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건강하게 오래사는 것은 좋은 일이며 마땅히 권장되어야 할 일이다. 따라서 고령화사회 자체는 진보된 사회이고, 특히 평균수명이 40세 남짓하던 전근대사회와 비교할 때 인류의 위대한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고령화사회에 대한 예찬은 고사하고 걱정과 근심이 높기만 하다. 인류가 오랫동안 이상향으로 꿈꿔왔던 사회를 이루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걸까? 

사실 고령화사회의 문제는 사람들이 오래살아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원인은 다른 것에 있다.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고, 그래서 노동력을 팔 수 없는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많다는게 문제의 본질이다. 즉 우리시대의 고령화사회란 정확히 <평균수명이 짧고 실업자들이 넘쳐나는 사회> 와 동치이다. 원인과 인과관계는 늘 정확하게 파악되어야 한다. 

수명이 다할 때까지 소득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일부의 사람들은 아무 문제가 없고 당연히 논외이다. 결국 고령화사회에서 다뤄야할 대상은 나이 들어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나이 든 노동자들 (정확히는 소득수단이 노동력 밖에 없는 프롤레타리아) 의 문제라는 것이고, 노동력을 팔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문제이다. 

그런데 고령화사회의 이런 본질적 측면 (은퇴한 노동자들의 생존) 이 요즘 들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평균수명이 정년(본래의 노동력을 팔 수 있는 최대 나이) 을 돌파한 순간부터 이미 발생했다. 해법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퇴직금제도. 정년 이후의 평균수명이 얼마 되지 않을 때, 퇴직금만으로도 충분히 해결가능했고 모두가 해피했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계속해서 늘어나자 더 이상 안정적인 해결방법이 될 수 없었고 그래서 도입된 것이 연금제도이다. 그러나 한국의 연금제도는 아직 유명무실하고, IMF 이후 퇴직금마저 유명무실해지며 퇴보해버렸다. 이제 정년이 지난 한국의 나이 든 노동자들은 각자도생해야만 한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 현재 한국인들의 공식 평균수명은 80세이지만, 고령화사회를 논할 때 필요한 평균수명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그것은 신생아 사망까지 모두 포함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령화사회를 논할 때 필요한 평균수명은 어디까지나 정년 이후 노후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의 평균수명이어야 한다. 그럴 경우 실제 평균수명은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되며, 85세로 잡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혹시 정확한 통계치를 아는 분은 연락바람]

따라서 한국의 통상적인 노동자 (반복하지만 여기서는 프롤레타리아의 의미이다) 들의 삶이란 대략 이렇다. 

1~25세 : 부모로부터 양육받으며 노동력을 갖추는 시기 (25년)
25~60세 : 노동력을 팔아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시기 (35년)
60~85세 : 실업자 상태로 생존해야만 하는 시기 (25년) 

결국 한국의 노동자들은 35년 동안의 소득으로 60년을 살아야하며 (실제로는 실업 명퇴 비정규노동 등으로 35년 꼬박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한다. 만약 퇴직금과 연금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소득의 41.7% (25년/60년)를 노후생활비로 저축해야만 동일한 지출의 생활이 가능하다. 만약 절반의 지출로 생활할 계획이면 26%를 적립해야 한다. 물론 화폐가치가 언제나 동일하거나, 물가상승률만큼 이자를 얻는다는 조건에서나 그렇다. 

(만약 월 300만원 소득자가 60세까지 매월 125만원을 저금하고 175만원으로 생활하면, 노후기간 동일한 175만원을 쓰면서 살 수 있다. 80만원을 저금하고 220만원으로 생활하면, 절반인 110만원을 쓰면서 살 수 있다. 만약 요즘 널리고 널린 150 ~ 200만원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라면? 답이 없다)

간단한 계산만으로도 문제가 뭐고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 만약 한국이 정상적으로 고령화사회를 대비하고 있다면, 모든 노동자들이 최하 26%의 소득을 노후대비로 저축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평상시 절반 수준의 지출을 하며 노후생활을 할 수 있다. 국민연금 9%를 감안한다해도 17%의 별도 적립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10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이다. 게다가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한 국민연금마저 저성장 저출산으로 인한 세대갈등으로 삐걱거리고 있다. 

이 상태로 본격적인 고령화사회 국면이 시작되면, 헬게이트가 열리는 것은 피해갈 수 없는 외길 수순인 것으로 보인다. 인류의 오랜 꿈이었던, 모두가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회가 지옥으로 변하는 것이다.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 


뱀발) 얼마전까지는 자녀양육비를 노후생활비 적립쯤으로 여길 수 있었지만, 논외로 했다. 요즘 세대는 부모 공양은 커녕 본인들 사는데에도 급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