공학적으로도 도움이 될테니까요.


(Counsel님)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 구체적인 의미를 풀어드릴 수 있죠. 호남에 대한 조직적, 의도적, 지속적인 차별은 없었다의 의미는, 법적인 의미에서 고의적인 범죄행위나 불법행위와 같은 것이고, 구체적으로 형법적으로는 고의범, 목적범, 계속범과 같은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호남을 제외한 지역이 호남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반감이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뚜렷하고, 집권세력이 그러한 감정적 연대에 기초하여 호남이라는 지역, 그 출신인사 및 그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정책과 제도 및 시스템을 통해서 수 십 년에 걸쳐서 사회 여러 분야에 걸쳐 차별함으로써 그 지역이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들과는 구별되는 2등 지역, 그 출신인사 및 거주민들이 대한민국의 다른 국민들과 구별되는 2등 국민이라는 공공의 인식을 갖게 되는 결과에 이르러야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정말 러프하게 말해서 호남이라는 지역과 그 출신인사 및 그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마치 게토나 디아스포라 유태인처럼 차별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아 그 사실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법률을 제정하면서까지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그 정도의 차별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것이 호남인들의 피해의식이라고 봐요. 주장하는 수준은 거의 외국에서 차별받는 특정 지역인들의 그것이거든요. 누가 보면 류큐인, 이누이트, 바스크쯤 되는 줄 알겠어요. 저는 그것이 선거에서의 집권, 간단하게 말해서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지 못한 결과라고 봐요. 거의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었던 문민정부 이전까지의 시기 동안 대통령이 어느 지역에서 나오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으니까요. 만약 김대중이 그 시기에 집권했으면? 영남이 그만큼 수혜를 못 받았겠죠. 그런데 그걸 차별이라고 난리를 치면 저는 똑같이 대응했을 것입니다.


(아이기스님)

제가 '차별'을 아주 보수적으로 개념화한뒤에 차별이 없다고 주장하는건 현실과 동떨어진 무의미한 태도라고 얘길 드렸습니다. 고의범, 목적범, 계속범이라고 언급하신 맥락은 이해를 하겠지만, 법치는 기반이 보수적인데다가 대개 사안별로 판단하니 이런 구분이 통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차별의 경우는 정치적 행동의 연속성에 주목하는 거시담론이고, 말씀하신 방식으론 설명이 안되는 대표적인 현상들도 이야기를 드렸죠.

예컨대, counsel님의 준거틀로는 그이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것인가에서, 차별이 없으니 현상유지가 맞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런 방향이 본인의 의도인가요? 저는 단호하게 거부하는데요. 일단 경제부문을 보면, 비단 호남뿐 아니라 강원, 충청, 영남 등 지방의 많은 중소도시에서 노령화는 가속되고, 인재유출은 심화하고, 경쟁력은 제자리이죠. 임의적 자원배분에서 덜받는 쪽이 더빨리 노쇠해질 뿐입니다.

저는 주로 여기분들의 피해의식과 적대감정이 실제보다 과장되었다고 봅니다. 불합리한 차별의 규모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소외된 사람들의 편을 - 헌신적이진 못할지라도 -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고, 반대편도 아주 악마적인 근성을 가지고 그런게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하죠. 그러나 이게 차별받지 않았다-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언급하신 '차별'에 대한 용법은 새누리당 친화적 포지션에 서있는 시민을 악마화하는데 쉴드하는 반대논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은 저도 공감합니다. 다만 용서하기 어려운 것은 정치인들의 행태입니다. 영남소외론이나 우리가 남이가를 넘어서 호남혐오를 확산하는거요. 안정적으로 결합하니 문제의식 없이 깔고 가는것도 말이죠.

차별 반대를 법제화하는 움직임에는 '차별'에 대한 처벌을 담고 있지 않죠. 정치적 용법과 법적 개념을 혼동하시는 듯한 표현이 보여서 일단 못박아둡니다. 차별 극복 입법에 대해선 사회적 피해의 크기를 측정하려고 하지 말고요, 잔존하는 편견과 확산되는 헤이트스피치에 대한 예방-차단일수도 있죠. 법률은 선언적 의미도 크니까, 미래의 나침반으로 볼 수도 있고요. 처벌만 강화하는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설득하려는 노력이 함께한다면 단순히 사회전반에 뿌리내린 적대감정을 넘어서 화해와 통합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어줄 겁니다


(Counsel님)

아 굉장히 설득력 있는 말씀이네요. 저는 명확한 개념 정의를 요구하셔서 그에 따른 것일 뿐이구요... 사실 저의 개념 정의는 의미가 있죠. 왜냐구요? 제가 시종일관 주장한 것은 저러한 개념의 차별이 없었고, 그렇다면 그것은 호남이 특별히 보상이나 배려를 받아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니까요. 너무 자의적이라구요? 저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해요. 여기서 친호남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거의 류큐인, 이누이트인, 바스크인, 카탈루냐인, 켈트인이 요구하는 그것에 이르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들(류큐인, 이누이트인, 바스크인, 카탈루냐인, 켈트인)이 처한 상황은 제가 개념 정의를 한 것과 맞아떨어지거든요. 반대로 말하면 호남이 그 정도가 아니라면 피해의식에 쩔어 있는 거니까 정권을 잡아서 국가의 자원분배 혜택을 자신들도 받으라는 거죠. 정히 못 견디겠으면 차라리 분립독립 해버리는 것도 괜찮구요. 그런데 그정도 컨센서스가 형성되어 있나요, 호남 내부에서?

현상유지가 답조차도 될 수 없을 정도로 당연한 것이고 이게 무슨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전혀 생각을 안 해요. 일부 사람들의 주장 - 왜 호남을 더 배려하는데요? 무슨 호남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준다는 말입니까? 어이가 없죠.

말씀하신 마따나 피해의식과 적대감정이 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것이 원인이구요. 그리고 그걸로 무슨 액션을 취한다면 저는 반대할 것이고, 저 말고도 많은 사람이 반대할 것입니다. 혹 호남인들과 그 지지자들이 저를 비롯한 반대자들에게 민주적이지 않다느니 의식이 후졌다느니 한다고 하더라도 개뿔 뜯어먹는 소리하지 말라고 코웃음을 칠 것입니다. 도대체 법적으로 시정해야 할 성격의 차별이 있었음이 인정되어야 수긍을 하죠. 제 말이 그겁니다. 문제 제기를 할 정도가 되려면 법적으로 시정해야 할 성격의 차별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자기네들 피해의식에 쩔어서 차별 받았다고 징징거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잘 먹고 잘 살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누가 발목이라도 잡아서 주저앉히기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정부에서 수탈해가고 우민화교육을 했어요? 세금 모아서 전라도에 안 줬기 때문에 발전을 못했단 말인가요? 다른 지역에서는 공장 3개 지었는데 전라도는 1개밖에 안 지어줘서 그동안 힘들었다는 건가요?


* 이 다음으로 단 아이기스님의 댓글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 복사해 올리기가 되지 않습니다. 아래에 해당 발제 글을 링크하니 마지막 댓글로 달린 아이기스님의 글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theacro.com/zbxe/free/5124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