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차별극복시민행동 성명서/


일베의 광화문 폭식투쟁에 대하여


일베가 길거리로 나섰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유족들과 시민들이 단식 농성을 이어가던 광화문 광장에 이른바 ‘폭식 투쟁’이라는 방식을 내세워 세월호 특별법 요구에 대한 조롱과 반대의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일베가 단기간에 엄청난 접속자와 동조자를 확보하는 등 성장세를 과시하면서도 온라인의 활동에 머무르던 한계에서 벗어나 이제 말 그대로 오프라인의 현실 정치판에도 본격 개입하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베를 지지하는 이른바 우파 성향 인물들의 과장 섞인 표현처럼 ‘역사에 남을 사건’이라는 주장은 아니더라도 이번 폭식 이벤트가 상당한 변화의 의미를 내포한 사건이라는 데에는 좌우파를 막론하고 건전한 상식을 가진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아스팔트를 점령하는 투쟁 방식이나 정의에 대한 선언적인 포지션을 좌파가 독점하던 시대가 끝났거나 끝나가고 있다는 점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폭식 투쟁의 방식 역시 좌파 진영 인사들이 도덕적인 혐오감을 드러내는 것과 달리 굳이 명분이나 논리에서 흠잡을 부분은 없다고 본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자 앞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패륜적인 행위로서 지탄받아야 마땅하지만, 먹을 것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자신들의 소신과 주장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 역시 거기에 항의하는 의미로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는 행위 자체를 비난할 명분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베와 그들의 행동에 지지를 보내는 이른바 우파 인사들은 이번 광화문 폭식 투쟁으로 자신들이 자신감과 만족감만 얻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책임성이 덜한 온라인에서 법적인 제재를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자신들의 취향을 드러내고 공유했던 것과 달리 오프라인에서의 말과 행동은 훨씬 더 엄격한 법적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일베의 게시판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숱하게 포스팅되고 어마어마한 동조를 얻고 있는 호남 혐오 심지어 호남 몰살을 주장하는 인종주의적 주장들과 이번 광화문 폭식 투쟁의 명분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일베 회원들이 오프라인에 진출한다는 것은 온라인에서 머물던 그들의 소름끼치는 주장을 폭력적으로 현실화 하겠다는 의도인지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는 얘기이다.


광화문 폭식 투쟁에 나선 일베 및 기타 우파 단체의 회원들은 자신들의 이번 행동이 애국적이며 대한민국의 중심을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호남을 몰살시키고 대한민국에서 배제하자는 일베 회원들의 평상시 발언도 과연 애국적이며 대한민국의 중심을 잡는 주장인지에 대해서 가감 없이 진심을 밝혀야 한다.


호남 몰살을 주장하는 회원들과 광화문에 나가 폭식 투쟁을 하는 회원들은 다르다는 유체이탈식 논법은 미리 말해두지만 사양한다. 그런 주장을 하려면 광화문에 나오면서 왜 호남 혐오 발언을 일삼는 일베의 이름을 내걸었는지, 왜 그런 주장이 일상화된 일베의 회원으로 활동해왔는지, 일베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일베의 일상화된 호남 혐오 및 배제 발언에 대해 자신이 어떤 의견을 표명해왔는지에 대해서 우선 밝히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광화문 폭식 투쟁을 마무리하면서 쓰레기를 치우는 따위의 행동으로 평상시 일베 게시판에서 내뱉어온 온갖 패륜적인 언행들이 깨끗이 씻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어마무시한 착각이라는 것을 충고 삼아 말해둔다.


한편, 일베의 이번 광화문 폭식 투쟁과 관련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그리고 또 하나의 원내 정당인 정의당은 어떠한 공식 논평도 발표하지 않았다. 이 현상은 우리나라의 제도 정치권이 이 문제에 대해서 보여온 위선과 천박한 현실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새누리당이야 소속 국회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일베를 방문하는 사진이 찍힐 정도이니 일베와 친연 관계가 깊다고 본다. 하지만 새정련은 그 정치적 지지의 중심을 호남 유권자 및 그 지역 출신들에게 두고 있으면서도 호남을 향해 인종주의적 혐오와 차별 발언을 일삼는 일베의 패악에 대해 어떠한 공식 발언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새정련은 그 전신인 민주당 시절에도 일베의 행패나 기타 지역차별 문제와 관련하여 단 한 건의 공식 논평도 내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분명히 밝혀두고 싶은 것은, 지역차별극복시민행동 회원들이 일베 등 우파 시민들의 현실 참여나 아스팔트 위의 행동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후보만이 경쟁 없이 당선되는 정치적 독점과 마찬가지로 길거리 투쟁이나 시민들의 정치적 발언이 좌파 일변도로 진행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다만, 오프라인의 길거리 투쟁으로 나설 정도의 절박성과 명분을 갖췄다고 스스로 판단한다면 건전한 시민상식의 어떠한 기준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파괴적이고 인종주의적인 혐오 발언에 대해서는 스스로 분명히 정리하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요구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좀더 책임성 있는 우파로 자리매김하고, 좌와 우가 건강하고 생산적인 상호비판과 의견 수렴을 통해 대한민국이 발전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울러, 여야 정치권과 여러 시민단체 등은 정파적이고 사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이 나라 공동체를 공중분해시키는 지역차별의 망령, 파렴치하고 패륜적인 인종주의적 혐오 언행을 시정하는 법적 제도적 조치를 시급하게 강구할 것을 촉구한다. 이것은 결코 호남을 특별 대우해 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호남을 대한민국 시민의 일원으로서 똑같이 대우해 달라는, 21세기 민주국가에서 내놓기에는 너무 슬픈 요구이지만 현실적으로 너무나 절실한 요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둔다.


2014년 9월 10일
지역차별극복시민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