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 ‘싸가지 없는 진보’는 진보의 무덤이다·5
제1장싸가지란 무엇인가?: ‘싸가지 없는 진보’의 시장 논리
“넌 착한데 싸가지가 없어”? 21 ‘생산적 싸가지’와 ‘파괴적 싸가지’ 24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 26 “‘싸가지 있는’정치를 위하여” 28 2012 대선의 ‘싸가지 논란’ 31 “민주당은 심판밖에 모르는 테러리스트”? 34 싸가지의 3대 용법 37 김규항의 ‘불공정 게임’ 41 ‘싸가지 없음’의 원조는 좌파 진보 44 ‘싸가지 없는 진보’는 단기적으론 ‘남는 장사’ 47
제2장진보의 진보 비판은 ‘비겁함’ 또는 ‘무지’ 때문인가?: 싸가지 있는 비판을 위하여
왜 ‘악마의 변호인’이 필요한가? 55 김어준·조기숙·강기석의 반反비판 58 “불관용을 관용할 수 있는가?” 61 진중권의 ‘가증스러운 이중잣대’ 63 진보의 진보 비판은 진보의 숙명 66 ‘조중동 프레임’과 ‘조중동 숭배’ 69 안티조선 운동의 왜곡 71 ‘진보=도덕’은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75 강남좌파의 ‘가용성 편향’ 77 왜 강남좌파는 ‘왕싸가지’가 되었나? 81
제3장왜 진보는‘감정’에 무능한가?: 진보의‘이성 중독증’
“보수는 인간에게, 진보는 사물에 말한다” 87 ‘정책의 시장’과 ‘감정의 시장’ 90 유권자의 ‘확증 편향’ 92 “유시민·진중권은 싫어도 김어준은 좋다” 96 나꼼수를 덮친 ‘승자의 저주’ 99 ‘우동 좋아하면 우파, 자장면 좋아하면 좌파’인가? 101 우리는 모두 ‘이중개념주의자’다 105 일베는 나꼼수의 사생아인가? 108 “진보였던 나는 왜 일베충이 되었나?” 111 일베의 비열한 ‘호남인 죽이기’ 114 일베는 ‘싸가지 없는 진보’의 부메랑 118 인격 없는 이념은 쓰레기 122
제4장왜‘심판’이 진보를 골병들게 만드는가?: 정치를 대체한‘증오 상업주의’
절망의 폭발을 가져온 세월호 참사 129 ‘심판’으로 먹고살려는 민주당 132 민주당의 ‘터널 비전’ 136 ‘분노→증오→숭배’의 법칙 140 나 하나 국회의원 잘 해먹으면 그만인가? 143 언제까지 선악 이분법 타령인가? 146 운동권 출신의 ‘심판 아비투스’ 148 삿대질만 하는 ‘울타리 안의 진보’ 152 운동권 체질의 자폐성이 심해지는 이유 154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원하는 세상’ 157 진보의 언어는 ‘모욕’과 ‘쌍욕’인가? 161 ‘증오 마케팅’은 진보에 불리하다 164 왜 호남의 대선후보급 엘리트 자원은 고갈되었나? 167 ‘진정성’을 버리고 ‘성실성’을 보여라 170
제5장왜 진보의 최대 약점은 도덕인가?: 민주당의 도덕과 새누리당의 도덕
“마르크스주의를 망친 건 ‘도덕’ 개념의 부재” 177 ‘진보정치에 대한 사형선고’ 180 인간의 도덕은 하나가 아니다 183 마이클 샌델이 한국에 와서 깜짝 놀란 이유 186 손학규를 죽인 ‘관계의 윤리’ 191 보수와 진보의 각기 다른 도덕 시스템 195 ‘민주 대 반민주’라는 독약 198 ‘품위 있는 진보’는 가능한가? 202
맺는말 : ‘풀뿌리 건설’만이 살길이다
엘리트들끼리 돌아가면서 해 처먹는 정치 205 ‘먹을 것에 침 뱉기’경쟁 208 민주당 대표경선의 ‘모바일 투표’ 논란 211 ‘참여의 대표성’이 문제다 214 최장집이 조갑제나 지만원이라도 된단 말인가? 216 “민주당에는 악마가 산다” 219 공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풀뿌리 222 박성민의 ‘교회 모델’을 도입하자 225 ‘풀뿌리’와 ‘인조 잔디’ 227 ‘계파 간 빠 격차’가 문제의 핵심 230 왜 안철수는 실패했는가? 234 노선투쟁을 빙자한 계파투쟁 237 “깰 수 없으면 타협하라”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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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의 정치'로 인한 문제, 정말 심각하다. 정치를 종교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소통이 될리 만무하다. 그게 바로 '정치의 의인화' 때문이다.

한 번 사랑했으면 끝까지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니, 정치적 지지가 무슨 연애질인가? 아니 연애도 그렇게 하진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사람이 의리도 있고 일관성도 있다고 극찬하고 추종까지 해대니, 나로선 그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그렇지만 나는 그건 비판이나 논쟁으로 넘어설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또 나 같은 사람이 오히려 소수에 속하는 '변종 한국인' 이라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다. 나는 다양성 존중과 평화공존 차원에서 그런 사람들도 있으며 그들 역시 내가 손을 잡아야 할 동지들이라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그들이 손잡기를 거부한다 해도 계속 손을 내밀며 애써보련다. 

나는 안다. '빠의 정치'는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을. '빠' 하는 맛에 정치참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거 하지 말라는 건 정치에 관심 끊으라는 말과 같다. 아이돌 그룹 팬클럽에 '인물지향적 팬질'을 넘어서 '가치지향적 팬질'을 하면 안 되겠냐고 말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건 포기하고 '싸가지 정치'에 대해서만 다시 생각해보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물론 이 또한 극복하기 쉽지 않은 것이긴 하지만, '빠'와 또는 '빠' 들끼리 싸우더라도 '싸가지 있는 싸움'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접을 순 없다. 달리 말해, '성찰이 이긴다'는 정도의 희망조차 없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런 희망을 품고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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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있는 정치’를 위하여

강준만 교수가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으로 ‘싸가지 있는 정치’를 제시했다. 상대편을 존중하는 마음과 자세의 터전 위에 서야만 민심을 제대로 읽는 눈이 트여 집권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집권 후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집권 후의 성공까지 거론한 이유는, ‘싸가지 문제’가 선거는 물론 평소의 정치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좋은 정책과 이념이라도, 싸가지 없게 행한다면 유권자들은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강준만 교수는 진보의 ‘이성 중독증’을 지적한다. 이성 중심의 정치관이 싸가지 문제를 사소하게 보는 데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진보의 싸가지 문제란, ‘무례함, 도덕적 우월감, 언행 불일치’ 등이다. 예컨대,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위, 담론에만 집중한 나머지 예의를 벗어난 표현, 위에서 내려다보듯 가르치려는 태도, 왜 진보를 좋아하지 않고 보수에 표를 찍냐고 호통치는 듯한 자세, 의견이 맞지 않으면 동료에게도 상처를 주고야 마는 행위, 번드르하게 말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입장을 바꾸는 태도 등이다. 지금부터 싸가지 문제가 어떻게 진보를 나락에 빠뜨렸는지 실감나게 관전해보자.

싸가지 없는 진보는 진보의 무덤이다

정치와 선거는 20퍼센트의 유권자가 결정하는 싸움이다. 유권자 100퍼센트 중 보수와 진보의 고정 지지층이 각 30퍼센트라고 가정해보자. 이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꿈쩍 않는 요지부동 세력이다. 나머지 40퍼센트 중 20퍼센트는 아예 정치를 비토하는, 투표를 하지 않는 세력이다. 결국 남은 20퍼센트의 유권자가 당락을 결정짓는다. 이들은 정치인들의 의사 표출 방식, 즉 ‘태도’에 큰 관심을 갖는다. 여기서 싸가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진보의 언어는 모욕과 쌍욕인가?

진보 진영에선 독설과 욕설을 앞세운 카타르시스 효과를 노린 담론만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 흐름에서 벗어나면 대뜸 날아오는 질문이 “박근혜 정부를 좋아하시나 보네요” 따위의 것이다. 진보의 언어는 모욕과 쌍욕인가? 이기고 싶다면서도 사실상 패배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바꾸고 싶다면서도 바꾸지 않게 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 이들이 진보 진영의 주류로 행세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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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진보는 감정에 무능한가?

감정에 무능하다 함은 진보에 감정 표현 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감정의 포로가 되어 유권자들의 감정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둔감해 무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보수는 대중에게 감정으로 접근한다. 싸가지 있게 굴려고 애를 쓴다. 여자를 꾀는 바람둥이처럼 계산하고 기획한다. 이에 비해 진보는 “네가 어떻게 날 안 좋아할 수 있어?”라고 호통치는 형식이다.


조중동 프레임과 조중동 숭배

이 지구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도는 것도 아닌데, 진보 진영에선 모든 걸 보수언론 중심으로 이해하려 든다. 심지어 “무슨 일이건 조중동의 반대로 가면 맞다”라고까지 말하는 이들마저 있는데, 이 정도면 ‘조중동 숭배’라 부를 만하다. “보수언론은 늘 그르다”는 전제야말로 진보의 필패를 부르는 첩경이다. 보수언론이 그렇게 어리석을까? 그런 생각은 보수언론의 힘은 과대평가하면서 보수언론의 지능은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진보 언론을 키우는 데에 노력하자

안티 조중동 운동을 하는 분들의 생각은 존중하지만, 이젠 ‘안티’보다는 진보 언론을 키우려고 애쓰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진보는 걸핏하면 진보 언론에 대해 불매운동이라는 협박 카드를 꺼내들고 그걸 관철시키는 못된 버릇을 갖고 있다. 진보 언론의 어떤 기사나 논평이 마음에 안 들면 반론을 쓰면 될 일조차도 사과문을 싣게 한다. 정말 ‘싸가지 없는 진보’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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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심판’이 진보를 골병들게 만드는가?

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들이 잘 할 생각은 않고 늘 보수에 대한 비판과 심판으로 자기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데에 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론 절대 안 된다. ‘심판’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진보를 골병들게 만든다. 정권 심판론에만 의지하다 보면 독자적인 의제 설정이나 정책 생산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심판을 외치는 와중에서 싸가지의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판’은 반대편만을 향할 뿐 자신들에겐 적용되지 않는 마법의 주문이다.

진보의 집권을 위하여

“적을 업신여기면 반드시 패한다(輕敵必敗之理)”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다. 이 말 이상 진보에게 좋은 말이 없다. ‘싸가지 없는 진보’는 상대편을 업신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보수를 숭배하거나 존경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 마음과 자세의 터전 위에 서야만 민심을 제대로 읽는 눈이 트여 집권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집권 후에도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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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있는 정치’를 위한 강준만의 진보 최후 집권 전략

『싸가지 없는 진보』는 강준만 교수가 「월간 인물과 사상」2014년 5월호에 쓴 《왜 싸가지 없는 진보는 진보에 해가 되는가?:도덕 이론》이라는 글의 토대로 집필되었다. 저자는 상대편을 존중하는 마음과 자세의 터전 위에 서야 민심을 제대로 읽을 수 있어 집권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집권 후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며 ‘싸가지 있는 정치’를 제시한다. 이성 중심의 정치관이 싸가지 문제를 사소하게 보는데 일조했으며 싸가지 문제가 어떻게 진보를 나락에 빠뜨리게 되는지 책을 통해 실감나게 이야기한다.

진보의 싸가지 문제란 무례함, 도덕적 우월감, 언행 불일치 등을 말한다.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되 담론에만 집중한 나머지 예의를 벗어난 표현, 위에서 내려다 보듯 가르치려는 태도, 진보를 좋아하지 않고 보수에 표를 찍냐고 호통치는 자세 등이다. 저자는 20센트의 유권자가 결정하는 정치와 선거에서 정치인들의 ‘태도’ , 싸가지의 문제와 독설과 욕설을 앞세운 진보 진영의 담론, 조중동 프레임과 조중동 숭배, 진보 언론을 향한 ‘싸가지 없는 진보’의 행태 등을 지적하며 ‘싸가지 정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강준만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논객의 한 사람. 직선적이고 도발적이고 감각적인 구어체 문장으로 논쟁 상대를 인정사정 없이 짓밟아 버린다. 지역차별, 학력차별, 남녀차별 등 모든 형태의 차별과 연고주의, 패거리 문화를 혐오하며, 지식인의 기회주의로 판단되는 언행들을 제1의 논적으로 삼는다.
표현이 너무 거칠다는 비판에 대한 강준만의 입장 --- 그나마 자제해서 그렇게 쓰는 거다. 대부분의 필자들은 비판당하는 사람이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쓰레기 같다`를 `문제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정도로 점잖게 쓰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내 글을 보고 감정이 깔려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우리 사회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도 될 정도의 문제만 있는, 그렇게 좋은 사회인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글을 쓰면서 글에다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 논리적으로만 쓰라? 나는 말이 안 된다고 본다.
누구를 대변하는가? --- 대한민국에는 1류 아닌 인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대변할 사람이 없다. 언론이 일류 먹물 출신이니까. 1류들끼리 연고주의와 패거리 문화로 서로 봐주며 잘 사니까. 대신 내가 그들을 대변하는 거다. 무슨 양심에 따라서 하는 일도 아니고, 다만 지식인으로 밥 벌어 먹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강준만의 또 하나 특징은 엄청난 속필이요 다작이라는 데 있다. 거의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써낸다. 그러면서도 일정한 질을 유지한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청탁 원고를 빨리 써주기로 유명하다. 이렇게 많이 쓰는 이유는 하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이다. 그를 화나게 하는 사람과 사건이 도처에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슴에 꽉 찼다가 흘러 넘치는 것들을 그대로 글로 옮긴 것이 그의 비평문들이다.
그가 펴내는 1인 잡지 『인물과사상』은 1만명의 정기구독자를 가지고 있다. 강준만의 눈으로 세상을 읽고, 강준만의 가슴으로 느끼며, 강준만과 함께 분노하고 감동하는 그의 충실한 독자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만한 `고정 팬`을 가진 사회과학자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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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jtbc.joins.com/html/904/NB10591904.html?cloc=jtbc|news|index_photo_news <----강준만 인터뷰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앵커]

제목이 굉장히 도발적입니다. <싸가지 없는 진보>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지역 방언에 대한 편견이 적용한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도 싸가지 없다는 말 쓰고 있고요. 과거에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했을 때에 사람들이 화 많이 냈거든요]

[앵커]

별로 맛이 안 난다 했죠.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그렇죠. 다시 짜장면도 옳은 표기법으로 했단 말이에요. 싸가지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주시면, 상스러운 말이 아닙니다.]

[앵커]

근데 그렇게 설명을 해주셔야 하잖아요, 그래서 혹시 본래 뜻은 아니더라도, 예전에 강준만 교수께서 본격적으로 대중한테 알려지기 시작한 게 <김대중 죽이기>란 책이었습니다. 그때도 제목이 굉장히 강렬해서 흔히 하는 말로 낚시성 제목이 아니냐 이런 얘기도…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낚시성…참 재미있는 게요, 오늘 이야기의 핵심일 것 같습니다. 제가 소통·타협·화합 부르짖은 지 10년이 넘었거든요. 아무도 몰라요, 아무도 모르고 이번에 책을 냈더니 저보고 달라졌다는 겁니다. 제가 10년 전에 달라졌는데요]

[앵커]

어떻게 달라졌다 얘기합니까?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그건 무슨 말인가 하니 저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이미지는 독설 위주에 실명 비판, 그랬던 사람이 왜 갑자기 싸가지를 부르짖고…]

[앵커]

그래서 강 교수께서 제목을 이렇게 내니까 '자기도 싸가지가 없으면서' 이런 말들이…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그런 이야기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싸가지 없는 건 인정하는데요, 이건 다같이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앵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진보 진영은 왜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하셨습니까?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싸가지를 많은 분들이 좁게 해석하시는 거 같아요. 막말이라거나 욕설 그건 기본이고…기본적으로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식으로 이야기한다거나,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건 선악이분법입니다. 제가 요즘 즐겨보는, 본방사수하는 드라마 중에 '유나의 거리'라고 있거든요]

[앵커]

저희 뉴스 끝나면 나가는 드라마군요.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제가 그걸 꼭 봐야 하거든요]

[앵커]

왜 그렇습니까?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김운경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데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이분 드라마에는 선악이분법이 없어요. 선한 사람도 악하지 않더라도 안 좋은 면도 있고, 안 좋게 말한 사람도 봤더니 선한 면도 있고…]

[앵커]

전부터 그런 기조가 있었죠, 그분 드라마에는.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그분 드라마가 늘 그렇죠, 가장 리얼리티가 뛰어난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진보 보수의 대결을 보자는 거죠, 선악이분법으로 보면 명쾌하게 저쪽은 악이고 이쪽은 선이다, 저쪽은 불이고 난 정의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앵커]

사실 진보-보수도 그렇게 사안에 따라서 완전히 갈리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죠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그런 경우도 많고요. 또 개인의 행태로 돌아오면 내 자식 좋은 학교 보내고 싶어 하고 부동산 재테크 하고 싶고 얼마든지 일상적 삶에서는 같은 게 더 많다는 거죠. 원수처럼 편 가르기 해서 너는 악이고 나는 선이다? 이 출발 자체가 잘못됐다는 거죠]

[앵커]

보수에 대해서 똑같은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시겠네요?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그거 역시 또 제가 많이 들어 본 이야기에요. 제가 묻고 싶은 건요, 왜 진보를 하느냐는 거예요. 보수는 이대로 좋다는 분들 아닙니까? 비교적. 진보는 바꿔보자는 분 아니에요? 누가 아쉬운가요? 그러니까 똑같은 잘못, 똑같은 일을 했다 하더라도 진보가 대단히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거죠. 그러면은 진보 쪽에 계신 분들은 왜 우리가 부당하게 당해야 하느냐? 보수가 더 나쁜데 보수를 욕해야지 너는 왜 자꾸 우리 편만 건드리려고 그러느냐,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거기에 착각이 있죠. 그러면 진보를 애초에 부시지 않고 정말로 나는 헌신하고 봉사해서라도 진보의 가치를 실천하겠다. 그런 분들 우리 사회에 아주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나오게끔 문을 열어줘야죠. 절대 전 진보가 그렇게 억울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요, 보수하고는 다른 헌신성과 어떤 포용을 더 보여야 한다는 게 저의 주장이죠]

[앵커]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군요. 요즘 오히려 예를 들면 새누리당이 보수 정당인데 그쪽에서 오히려 개혁을 많이 하고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은 오히려 더 수구적인것 같다. 뭐 이런 계파 싸움 등등에서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마는, 그렇다면 그런 지적에도 동의하십니까?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글쎄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어찌 됐건 지금 우리 새누리당 대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이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 예외는 있었습니다만 내내 반 토막 수준입니다.]

[앵커]

지금 아주 최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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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이걸 어떻게 설명할 거냐 이거죠. 그러면 거기에 대고 여론이 늘 옳은 건 아니다? 아주 가끔 옳지 않을 때도 있죠. 근데 이렇게 지속적으로 오랜 기간 경쟁정당의 지지율보다 반 토막 수준이라고 한다면 이거 정말 큰일 났구나 해서 비상상황에 돌입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앵커]

예, 근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모습이라는 거죠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못하죠, 못하고 성찰도 없고. 오히려 저같이 싸가지 갖자고 이야기하는 쪽이 더 두들겨 맞고 있죠]

[앵커]

왜 두들겨 맞으십니까?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적을 돕는다는 거죠. 왜 새누리당 좋아하고 보수언론 좋아할 이야기만 하느냐…]

[앵커]

지금 말씀하신 것 요체는 정책·이념 뭐 다 좋지만,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태도라고 이렇게 그 단어를 써버리면요, 제 문제의식이 조금 박약해집니다. 태도가 당연히 들어가는데요, 기본적으로 내가 정말로 내가 이 사회의 진보를 실천하고 힘없는 사람 약자를 위해서 세상을 바꿀 뜻이 있느냐는 겁니다. 실천을 해줘야 하죠, 책임윤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갈등되는 산이 딱 나타나면 거기에 우리 흔히 하는 말로 올인을 해가지고 그거 아니면 아무것도 없다는 식으로 가버릴 때 누가 고통받느냐 이 말이에요]

[앵커]

그러면 혹시 이런 비판을 받지 않으십니까? 그러니까 좀 유화적이 됐다든가, 타협적이 됐다든가, 그런 쪽으로 비판이 오지 않을까요?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오는 정도가 아니고요, 제가 최근 진보 신문에 세월호 특별법 관련해서 야당에게 타협을 주문하는 그런 글을 올렸단 말이에요 그 신문지에 들어가서 댓글을 봤더니 한 50여개 달렸어요. 그래서 따져봤더니, 제가 다 읽어봤어요, 제 의견에 동조하는 분은 한 두 분, 95%가 비판이 아니고 비판, 비난, 욕설, 저주, 일제 강점기 때 친일파의 논리다, 일베충이다 이게 지금 우리 진보 쪽에 타협 거부하는 분들의 기본 정서입니다.]

[앵커]

그러면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다시 말해서 타협할 수 없는 상황, 그만큼 또 상대편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보시는 부분은 없을까요?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그게 정말 딜레마인데요, 제가 좀 말하기 쉽게 올리겠습니다. 우리 시청자들께서도 익히 알고 계신 사실이지만, 이게 지금 정당이 있습니다. 그럼 이 정당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소위 우리 그 인터넷의 1%의 법칙이라고 들어보셨죠? 웬만한 웹사이트에 콘텐츠 창출하는 사람이 1%입니다. 댓글 올리는 사람이 9%입니다. 1:9:90. 나머지 90은 구경만 하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 정치도 똑같아요. 절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어쩌다 여론조사에 응하거나 투표할 때, 그때 빼곤 참여가 없어요. 그럼 왕성하게 참여하는 분들이 누굽니까? 댓글 달고 SNS에 메시지 날리고 전화 걸어서 항의하고 시위하는데 해주시고 돈도 가져다가 받쳐주시고 10% 미만입니다.]

[앵커]

그런데 이제 90%는 침묵한다 하더라도 침묵한 다수가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란 말이지요.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이야기를 못 하죠. 가령 저 같은 경우예요.]

[앵커]

그러나 자기 의견들은 가지고 있으실 테니까…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있죠. 있는데, 지금처럼 그…다 훼방정국이에요. 지금 분위기가요. 좌우가 격돌하는 중에서 중간파는 양쪽으로부터 몰매를 맞습니다. 속된말로 아무런 보상도 없고 무슨 흔히 하는 말로 '38선 혼자 막냐?' 나오지 않는다는 거에요.]

[앵커]

강 교수께서는 그 가운데 중도를 대변하시겠다 그런 말씀이신 건가요?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아니죠. 저는 중도를 대변한다기보다도요. 저는 중도라는 말이 정말 잘못 쓰이고 있다고 봐요. 사회에서요. 가짜논쟁입니다. 중도, 진보, 보수요. 이거 가짜논쟁이에요. 왜 그러냐…]

[앵커]

노선 싸움이 가짜일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 거죠?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가짜라는 거죠. 100%는 아니겠지만 90% 이상 가짜에요. 왜 그러냐 하면요. 사람별로 보수로 가야될 노선이 있고 다 다릅니다. 어떻게 세 토막으로 삼등분합니까?]

[앵커]

하긴 실험해본 바에 의하면 사안별로 혹은 정책별로 보수와 진보라고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서로 상대편의 정책이나 노선을 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다릅니다. 정치 다르고요. 경제 다르죠. 대북문제 노사관계 다르죠. 부동산 문제 다르죠. 다 다릅니다. 근데 거기서 중도다? 어떻게 규정할 수가 있나요?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앵커]

예, 알겠습니다. 어떤 뜻인지는 알겠는데요. 여전히 아마 지금 방송을 보고 계신 분들 가운데 동의하는 분들도 계실 테고, 또 비난하는 분들도 역시 계실 거 같습니다. 조금 현실적인 문제에 의해서 비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쉽게 말하면 강 교수께서 지난 2003년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나올 때 열린우리당이 갈라져 나가는 것에 대해서 대단히 비판적이셨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 강 교수께서…모르겠습니다. 싸가지 없다고 표현하신 것이 혹시 지금 새정치민주연합 내에 흔히 얘기하는 강경파, 그분들은 강경파라고 얘기하면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쪽을 타깃으로 한 것인가. 그렇다면 묘하게도 그분들과 과거에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나갔던 분들 중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반감, 한풀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제가 많이 들은 이야기를 용케 다 짚어주시네요. 이것은 간단합니다. 자, 그럼 역지사지해줘야죠. 민주당 분당 때 저는 분당 반대파였죠. 그럼 찬성했던 분들은 그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까요? 그러니까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라면 그 말하는 내용을 가지고 말을 해주셔야지, 자꾸 파고 들어가면 끝도 없다는 거죠. 더 중요한 건 제가 그런 생각의 연장 선상의 문제를 제기했다면 제가 왜 친노 중의 친노라고 할 안희정 지사를 왜 긍정적으로 볼까요? 그리고 제가 제안으로 제시한 것도 지금 강경파라고 불리는 분들이 좋아하는 풀뿌리 건설이거든요. 그분들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제가 하고 있는데요.]

[앵커]

안희정 지사 같은 경우에는 이른바 강경파라고 하는 쪽과는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니냐, 그래서 강 교수 마음에 든 것이 아니냐고 또 반론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 안희정 씨 같은 경우에는요. 이분이 무슨 타협을 한다를 떠나서 어찌 됐건 자기가 어떤 구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늘 소통을 이야기하고요. 그간 발언을 했던걸 봤더니 상대편에 대한 존중이 있어요. 그 가운데서 자기 실력으로 콘텐츠로 승부해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해보자 그거 아닙니까? 그러면 그분이 지금 예를 들어 강경파로 분류되는 그분들 속에서 완전히 욕먹고 있나요? 그렇지는 않죠. 그러면은 그런 분들이 많아져야 정치의 방향도 달라질 수도 있는 거 아니냐는 거죠.]

[앵커]

인터뷰 중에 왜 끊느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는데, 화면에 띄워드린 대로 오늘 인터뷰는 오늘 오후에 녹화한 건데요. 총 분량이 30분 가까이 됐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내용을 다 보내드리긴 어려워서 오늘과 내일로 나눠서 보내드릴까 합니다. 그래서 중간에 이렇게 잠시 접었는데, 나머지 절반을 내일 보내드릴 텐데요. 내일도 관심이 가는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강준만 교수는 내일 다시 나머지 인터뷰 내용을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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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尼再生 " 夜 의  走筆  " 취임사

 

저를 아크로 주필로 추천하시는 회원여러분의 글을 읽고, 오늘 본인은 본인의 향후 거취를 놓고 깊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끝없이 되뇌며, 다수 회원의 요청대로 아크로 "밤의 주필" 직을 기꺼이 수락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내 일신의 안녕 만을 위한다면 봉급 한 푼 못 받는 이 명예직을 수락할 수 없었겠지만, 이미 공인 아닌 공인이 된 몸으로서 이 위기의 시대에 역사가 제 어깨에 지운 이 짐을 떠맡기로, 본인은 이 아름다운 밤 위대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