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정확히 않지만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의 한 토막. 마초네랑 싸울 때였을 수도 있고:


조조가 원소네 형제랑 싸우느라 그쪽 동네로 진군해서 대장들이 나와 기 싸움을 벌이는데 원소쪽 병사들이 갑자기 수군댄다.

"쩌기 저것이 조조란다", "어디 어디?" 

마구 뭐라고들 하는데 인간이 쓰는 분절 언어는 아니고 짐승들이 성대로 내는 음향, '웅성웅성'.


조조가 나서 채찍을 들고 한 마디 한다.

"그래..내가 바로 조조여"


물론 소설 속 장치다.

나는 저기서 노예들, 혹은 다툼이 일었을 때 자기 이름 석 자 밝히는 것도 두려워 벌벌 떨며 숨어서 인간이 아닌 동물의 괴성을 지르는 인간종들을 본다. 요즘 세상에는 이름 석 자나 연락처 밝히는 것도 어려운 모양이다. 남의 이름이나 연락처는 밝히질 못해서 안달이 난 부류들이. 하긴 뭐 전략이라는 게 자신은 숨기고 상대는 드러내는 거지 ^^


고통이, 육체적, 경제적, 정신적 고통이 길어지면 사람은 나약해지고 초라해지게 마련. 그게 보통 사람의 수준이다.

그런데 그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비열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형태의 고통이든 사람을 사람답지 않게 만들 확률은 크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비열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비열함 뒤에는 맹목과 확신이 자리잡는다.


보통 사람들은 칼로 사람을 찌르더라도 수차례 주저하며 주저흔을 남긴다. 

그런데 주저흔을 남기는 않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겠다 싶다. 세상 돌아가는 품으로 봐서는.


준거 집단의 압력을 이겨내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한 인간은 본질적으로 비열하다. 준거 집단의 압력을 이겨내는 것, 그게 내가 아는 개체다. 비열함 = 동물 ^_______________________^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사회적 동물'을 '무리 짓는 짐승'으로 바꾸어 표현하면 아마 난리가 나겠지?

시간 앞에서야 비열함이니 개체니 그런 수식어가 무슨 대수겠냐만.


때렸으면 때렸다고 하고 화해하든가 손해배상 하면 되지, 왜 때린 적 없다고 할까? 

아니, 그보다 왜 때리고 도망을 갈까? 세월호 유족 폭행 사건 거론하는 건 아니다 ^^


폭력은 결국 무슨 이야길 하고자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야기하자고 폭력을 휘둘러 놓고 왜 도망을 가나?


이 잡설의 귀결점은 결국 *당사자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