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궁테러사건'으로 명명된 2007년의 "판결에 불만을 품은 수학 교수의 판사 공격"사건과 그것을 영화화한 '부러진 화살'이 요즘의 논쟁거리 같습니다.

저는 영화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아크로의 글들을 읽어보니 대충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갑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의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영화를 안보고 하는 소리라 헛소리일 수도 있습니다만, 영화 '부러진 화살'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실체적 진실', '영화와 사건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보다는 다른 것에 더 관심이 갑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이 팩트를 고의로 왜곡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나, 언론이 영화와 사건을 제대로 '언론답게' 다루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나, 혹은 각각 그 반대의 입장을 가지신 분들이나, 모두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법부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입니다. 이 사법부에는 법원뿐만 아니라 검찰도 포함된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이 사건과 영화가 오르내릴 수 있는 이유는 괴짜 수학 교수, 판결 불복, 판사 공격, 석궁과 같은 맛나고 푸짐한 반찬이, 국민 일반의 사법부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라는 밥과 함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3권'에 대한 불신이 깊습니다.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행정부, 국회의원과 정당으로 대표되는 입법부, 그리고 판사들이 대표하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매우 깊습니다. 이러한 불신은, 행정부는 5년마다, 입법부는 4년마다 선거를 통해서 과격(?)하게 표출됩니다. 그러한 불신의 표출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은 정치사회경제적 스트레스도 풀고, 이 나라의 (공)권력을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주체는 '우리'들이라는(그것이 허상이든 아니든간에) 알듯 모를듯한 뿌듯함도 느끼며, 우리 사회의 지향점, 공적 가치, 사적 욕망 등에 관한 토론 혹은 개싸움을 통해 사회를 디자인, 구성해 나갑니다. 당연히 과격한 불신과 분노의 표출 과정에서 행정부와 입법부는 국민의 표에 의하여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고 상당수는 새롭게 공직에 진입하는 등, 한마디로 물갈이가 국민의 손에 의해서, 민주주의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사법부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노무현 서거 이후, 진보개혁진영에서는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이 '재벌개혁'과 동등한 지위에서 주장됩니다. 정의와 공정이라는 시대적 화두가 경제영역에서는 재벌개혁으로, 그리고 정치사회영역에서는 검찰(사법)개혁으로 주장되고 있는 것이죠.



진보개혁진영, 더 구체적으로는, 수권 가능성이 높은(여타 진보정당들보다) 민주당의 사법개혁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는 아직 정책방향이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개별 정치인들이 이따금 언론에 이야기하는 것을 토대로 대강의 청사진을 예상해볼 수는 있죠. 그 청사진은 대강,

1. 검찰의 권한 축소, 분산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에 대한 손질: 검찰이 가지고 있는 형사사건에 대한 기소여부에 관하여 독점적인 권한의 축소/분산 지향. 체계적인 주장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일정한 요건을 정하여 미국식 대배심(일반 시민이 기소여부를 결정)을 도입하자는 주장, 정치적 사건이나 고위 공직자 혹은 검찰이 관련된 사건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을 위하여 공수처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대표적.

2. 수사권(수사 지휘권) 조정
-경찰이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지만, 내사의 범위, 검찰의 수사 지휘를 넘어 실제 수사까지 (경찰처럼) 하는 현실, 거기에 검찰에 부여된 막강한 형사사건에 대한 권한(기소관련권한)이 결합한 것에 대한 손질. 하지만 검찰과 경찰이라는 우리 사회의 두 막강한 집단을 모두 만족시킬 방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3. 법원 개혁 문제
-검찰에 대한 칼날보다는 무디지만, 전관예우와 관련된 문제, 그리고 판사집단의 폐쇄성으로 인한 태생적 보수성을 겨냥한 주장이 많은 것으로 보임. 전자는 법조 일원화 등 꾸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어왔지만, 후자의 경우는 요즘들어 힘을 얻기 시작했음. 전자에 대한 대안인 법조 일원화를 통한 '법조 3륜의 순환'으로 고인 물을 걷어내고 새 물을 받으려는 노력도 하고 있지만, 그 한계 때문에, 법원 고위직 혹은 대법관이나 헌법 재판관의 임명에 민주주의 원리를 더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음. 

사법에 대한 민주주의 원리의 도전은 국민 배심제로 결실을 보기도 했지만, 판사의 임명부터 승진, 그리고 판결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민의'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추상적으로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이 만든 법률에 의해서 판사가 임명"되는 식으로 대충 떼우는 실정이기 때문에, 헌법 원리의 최고인 민주주의 원리의 사법에서의 현실화를 위한 대안을 모색중임.



보시다시피, 체계없는 중구난방이지만, 그래도 굳이 대 원칙을 찾자면, 사법부(검찰 포함)의 권한 축소/분산과 동시에 그 빈 공간을 민주주의 원리로 대체/보완하자는 것이죠.

영화 '부러진 화살'과 '석궁사건'이 국민적, 대중적 관심(혹은 공분)을 불러일으킨 주된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내 자유, 내 재산, 내 삶이 걸린 재판을 왜 나와 별 관계가 없는, 오히려 나와 무관한, 내가 고개 숙이고 눈치 보면서, 굽신거리며 받아야 하지? 내가 낸 세금 받아먹고 살면서 왜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는(유리한 판결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을 최선을 다해 해주지 않는 걸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선거 때 반짝이기는 하지만, 대통령, 정당, 국회의원, 도지사 등등 힘 있는 사람들, 공권력과 무관한 일반 기업, 심지어 대기업들도 어쨌든 소비자 무서운 줄은 아는데, 사법권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와서 누구 맘대로 행사되는 걸까? 사법권력도 권력인데, 그렇다면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하는데 왜 이모양이지? 판결에 내 뜻을 반영하겠다는 것은 아냐, 그런데 판결 내용의 호오, 당부와 무관하게, 사법권력 자체가 국민, 주권자, 권력의 근원이 '나'와 별 관계가 없는 것이 문제아닐까? 민주주주의 한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