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시나리오 즉 스토리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지만 사실 내가 본 영화에서 정말 스토리의 힘을 느껴본 영화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 영화에서 스토리의 힘을 느끼게 해준 영화로는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이 기억난다. 지금 검색해보니, 십대 소녀였던 이상아의 전라 노출신이 주로 화제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처럼 취급하던데...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현대사의 분단의 비극성과 현재성, 치명성을 이렇게 탁월하게 드러낸 스토리는 없었던 것 같다. 심지어 <광장> 등 최인훈의 여러 작품들조차 그 현재성이라는 점에서는 이 작품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게 내 개인적인 느낌이다.

 
임권택을 유명하게 만들고 출세시킨 것은 <서편제>나 <장군의 아들> 등이겠지만, 감독으로서 작가로서 역량의 절정을 보여준 것은 <길소뜸>이라고 생각한다.

 
TV에서 뿌연 화질로 본 것이지만 그 영화의 장면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다. 자신의 아들(로 짐작되는)이 차에 치인 개를 주워올 때 김지미의 그 혐오하는 표정과 질색하는 반응, 단 1%의 의심도 없이 완벽한 증거라야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겠다는 자기 보호, 일상으로 돌아가다가 갑자기 차를 돌리며 충돌 사고가 날뻔한 마지막 장면, 그럼에도 다시 가던 길을 계속 가는 장면 등.

 
이 영화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져 좀더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한다. 같은 차원에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한국 영화의 명작들이라고 하는 <살인의 추억> <괴물>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등 어느 영화에서도 <길소뜸>만한 충격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더 사랑하는 한국 영화는 <반칙왕>이다. 그렇게 유쾌하게, 웃음과 눈물을 함께 경험했던 영화도 드물다. 아, <반칙왕> 이야기가 나오니 그 영화에서 보일락말락 까칠한 캐릭터였던 장진영과 장진영이 리즈 시절 등장했던 <소름>이라는 영화도 기억나네. 이 영화도 재미있게 보기는 했는데, 같이 봤던 여성이 누구인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네 ㅎㅎㅎㅎ


덧 :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송길한이라는 분이 엄청 유명하다는 것을 이번에야 페북 친구의 지적을 받고 알게 됐다. 이 영화 시나리오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한번도 작가에 대해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은 이 게으름이라니... ㅉㅉㅉㅉ 찾아보니 정말 대단한 분이다. 근데 이 분도 전북 전주 출신... 나는 모르고 글 올린 건데, 일베충들 보면 또 "역시 홍어들끼리는 통한다"고 쓰레기 같은 소리를 하겠지.

 

아크로에도 그런 쓰레기들이 늘어나서 꼴값을 떨어대니 한심할 따름이다. 이 쓰레기들을 사람 취급을 해줘야 한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나원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