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사람을 쓸 자원이 자신에게 있을 때 그때가 인생살이에서 한편으로 참 위태로운 순간이다. 사람을 부리는 것과 사람을 쓰는 것은 물론 다르다.


좀 먹고 살만해지거나 발달상 다른 욕구가 생기면 자신의 일을 대리할 타인들을 찾는다. 그런데 그게 정당한 물물교환의 방식이면 좋은데 역학 관계로 엮이면 사람 버리는 거 순간이다. 일단 힘(뭐, 미래학자들의 Power Shift 이야기에 나오는 여러 가지 힘들 정도로 쳐두자)으로 사람 부리는 사람들은 확실히 언행에 태가 나드라. 공포 때문에 사람을 아래에 두고 자신이 그 위에 있음을 확인하지 않음 못 견딘다.


그런데 저 욕구가 강한 축들은 결국 상층과 하층에 있는 이들이다. 그저 자기 핏줄은 건사하고 가벼운 여가생활 정도 즐길 수 있고 액수를 떠나 항산이 있는 이들은 확실히 그런 욕구가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사회계층상 하층에 있다가 중층에 올라선 이들이라도 중층에 올라서기까지 종자돈을 모으는 과정이 평범했던, 아끼고 남 피해 주지 않고 버텼던 이들이라면 분명히 그런 욕구 약하다. 중층에 올라서기까지 탈법과 비열함이 많았던 이들은 아직 한참 올라야 할 길이 멀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탓에 인의 장벽을 치려는 욕구가 강하다. 지킬 게, 손에 쥔 게 많을수록 인의 장벽을 두텁게 칠 수밖에 없지만.


하층, 중층, 상층을 막론하고 싸구려는 싸구려인 법. 그런 건 돈이나 신분, 지식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잠시 가릴 수나 있는 정도지.

절대 수치로 보면 하층에 싸구려가 더 많겠지 아마? 일단, 경제적, 사회적 약자로서 하부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무엇보다 절대 인구수 자체가 많으니까. 물론 여기서 싸구려란 꾸준하게 혹은 일정하게 싸구려 모습을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많이 못 배우고, 손에 쥔 게 많이 없다고 그 사람이 힘들어 일탈을 했을 때 "역시 못 배우고, 가난한 것들은 어쩔 수 없어"란 말을 쓸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못 배우고, 손에 쥔 게 많이 없는 이들일수록 "인간에 대한 애정이 많고, 자기 힘들면 남 힘든 것도 헤아리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말 역시 쓸 수 없다. 모다 잡다한 말이고 사람은 사람의 언행으로 봐야지, 그 사람에게 붙은 속성(나는 소속을 크게 본다)을 가지고 재단할 일은 아니라는 것.


인생에서 한참 분별지를 쌓다가 어느 임계점에 이르면 분별지가 희미해져간다. 

물론 분별지가 나처럼 별볼일 없는 수준일수록 훨씬 빨리 희미해져간다!!

뇌를 두 차례 다쳤고 약간 건망증을 넘어서는 지남력 장애도 간혹 보이고.


노인학자들의 말처럼 나이가 드는 게 축복인가는 좀 더 두고봐야겠다.


슬쩍 주변 눈치를 보니 나는 꽤 배운 축에 드는 놈인갑다(황당) -.- 요샌 그래두 못해두 달 500은 하니...최소한의 민생고 걱정도 없고...

그런데 인민의 적으로 보는 이들이 있드라 현실에서!! 우하하하. 인민은 서민이라고 해두자.


강준만 씨가 썼던 호남 출신들이 타지에서 암묵적으로 상사들의 부당한 해꼬지와 불이익에 저항하는 모습을 그린 글들. 나는 그 글 십분 이해한다. 그 풍경의 피사체는 사실 호남 출신들이 아니라 집을 떠난 저소득층의 풍경이라 봐야 맞겠지만.


단, 그 저항엔 명분이 있어야 한다. 부당한 지시, 불공정한 인사, 불공정한 이익 분배, 사적 린치 같은.


분명한 것은 호남차별이 극복되더라도 또다른 호남에 해당하는 존재들이 나타나 빈 자리를 메꾼다. 그건 필연이다. 그래야 세상이 돌아가니까. 그렇담 시간이 걸려도 규모와 강도를 줄여가는 것 외에는 답이 안 보인다.


행복을 원하거든 지나치게 인연을 많이 만들지 않아야 하는 법. 

자기 몸 제대로 건사하고 이웃과 충돌하지 않는 것만 해도 괜찮은 삶이다.


요새는 거절하는 법을 익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