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에서 정태인 소장의 글을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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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대가를 기다리며 - 맨 눈으로 세상을 보는 젊은 경제학도가 절실하다


1. 2008년 금융위기는 경제학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특히 시장만능론의 근거인 효율적 시장이론(거칠게 말해서 자본시장은 완전하다), 리얼비즈니스 사이클론 등 시카고 쪽의 이론, 현실에서는 DSGE(? 동적... 확률 일반균형이론), 더 일반적으로 대표 행위자론(경제에 마치 한 사람이 존재하는 듯이 거시를 보는 관점), 수학에 대한 맹신(피케티가 유아적 열정이라고 부른) 등이 지적되었다.


스티글리츠나 크루그만 등 스타 학자들이 선봉에 섰고, 이코노미스트나 파이낸셜 타임즈와 같은 전통적 보수 경제지들도 동조했다.


뭔가 변할 거 같았다. 내 고등학교 동기인 서울대 거시 교수는 아예 교과서를 포기하고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논문들로 강의를 한다고 하니.. 더욱 그럴 거 같았다.



2. 6년이 지난 지금 세계경제는 여전히 수렁 속에 있다(뭐.. 위기를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경제학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행동경제학이나 행위자기반 이론이 유행을 타고 있지만 미시이론도 거시이론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3. 피케티의 책은 불평등에 대한 장기 지표로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경제학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도 된다. 온갖 주류 이론을 통계로 간단히 우습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피케티 역시 경제학사 전체를 꿰뚫고 있는 건 아니다. 맑스에 대한 비판이나 자본논쟁에 대한 해석이 그런 혐의를 불러 일으켰고 그가 신고전파 생산함수와 대체탄력성 논의로, 베타(자산총액/국민소득)가 증가할 때 알파(자본소득몫)가 증가한다는 것을 논증하려고 했을 때 그의 한계는 여실히 드러났다.


그의 논의를 깊숙이 이해하고 비판하려면(어떤 책도 이렇게 폭넓은 사실과 오랜 역사를 다룬다면 그렇겠지만) 실은 경제학 전반을 다 알아야 한다. 최근의 주류 경제학의 커리큘럼을 충실히 따른 경제학도라면 어쩌면 단 한 명도 그의 책을 이해하지 못할지 모른다.



4. 자본논쟁은 경제학의 기구한 역사를 보여준다. 피케티의 지적대로 케인즈 경제정책에 우호적이었던 두 집단(미국의 MIT와 당연히 캠브리지대)은 이후 네오 케인지언과 포스트 케인지언으로 분화되었다.


핵심은 거시경제를 보는 시각이었다. 새뮤얼슨이 항복을 선언했던 "기술교체 이야기" 등은 기나긴 논쟁 과정에서 나온 에피소드 중 하나을 뿐이다. 캠브리지는 제도와 계급의 역관계가 이윤율을 결정한다고 생각했고 캠브리지 방정식(이윤율=경제성장율/자본가의 저축성향)을 거시정책의 기준으로 내세웠다. 요컨대 완전고용을 유지하는 투자의 양이 얼마인가가 핵심 과제였다.

 

신고전파 쪽 선수들은 새뮤얼슨과 솔로우 등 네오 케인지언들이었다(간접적으로 애로우와 스티글리츠도). 이들은 집계생산함수(나라 전체의 생산을 하나의 생산함수로 표현할 수 있다)에 따라 이윤율을 포함한 모든 거시변수가 한꺼번에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함수를 만들려면 일반균형의 전제(완전경쟁과 완전정보)가 충족되어야 한다. 그래야 변수 들간의 관계가 사전에 정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고용은 이미 전제 되어 있고 다만 기존의 여러 비율(특히 자본/소득, 자본/노동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할 조건, 즉 균형성장경로의 도출이 문제였다(이게 바로 피케티의 두번째 근본 법칙이고 여기서 온갖 문제가 발생한다).


(60년대 초 영국 캠브리지에는 스라파, 로빈슨, 로버트슨 (칼레츠키와 칼도어) 대학원생으로 센과 하코트 등이 있었고, 솔로우와 새뮤얼슨이 방문학자로, 그리고 대학원생 스티글리츠가 들락거렸다. 케인즈 때에 이어 환상적인 구성이었다. 캠브리지 인근의 한 과수원 찻집(오차드)에 가면 러셀, 비트겐슈타인, 케인즈, 스라파 등이 여기서 놀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자본" 개념이 문제가 된 것이다(자본의 한계생산성을 알려면 총자본량을 알아야 하고 총자본량을 알려면 자본의 가격(평균수익률 r)을 알아야 하고 총가격을 알려면 또 다시 한계생산성을 알아야 한다는..순환. 신고전파는 총자본을 기술 차원에서 정의하기 때문에 물리적 단위로 봐야 하지만 실제론 각 가격을 곱해서 금전적 양으로 보는 모순...). 일반인이 경제를 생각하게 된다면 갸우뚱 할 만한 온갖 문제가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들 간에 적나라하게 논의된 것이다. 그들도 헤매긴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니까...


예의를 차린 듯 하지만 상대를 바보 취급하는 언사가 끝없이 오고 갔다. 예컨대 로빈슨은 미국의 네오케인지언들을 "사생아(bastard, 잡놈?) 케인즈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솔로우도 비아냥 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수학은 솔로우 쪽이 당연히 아름답지만 글은 로빈슨 쪽이 압도했다). 심지어 로빈슨이 죽은 뒤에 자신이 중국의 예를 들어서 그녀를 항복시켰노라는 얘기까지 썼다.


이들은 서로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기에... 새뮤얼슨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지만(그는 아주 작은 문제에 관해서도 상대방의 논지를 자신의 언어로 해석해 주고 스스로 답을 제시하는 방식을 애용했는데 그러다 기술전환문제에서 자승자박의 꼴이 되었다) 그의 제자들은 캠브리지 학파의 사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요즘 글들을 보면 캠브리지 학자들이 일반균형론과 같은 기본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고 기술한다(타일러 코웬은 물론 크루그만도 그렇다) .


(내 보기에 양 쪽을 다 이해하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논쟁을 지켜 본 사람은 센이 유일했다. 그는 로빈슨의 논문 지도학생이면서 애로우의 뒤를 이었다. 로빈슨은, 현실의 문제에 눈감고 아주 추상적인 공리나 만지고 있는 자신의 애제자가 심히 못마땅했지만 그에게 자기 특유의 독설을 퍼붓지는 않았던 거 같다)



5. 논쟁은 팽팽했지만 세계 경제학계는 네오 케인지언이 장악했다. 현실의 권력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것처럼... 신고전파 종합이 그것이다. 새뮤얼슨 교과서에서도 자본이론은 사라졌고 아마 50대 이하의 경제학자들은 논쟁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캠브리지는 이제 학파의 명맥을 이어가기도 어렵게 되었다. 손꼽을 만한 학자들도 뿔뿔이 흩어졌고 그마저도 생물학적 수명이 다 끝나간다. 로빈슨은 83년에 죽었고 내 알기론 당대의 이론가 중엔 파시네티가 유일하게 살아있다.


결국 로빈슨은 일찌감치 "경제학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6. 하지만 미국의 네오 케인지언들의 운명도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바로 프리드만과 루카스의 시카고 학파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신고전파보다도 훨씬 더 간명한 수학을 가지고 나타났다. 합리적 기대가설이 그것이다. 네오케인지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현실과 이론(가정)을 분리시켰다. (하지만 이 둘은 캠브리지를 무시하는 데 있어서 만큼은 같은 편이었다. 아니 어쩌면 아예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70년대 까지는 거시정책(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놓고 논쟁을 벌였지만 80년대 중반부터는 시카고 학파가 완전히 세상을 장악했다. 어느 덧 그 둘은 "대순항 시대"(80년대 중반 이후 2008년까지)에 동거를 시작했다. 정책적으로도 묘한 암묵적 합의가 이뤄졌다. 중앙은행의 이자율 정책이 모든 거시정책의 대표가 되었다. 지금은 모두 알지만(?) 경제의 금융화와 버블에 의한 중산층 수탈이야말로 그들이 합의한 정책이었다.


루카스 등은 공석에서 케인즈(네오케인지언까지 포함해서)를 조롱했다. 그의 말 그대로 이제 누군가 케인즈주의 논문을 발표하면 세미나장 뒤에서 잡담하며 킬킬대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현실의 정책에선 네오케인지언들이 힘을 발휘했다. 시카고학파의 간명한 수학으로 정책을 만들 수는 없다. 수천개의 방정식으로 이뤄진 거시모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케인지언들이었다. 뉴딜을 성공시키기 위해 네오케인지언들이 코울스 위원회 등에서 나라 차원의 복잡한 거시방정식 모델을 만드는 데 진력했기 때문이다. (뉴딜 경제학자 케네스 갈브레이스는 그들의 맏형 격이었고 최근 피케티를 좌파 쪽에서 비판하고 있는 제임스 갈브레이스는 그의 아들이다).


최근 각종 논쟁에서 보수주의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는 맨큐도 네오 케인지언에 속했다(그의 메뉴이론은 가격경직성 이론이다). 그는 시카고 쪽에서 백악관에 들어갈 만한 사람이 없었기에 부시의 자문회의에 들어갔다. DSGE는 이 둘의 타협이라고 볼 수 있고 네오 케인지언은 가격경직성이 들어 있는 몇개의 방정식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이제 네오 케인지언이라고 할 수 있는 학자도 스티글리츠와 크루그만(그리고 들롱?) 정도만 남았다. 신고전파적 케인즈 해석이라고 볼 수 있는 힉스의 IS-LM 분석도 교과서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크루그만은 현재의 경제학자들이 IS-LM만 알아도 현실 경제를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거라고 한탄한다. 한국에서도 정운찬 거시 외에는 이 모델을 찾을 수 없다. 요즘의 거시경제학은 바로 집계생산함수(흔히 총생산함수로 번역)부터 시작한다.



7.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경제학에 대한 반성이 일었지만 변한 건 없다. 케인즈와 맑스, 그리고 폴라니가 재조명을 받고 있지만 정책적으론 그저 구제금융을 한 것 뿐이다. 그들의 이론은 고전으로 남아 있을 뿐 현실의 분석 도구가 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정책에서도 약간의 거시건전성 규제에 관한 논의만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다(그런 면에서 이명박 정부의 "거시 건전성 3종세트"는 정책의 선구라고 할 만하다. 오로지 신현송교수가 국제경제보좌관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스티글리츠나 크루그만도 되살아나는 반케인즈주의적 정책(일반균형론적 정책), 예컨대 재정긴축론을 맹공하기에 바쁘다. 아무런 반향도 없이... 유럽과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한편으론 양적 완화를, 다른 한편으론 긴축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경제학자들이 얼마나 케인즈주의조차 모르는지 보여 준다.


하지만 현재의 거대한 경제학 이론 체계, 그 아름다운 건축물을 대체할 이론체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네오케인지언의 선구자들이 포스트 케인즈주의를 완전히 제압(또는 무시)해 버린 결과이고, 이후엔 그들도 마찬가지로 시카고 학파에 흡수됐기 때문이다(맨큐의 인생을 보라). 맑스주의는 말 그대로 거장들의 생물학적 나이와 함께 소멸의 경지에 들어갔다( 80-90년대 사회적축적학파가 거시 맑시스트의 마지막 작품 아닐까?).



8. 이렇게 너절하게 긴 잡설을 늘어 놓은 건, 위기는 지속될텐데 경제학에서 나올 건 별로 없을 거라는 강한 불안감 때문이다(거의 100%다). 맑스나 케인즈 처럼 당대의 경제학을 꿰뚫고 있으면서 맨 눈으로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현재의 경제학도들은 맑스나 케인즈보다 불리하다. 아름다운 수학 체계를 이해하는 데 지적 능력을 쏟아 붓기도 바쁠 것이다. 알아야 비판을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여기에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그가 눈에 쓰고 있는 색안경의 렌즈는 점점 더 짙은 색깔로 변할 것이다.


공부를 하되 과감히 색안경을 벗어던질 젊은이가 필요하다. 가장 비근한 예는 스티글리츠 정도일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경제학계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필요하다. 절망적이다. 현실에선 자산가계급이 점점 더 공고해지고(피케티 책 내용이다) 경제학계 역시 망하는 방향으로 더욱 세밀하게 치닫고 있다. 쿤이 말한 정상과학의 위기가 닥쳐 왔지만 내부 반론은 전혀 허용되지 않는다. 기적적으로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변방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하바드의 젊은 천재였던 보울스나 진티스도 60-70년대에 그랬는데 지금은 얼마나 어렵겠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장하준도 서울대 교수가 되지 못하는 현실이다(장하준은 범제도학파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도 그가 캠브리지에 유학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다 못해 신디케이트라도 읽어야 한다.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든 설명하려는 얘기들이 가득하다. 물론 한두명 빼곤 모조리 기존 경제학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거기엔 현실에 관해 말하는 '대가'들이 있다.


피케티는 그런 면에서 매우 독특한 경제학자다. 그가 프랑스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국이라는 이상한 변방(미국보다 더 미국적인)에서 대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건 진정 연목구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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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제 잡설:


보통 경제학에 대해서 좀 아는 사람들끼리 하는 논쟁이라면 대부분이 신고전학파(신자유주의)와 케인즈학파 정도의 싸움에만 익숙합니다. 이 글을 읽으셨으면 느끼셨겠지만, 실은 경제학자들도 그 이상은 잘 몰라요. 왜냐하면, 정태인 소장이 지적한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자본론같은 고전에 대한 공부는 대학원 교육에서 사라진지 오래이고, 경제사는 배워봤자 시간 낭비인 세상이 와버렸기 때문이죠.  더욱이나 소위 주류경제학이라는 틈새에 끼여서 치열하게 살아남을려고 고민하는 젊은 경제학자들에게 자본론은 읽어봤자 테뉴어에서 (그리고 자신이 만든 이론을 들어줄 수 있는 메인스트림에서) 멀어지는 도구일 뿐입니다.



저 아래에 익명님의 글에 댓글에도 썼지만, 피케티도 예외일 수가 없을 겁니다. 그도 왠만한 이유가 없는 이상은 자본론은 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고 그러니 자기 입으로도 읽은 적이 없다고 했을 것입니다. 다만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후에 몇년 지내다가 (자기 말로는 자식들 교육을 위해서) 프랑스로 돌아왔다고 했는데, 고국에 돌아와서 어울린 사람들이 역사/철학/사회학하는 이런 부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맑스의 이론을 역사/철학적으로 계승한 이들이었다는 것으로 압니다. (이들은 맑스의 이론을 경제학적으로 계승한 부류와 또 다릅니다. 물론 맑스 경제학자들은 이미 거의 경제학계에서도 변방(?)으로 밀려난지 오래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정말로 프랑스적인 인문사회학 전통이 있으니 이런 것이 가능했었을 수 있겠죠. 그동안 자신과 그 동료들이 꾸준히 연구해오면서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대해서 집대성하던 피케티가 이들에게 받은 영향과 평소의 자신의 생각을 섞어서 탄생한 글이 21세기 자본론인 것 같습니다.



뭔가 변화를 해야한다라는 것은 분명한데,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답답한 지경에 있는 것이 우리 세대 또는 지금의 경제학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