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삶이 보이는 창과 예전 삶이 보이는 창 속의 이야기들은 풍경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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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잡지 제2호에 독자(?)가 올린 글 한 꼭지를 가져와 본다:


고들빼기 파는 날

김영희(대림 자동차)
2005년 8월 30일


무슨 소리가 잠을 방해하고 있었다. 머리 속에서는 계속 일어나는 내 모습을 보는데도 몸은 본드칠이라도 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마지못해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몇 번 돌렸다. 뻐근하던 몸이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갔다. 창문을 보니 밖은 아직 해가 뜨기 전인지 어둠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소리는 수돗가에서 들렸다.
날짜를 헤아려보니 오늘은 반성장이 서는 날이었다. 벌써 수돗가에는 바퀴에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간 리어카가 대기해 있고 고들빼기가 담길 비료푸대가 서너 장 널려 있었다. 물통에서 고들빼기를 건져 올리는 엄마의 표정은 신성한 의식을 행하는 제사장처럼 엄숙해 보였다. 여름 내내 고들빼기 밭에서 사시느라 어디가 얼굴이고 어디가 머린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까맣게 타신 엄마.
늦여름이 되면 고들빼기는 통통히 살이 올랐다. 5일장 사흘 전부터 엄마는 고들빼기를 캐고, 다듬고 물에 담가 두었다. 요즘은 고들빼기 김치가 고급 반찬이라, 다른 채소를 내다 파는 것보다 훨씬 돈이 된다고 했다. 추석 전이라야 억세지 않고 보드라워 좋고, 살 사람이 많아 값이 비싸다고, 추석 무렵이 되면 숫제 밥을 굶기 예사고, 아버지 밥마저도 건성으로 챙기고 밭으로 가는 것이었다.
비탈진 밭을 관절염때문에 성치 못한 다리로 다녀야 하기 때문에 엄마의 밭매기는 언제나 고통이었다. 한쪽 다리로만 몸무게를 지탱하고 아픈 다리는 완전히 땅에 대고 기다시피 하면서 여기저기 흩어진 고들빼기를 캐야 했다. 그래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엄마의 몸빼바지 한 쪽 무릎은 언제나 흙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아버지의 아침 밥상을 챙기면서 나는 부지런히 양말을 신고 옷을 챙겨 입었다. 오랜만에 엄마의 리어카를 밀어 드릴 생각이었다. 예전에는 장날 아침이면 가끔 일찍 일어나 리어카도 밀어주고 했는데 요즘은 게으름만 늘어, 집에 와도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방바닥에 코 박고 자기 일쑤였다. 
됐다는 엄마의 만류도 뿌리치고 집을 나섰다. 리어카를 끄는 것도 요령이라며 나를 뿌리치고 앞에서 리어카를 끄는 엄마는 거리의 무법자마냥 차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른 아침이라 큰 트럭이나 많은 차들이 빠른 속도로 우리를 추월해 갔다. 뒤에서 몇번이나 큰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었지만 엄마에게 있어서 자동차는 길 가는데 걸리는 방해물밖에 되지 못하나 보다.
이 곳 장터는 경사가 삼십도는 족히 넘을 듯한 비탈길 너머에 있었다. 그래서 물이 가득한 고들빼기를 한 리어카 싣고, 관절염때문에 질질 끌고 다니는 다리로 움직여야 하는 엄마에게 그 길은 고생길이었다. 간신히 비탈길을 다 넘은 엄마와 나는 잠시 리어카를 한 옆에 세워두고 길가 슈퍼 앞 평상에 대자로 뻗어 버렸다. 숨이 들숨날숨했다.
마침내 장에 도착했다.
벌써 자기 자리를 잡은 아줌마들이 가져 온 짐들을 진열해 놓고 있었고 짐을 부리는 경운기, 리어카, 트럭으로 좁은 길은 사람 한 명 지나다니기도 힘들 정도였다. 큰소리로 차를 빼라고 하는 아줌마, 차 좀 지나가자고 하는 사람들, 말 그대로 장은 난장판이었다. 엄마는 십년 넘게 당신의 자리셨던 장소에다 가져 온 물건을 주섬주섬 풀어 놓았다. 아줌마가 왔다.
여기서 고들빼기를 사서 마산역 앞의 번개시장이나 다른 시장에 가져다 파는 사람이다. 아줌마를 쳐다보는 엄마의 얼굴에 한순간 긴장이 인다.
“오늘은 억수로 많네.”
“어제 딸래미도 오고 해서 많이 캤는데.”
아줌마가 부르는 값은 어제 엄마가 내게 말하던 가격의 절반이 조금 넘었다. 허공에서 나와 엄마의 눈길이 부딪쳤다. 재빨리 서로의 눈길을 피했다. 잠깐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전까지 그렇게 시끄럽던 사람들의 소리들, 귀를 찢어 놓을 것처럼 울려대던 차들의 클락숀 소리, 모두가 갑자기 멎은 것 같았다. 잠시 아연해진 나와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줌마는 다른 데를 보라며 추석이라 저마다 고들빼기를 가져와 온 장바닥이 고들빼기로 그득하다고 했다.
세 개의 비료푸대가 아줌마의 트럭으로 옮겨졌다. 고들빼기가 떠난 엄마의 좌판은 썰렁했고 그 좌판의 썰렁한 바람이 엄마와 나 사이에 불었다.
“내려가서 아침 묵고, 좀 자고 해라. 리어카 민다고 고생했다.”
휑한 좌판처럼 엄마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린다. 어제 하루종일 뙤약볕에서 엄마가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면서 온 밭을 휘저으며 흘린 땀의 댓가가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드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장을 벗어나면서 나는 손바닥을 보았다. 마디 군데군데 물집이 생겨 있었다.
터벅터벅 집으로 가는 내 마음 속에는 그보다 더 큰 물집이 물을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