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공과를 정리하자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나온 것 같은데.. 어째 소식이 없군요. 몇몇 신입분들이 관련 글들을 원하고 여러 싸이트에서 노무현 관련 논쟁에 뛰어들거나 지켜본 결과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모르거나 왜곡, 피상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더군요. 하여 다시금 복기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원래 유시민부터 정리하려고 했는데 노무현도 스타트를 끊어놓는게 좋을 것 같아 정리해봤습니다. 아크로의 다른 분들도 노무현 정권 평가에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1. 대북 송금 폭로
-> 대북 송금은 대선 3개월 전 쟁점화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처음 제기한 인물은 한나라당 엄호성입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6.15 정상회담 직전에 현대상선이 4억달러를 북한에 비밀 송금했다는 것이 그 골자였습니다. 즉, 돈을 주고 '남북정상회담을 샀다는 것이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89280


2. 최초 발설자
-> 2002년 3월 미의회에서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관련 정보 취득은 00년말~01년초로 추정) 이어 월간조선 2002년 5월호가 이 내용을 보도하고, 9월 한나라당의 엄호성등이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당시 정황상(북핵 문제 발발) 부시 정부의 의도적인 행위(대북 강경책, 남한 압박, 햇볕정책 견제등)로 보는 의견이 유력합니다. 참고로 북핵문제가 발발되었을 시, 국내 언론을 제외.. 해외 유력 언론들 절대 다수는 부시의 강경책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조중동은 햇볕정책 탓) 김용옥은 최초 발설자가 미의회조사국이었다는 점을 주목하라면서 '발설자의 배후조종세력들이 남북간 경제협력의 직접적 대화채널을 달갑게 생각하고 있지않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http://hccnojo.org/zb41pl2/bbs/zboard.php?id=board002&no=163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24198


3. 대북송금의 성격
-> 한나라당측은 '정상회담의 대가' 라고 공격을 했습니다. 김대중과 현대측은 '7대 경제협력사업의 대가' 라고 주장을 했구요. 대규모 개발사업의 독점권을 30년간 현대에 보장한다는 것이죠. 특검은 최종적으로 대북송금의 성격을 '7대 경협사업권에 대한 대가' 라고 규정했습니다. 간단히 부연하자면, 중요한 군사요충지였던 개성에 공단이 건설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두마리 토끼(자본주의 유입 + 군사 요충지 제외)를 동시에 잡아낸 것이죠. 전국경제인 연합회의 한 보고서는, 개성공단 착공 8년차까지 경제적 효과를 총 569억달러로 추정했습니다..
http://moveon21.com/?document_srl=506789


 4. 햇볕정책은 무엇인가?
-> '북한에 자본주의를 유입시켜 통일비용을 줄이는 것' 이 최종 목적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화해 무드로 인한 경제, 안보의 효과는 부수적인 것에 가깝습니다. 햇볕정책은 독일의 실패 사례(막대한 통일비용으로 인한 경제 침체)를 참고하여 만들어진 정책입니다. 그렇기에 급작스러운 통일, 북한의 체제 붕괴는 오히려 남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 서서히 자본주의를 유입시켜 북한의 체제를 변화시키고 개방을 유도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최종적으로는 경제적 격차를 줄여서 통일 비용을 줄이는 것이구요. 참고로 현재 남북의 통일비용은 독일과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천문학적인 액수로 추정됩니다.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view.html?cateid=1046&newsid=20120131201807974&p=yonhap


5. 노무현의 대처
-> 당선자 신분이었던 노무현은 2003년 1월 18일, 소신 수사를 주문합니다. 즉, 대선때 쟁점이 되었던 사안을 대선 후, 재쟁점화합니다. 1월 30일,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4천억원중 2천235억원을 대북송금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에 대해 김대중은 사법심사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참고로 같은 날, 임동원(김대중 측근)과 이종석(노무현 측근) 대북특사가 김정일을 면담하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2월 14일 김대중의 대국민 담화와 임동원의 해명이 있었습니다. 5억달러 송금은 현대측에 의해 이루어졌고 모두 상업적인 거래이며, 이중 2억달러의 송금은 국정원이 편의를 제공했다고 공개했습니다. 김대중은 대북송금을 알고 있었다는 내용으로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국정원장이었던 임동원은 2억달러의 송금, 편의제공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구요.(노무현의 자서전에서 문재인은 이 부분에서 특검 수용에 대한 변명을 했습니다.) 감사원은 2억달러라고 발표했고 김대중측은 5억달러라는 차이점이 존재했죠. 참고로 노무현은 당선자 시절 '정치적 고려 없이 사실을 규명해야 하며 털고 갈 수밖에 없다' 는 말을 해왔다고 합니다.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에 대해 정치적인 고려를 배제하겠다는 노무현의 아마추어리즘 혹은 순수함, 이상적인 성향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31328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2&aid=0000003407
http://www.hani.co.kr/section-003000000/2003/01/003000000200301302243274.html


6. 특검 수용의 과정
-> 2월 4일 노무현의 측근인 이상수는 교통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특검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상수는 인터뷰 전, 문재인(민정수석)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덕택에 노무현의 의중이 반영되었다는 관측이 흘러나오기도 했습니다. 또한 특검법 수용을 앞두고, 문재인은 김대중의 대국민사과와 임동원등의 해명에 대해.. '충분하지 않다고 보니까 특검이 나온 것 아닌가요. 저 또한 충분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번 특검이 국익에 손상을 준다는 하는데 과연 얼마나 손상이 오는지 그 내용을 모르겠어요..' 라는 발언을 함으로써 특검 수용에 무게를 두기도 했고 김대중의 사법처리 가능성까지 시사했습니다.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3/03/25/200303250500003/200303250500003_1.html

또한, 3월6일 노무현은 13명의 개혁진영 원로들에게 특검법에 대한 의견을 구했습니다. 참석자 대부분(함세웅신부와 김지길목사, 청화스님등)이 특검 거부를 요구했으나  류강하신부는 '대구·경북 여론은 특검제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처지가 안타깝지만 특검을 수용해 정면돌파를 하는 게 노무현답다는 여론이 많다' 라며 특검 수용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1353

3월14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의견을 밝힌 장관은 모두 7명인데 이들 가운데 정세현(통일)·강금실(법무)·한명숙(환경)·지은희(여성)·윤진식(산자)·김영진(농림) 장관 등 6명이 특검법 거부를 주장했으나 PK출신인 허성관(해수부)은 '거부권을 행사하면 정국이 파탄난다. 상생의 정치를 해야 한다' 며 특검법 수용을 주장했습니다. 당시 정국은 대북특검과 고건 총리 내정자에 대한 한나라당의 인준 거부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은 이 두가지 카드로 청와대를 압박했었죠.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조건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당론으로 채택했고 노무현에게 건의했습니다. 주로 신주류(친노)측에서 수용의 의견이 있었으나 그 외 절대 다수는 특검 거부를 주장했습니다. 참고로 참모회의에서는 특검 수용이 우위였고 국무회의에서는 특검 거부가 우위(6:1)였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1353


7. 특검법 수용 & 반응
-> 3월 14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노무현은 국무회의의 반대 여론을 뒤집고 '수용을 하십시다' 라는 한마디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야당에 신뢰를 주고 약속한 바대로 야당이 법을 수정한다고 하니까, 그걸 믿읍시다. 도박같은 결단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뢰를 위한 정치를 해보고 싶습니다' 라며 특검 수용의 변을 밝혔습니다. 기실 여당과 국무회의, 각종 진보단체, 사회원로, 호남&지지층의 요구를 독단적으로 뒤집은 행동이었습니다. 수용을 주장했던 부류는 참모회의, 영남, 한나라당 지지층이었죠. 즉, 지지층이 아닌 반대층의 여론을 배려한 결단이었습니다. 이는 참여정부 내내 노무현의 일관된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지지층이 아닌, 반대층.. 한나라당이나 영남, 재벌을 배려하는 정책이나 발언들이 많았죠. 좋게 말하면, 어설프게 상생(이상)을 꿈 꾼 아마추어였고 나쁘게 말하면 자신의 컴플렉스였던, 영남 구애에 집착했다고 보여집니다. 참고로 당시 신주류였던 의원들조차 뜻밖이라는 반응이었고 한나라당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1353

한나라당은 다음날 오전 긴급 의총과 최고위원회를 소집할 정도로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한 막후 창구 노릇을 했던 한나라당의 김영일 사무총장은 '민주당의 수정제안을 놓고 의총과 최고위원회의를 긴급 소집해 강경파 의원들을 설득하겠다는 게 지도부의 판단이었는데, 대통령이 전격 수용을 발표할 줄은 몰랐다' 며 당황스런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민주당의 수정제안을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노무현이 수용을 선언하면서 도루묵이 된 셈입니다. 즉, 한나라당이 양보하려던 찰나.. 노무현이 판을 엎어버렸으니 이게 웬 떡인가 싶을 정도로 황당+환호의 두가지 반응이 존재했던 것이죠. 전여옥은 하란다고 정말로 할 줄 몰랐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죠. 아마 이것이 (한나라당에서) 노무현을 호구(?)로 보게 된 첫 스타트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12116


8. 특검의 수사 결과 
-> 5억달러중 1억달러는 정상회담 대가성의 성격이 있고 김대중도 대북 송금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송두환 대북송금 특별검사팀은 '1억달러는 정책적 차원의 대북 지원금 성격' 이며 '정상회담의 대가' 로 봐서는 안된다' 고 밝혔습니다. 또한 '1억달러가 정상회담과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대가성이 있다고 볼수 있을지 모르지만, 돈으로 정상회담을 사고판다는 의미에서 대가성이라고 한다면그것은 잘못된 생각' 이라고 말했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8&aid=000001880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18666

특검은 수사 초기부터 줄곧 밝힌 형사처벌 최소화 원칙에도불구하고 구속기소자 3명, 불구속 기소자 5명등 모두 8명을 법정에 세웠습니다. 박지원은 대북송금과는 무관한, 뇌물수수 혐의(현대비자금 150억원 혐의)로 사법처리됩니다. 2003년 6월, 특검에 구속된 후 3년여만에 박지원은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게 됩니다. 참고로 박지원은 1년 5개월동안 수형생활을 했습니다. (중간에 보석으로 출소) 다른 관계자들은 그 전에 사면 복권되었습니다. 또한 박지원은 주암회(6.15회담 당시 수행원들의 모임)의 운영경비로 받은 1억원의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했습니다. 7천만원은 주암회의 간사인 손길승 SK 회장이 주암회 경비로 쓰라고 준 것이고, 3천만원은 고(故)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이 재임시절에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비서실장 퇴임 무렵에 수표로 준 것이라고 시인했습니다. 참고로 박지원의 1억원 수수는 개인용도로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징역 3년과 추징금 1억이 선고되었습니다. 3년형을 선고받은 후, 2006년 5월~11월까지 수형생활(총 수형생활 2년)을 했으며 11월 초 지병인 녹내장과 관련한 치료가 필요해 3개월간 형 집행정지 결정(주거지 제한)이 내려졌습니다. 이후 2007년 2월 특별사면조치로 형집행이 면제되었고 2007년 12월 복권되었습니다. 당시 6월 박지원은, 김대중 특사로 대북 방문을 할 예정이었는데 금고형을 선고받게 되면서 무산됩니다. 결국 노무현은, 김대중 시절의 대북 전문가들, 인맥들을 전혀 활용치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 것이죠. 추후엔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8&aid=0000018667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3363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51447


9. 특검의 영향
-> 남북간 화해의 분위기가 급속하게 냉각됐으며 대북관계의 주도권이 다시 미국으로 넘어갔습니다. 대북특검 후 한동안  남북관계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고 북핵이라는 국제적 위기가 지속되는 사태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국내정치만을 고려한 근시안적인 판단이었던 겁니다. 추후 이 문제를 해결한 이는 김대중이었습니다. 대북특검으로 망친 남북관계를 스스로 풀지 못하고, 결국 김대중의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이죠. 국내정치에서는 지지층의 이탈과 대선 패배 후 지리멸렬했던 한나라당이 기사회생했습니다. 또한 대북특검 수용의 실익은 전혀 없었습니다. 남북관계가 악화되었고 한나라당에 호구 잡히는 삽질만 하게 된 셈이었죠. 참고로 특검 수사 전과 특검 후의 여론이 많이 바뀌기도 했습니다. 지지 성향에 따라서 수용여부 여론이 갈렸지만 남북관계 악화를 체감하면서 전체적인 여론이 바뀌게 된 것이죠. 결국, 전술했듯.. 정치적으로도 악수였고 아무런 득도 없었으며 실만 넘쳐나는 판단이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3069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36&aid=000000426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39689

 
10. 문재인의 변명
-> 노무현의 자서전인 '운명이다' 에서 문재인은, 통치행위론을 근거로 특검 수용의 변을 들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김대중이 대북송금을 몰랐다고 했으니까 특검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는 입장이었죠. 헌데 특검 당시, 전술했듯.. 문재인의 인터뷰나 정황, 측근들의 반응들을 보면 '통치행위 인정여부' 때문에 수용했다는 핑계는 초라해보입니다. 특검 직후 유인태(정무수석)는 한나라당 당사에 찾아가 '특검 수용같은 큰 선물을 드렸으니 앞으로 잘 부탁한다' 라는 발언까지 했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0292216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3/03/25/200303250500003/200303250500003_1.html

문재인은 신동아와의 인터뷰(특검 수용전)에서 김대중의 사법처리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의 말대로 '통치행위론을 내세워 특검 거부' 를 했다고 해도 여론이 달라진다거나 한나라당의 공세가 약해질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어설픈 명분일 뿐이었죠. 또한 김대중은 대국민담화(2월 14일)를 통해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추진과정에서 이미 북한 당국과 많은 접촉이 있던 현대측의 협력을 받았습니다. 현대는 대북송금의 대가로 북측으로부터 철도, 전력, 통신, 관광,개성공단 등 7대 사업권을 얻은 것입니다. 정부는 그것이 평화와국가이익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실정법상 문제가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했었습니다.' 라고 말을 함으로써 자신이 인지하고 있었음을 표명했습니다. 김대중은 대국민담화문에서 구체적인 액수를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추후 보충해명에서 임동원은 국정원이 '외환은행에서 환전에 필요한 절차상의 편의를 제공했고 6월9일 2억달러가 송금되었다'고 말했는데 이 부분에서 상부에 보고치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즉, 2억달러의 송금에 국정원이 편의를 제공했으나 이 부분은 김대중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던 것이죠. 결국 문재인의 변명은 왜곡된 겁니다. 김대중은 분명 인지를 했다는 내용으로 담화문을 발표했고 임동원의 보충해명에서 누락된 사실 하나(2억달러 편의제공)가 존재했던 겁니다. 대북송금 그 자체에 대해서는 김대중 자신이 인지했음을 스스로 밝혔던 겁니다. 김대중이 모른다고 했다는 문재인의 말은 왜곡됐다는 것이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8&aid=000000616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5&aid=0000591804

또한 문재인의 변명이후, 노사모등의 게시판에서는, 검찰수사보다는 특검이 낫다며 선동하기도 했는데 이는 왜곡에 가깝습니다. 일단, 노무현은 당선 직후부터 검찰 수사를 주문해왔습니다. 또한 노무현측은 검찰은 특검을 받을 각오로 수사해야 한다며 검찰 수사를 강력히 주문하기도 했었죠. 헌데 고건 총리 내정자에 대한 한나라당의 인준 거부 방침을 계기로 입장이 바뀝니다. 이는 유인태의 선물이라는 말과 노무현의 상생과 허성관등의 발언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참고로 당시 검찰은 초기에 수사를 진행하다가 김대중의 대국민 담화후, 수사유보를 결정합니다. '김대중이 해명했고 남북관계에서 중대한 사안이니 선 정치적 해결, 후 수사착수라는 원칙을 유지하겠다' 고 밝혔던 거죠. 이 말은 한마디로 수사의 부담감이 너무 크니 정치권이 답을 내놓아라. 라는 말과 같다고 봐야됩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검찰 수사를 진행했더라도 ' 현대상선 관련자들을 배임 혐의로 형사처벌하는 선에서 끝낼 생각이었으며 대북송금 자체는 기소유예 정도가 적당한 것으로 판단했다' 고도 말했습니다. 또한 서울지검 고위간부는 '통치권자가 국가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해명까지 했으니 특검수사 등으로 사건을 확대시키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도 말했습니다. 검찰은 정치적 해결을 원했다는 것이죠. 아마 특검이 아닌 검찰 수사로 갔다면 정치적인 부담을 느껴 최소한의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고 봐야죠. 더구나 대통령 입장에서는 검찰을 통제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굳이 통제치 않더라도 알아서 눈치를 보기 마련이죠. 더구나 정권계승이었기 때문에 검찰 내부에 반대 세력이 많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참고로 감사원역시 검찰과 비슷한 취지로 책임추궁에 대해 유보입장을 밝혔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20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0137692

노무현이 특검을 수용하면서 했던 발언과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오히려 '한나라당과의 상생, 영남지역의 여론 고려' 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또한 전정권과의 차별화를 통한 전국정당화(탈호남색)를 노린 정치적 판단으로도 보여지구요. 기실 노무현은 대통령 이전부터 '지역주의 극복' 에 가장 열성적인 정치인이었고 당선 직후에도 차기(1년후) 총선에서 전국정당화를 최우선에 두고 있었습니다. 방법론에 있어 영남 포위론이 아닌, 영남 구애론을 택했던 것이고 이는 참여정부 내내, 퇴임후에도 일관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측근 친노들도 마찬가지구요. 작금의 분위기는 '타도 한나라당'이라지만.. 우습게도 현재의 야권 세력중 특히 영남+친노정치인들은 예전부터 '한나라당과의 상생'을 수차례 제기해왔습니다. 대북특검이나 분당, 대연정등 노무현의 여러 정치적 행보들은 이런 맥락이 적잖게 작용을 했던 것이구요..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83102503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02922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32032


11. 특검과 노무현
-> 문재인의 변명이 초라한 또다른 이유는, 노무현은 추후 여러 사안에서 특검을 거부합니다. 측근비리 특검은 거부했다가 재의요구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차떼기 특검은 거부 의사를 밝혔고 유야무야 되어버렸죠. 삼성 X파일은 줄곧 거부 의사를 밝혀오다가 압도적인 여론과 국회의 대응 탓에 수용으로 입장을 바꿨습니다. 이런 노무현의 행보는 대북송금 시절과 비교해보면 추해보일 정도로 명분이 약했습니다. 한마디로 국민의 여론이 정파를 막론하고 특검 수용을 원했음에도 자신의 고집대로, 특검을 거부하거나 거부의사를 밝히는등 촌극을 벌였던 겁니다. 일관성도, 진정성도 없는 이런 행보를 감안하면 문재인의 핑계는 꽤나 초라해보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5&aid=000066343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064051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9&aid=000004507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5&aid=0000671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