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의 정치개입을 금지한 국정원법 위반혐의는 유죄, 공무원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결이 되었다. (물론 1심 재판이므로 법적인 유무죄가 확실하게 결론난 것은 아니다.)

먼저 선거법 위반 무죄 부분을 놓고 판사를 비난하거나 할 생각은 없다. 나에게는 법리를 들먹이면서 판결의 부당함을 논할만한 수준의 지식이 없기도 하거니와, 아직은 우리나라 판사들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만약 최종 대법에서까지 무죄라면, 이의없이 수긍할 생각이다. 그러나 법적 무죄라는 것이 결코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무죄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원세훈의 선거법 위반 혐의가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무죄임을 믿지 않는다. 그저 법적 처벌을 피해갈 정도로 운이 좋거나 잔머리가 비상한 놈일 뿐.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선거법 무죄를 선고한 판사마저 확실한 팩트로 인정하고 유죄를 선고한, 국정원의 조직적이고 편향적인 정치개입과 여론조작행위의 심각성이다. 그런데 이번 판결을 비판하는 측이나 옹호하는 측이나 한결같이 이 문제는 간과한 채 선거법 유무죄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선거개입보다 더 가볍고 별거 아닌 일이라는 것은 아닐테고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국정원이라는 국가 최고의 공권력기구가, 원장 이하 다수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가담하여 편향적인 정치개입을 장기적으로 일삼은 것은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뿌리채 뒤흔드는 중대 범죄이다. 선거법 위반이고 나발이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국정원은 해체에 버금가는 심판을 받아야하며, 관련자 모두는 납득할만한 수준의 엄벌에 처해져야만 한다. 이것이 안되는 나라는 막장의 정치후진국이고 사법후진국에 불과하다. 

그러나 관련자 3명의 집행유예형만으로 모든 것이 종료될 것 같은 분위기고, 사실상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번 사건이 심각한 국가 불신을 초래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그 때문에 발생한 막대한 손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재발방지는?

국가공권력기구의 범죄는, 그것이 이번처럼 수뇌와 말단까지 총동원된 고의적이고 조직적이고 장기적으로 자행된 범죄라면, 해당 범죄를 자행한 국가기구와 연루자 전체를 재앙에 가까운 징벌로 처벌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 당연한 것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매우 심각한 비정상상태이고, 그것이 이번 판결은 물론 사건 진행 과정의 가장 큰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