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몹에 있을 때 어떤 이가 전한, 아마 90년대 아니면 2000년대에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이의 말.

우리들에겐 익숙한 이름일텐데 딱히 떠오르지는 않는다. 이름이.


어느 (낙후된) 국가엘 가서 무언가를 이렇게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테니 그렇게 해보라 애써 틀을 만들어줬더니 그리 해결되고 나서는 다시 주민들끼리 싸바싸바해서 원래대로 돌아가드란다. 바꾸려 들어봐야 결국 원상 복귀되는 법이니 바꾸려 들지 말라.


이념 혹은 신념을 좇는 이들이 깨닫지 못하는 부분이 아마 저게 아닐까 싶다. 물론 그 미국 대사의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생각해 볼 점은 역시나 작은 변화에 치중하는 게 낫다는 거다. 스무 살 가시네도, 육십 노인네도, 저잣거리 양아치도 뭐랄까 스스로 확신하는 순간이 있다. 환희에 찬 법열과도 같은 웃음. 어린 아이의 웃음과 닮기도 했지만 값싸다는 생각이 드는 웃음(조선일보는 잘 꿰뚫고 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그네들은 평생에 한번도 이겨보질 못해서 그런 것이다. 달리 조선일보가 무서운 게 아니다). 

그 시공에서 그 확신은 부처, 예수네 할아비가 와도 못 깨드린다.


무언가 앞에 있다. 접하되 바꾸려 들지도 말고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도 말고 단지 다가서든 물러서든 그 인력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야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다. 자꾸 당기면 도망간다. 그냥 그대로 두어라. 스스로 깨닫는 거 외에 그네들에게 구원이나 탈출구란 어차피 없는 거니까.

생각해보면 누군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교만한 것인가 하하하 ^______________________^


그냥 잘못된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어라. 그게 상선이자 자연.

싸구려들은 싸구려인 것이다. 물론 평생 싸구려인 것도 아니고.

대상에게서 저항이 느껴지거든 그냥 거기서 멈추라.

그리 하면 아주 개새끼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든가 정신을 차리든가 둘 중에 하나다. 연민은 범죄다. 자유의지를 부정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