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다.

일베 회원들의 광화문 광장 폭식 투쟁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솔직히 말해서 착잡하다.


저들의 행동을 논리나 명분으로(둘 다 같은 이야기다) 비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그들의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불쾌감은 사실상 애초부터 그들과 반대 입장에 선 사람들에게나 공유될 성질이라는 것, 앞으로 저들은 더욱 자신감을 갖고 오프라인에 나올 것이며 거기에 함께하는 동조자들도 급속히 늘어나리라는 것, 과거 진보(청년층)-보수(장노년층)의 구도가 역전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 등등의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베의 문제에 대해서 '갸들이야 그냥 찌질이 어린애들'이라며 심각성을 부인하던 사람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궁금하고.

 

하지만 일베도 이번 사건으로 앞으로 본격적인 시험의 무대에 서게 될 것으로 본다. 우선 자신들의 행동에 어마어마한 책임성이 부여되고 그것을 감당해야 한다. 광화문 폭식투쟁 이후 쓰레기도 잘 치우고 했다는 것을 자랑한 것 같은데, 이런 모범생 코스프레가 일베의 평상시 게시판 분위기와 얼마나 잘 조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평상시 홍어 몰살을 외치고 여대생 강간 행동대원을 모집하는 식의 행동이 온라인에서는 그냥 욕을 먹고 말 일이지만 일단 오프라인에 나오게 되면 그렇게 간단하게 유체이탈식 스탠스를 취하기 어렵다. 오프라인에 나오면서 일단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어마어마한 비용 지출을 수반하게 된다.

 

사실상 일베가 존재하는 핵심 근거인 지역차별 문제도 아마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게 될 것으로 본다. 이것은 새누리당도 그렇고 새정련도 마찬가지다. 지역차별극복시민행동이 꾸준히 제기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어려웠던 인종주의적 지역혐오 문제가 햇볕 아래 드러난 셈이랄까.

 

일베의 성격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시는 것 같아서 내 의견을 정리해본다.

 

일베는 새누리당과 그 지지층의 가장 근원적인 정서를 가장 적나라한 형태로 공유하고 재생산하고 가공하여 공급하는 커뮤니티다. 새누리당의 근원인 것이다. 인종주의적 반호남 정서가 그 정체성이다. 반여성, 반다문화 등은 사실상 반호남 명제의 악세사리라고 봐도 된다.

 

일베가 오프라인에 나온 이상 새누리당도 일베가 온라인에서 제기해왔던 담론을 적당히 무시하고 적당히 이용하면서 거리를 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단적으로 말해서 일베의 주장대로 호남을 몰살시킬 것인지, 그래서 내전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이 문제를 시민사회의 공식 의제로 채택하여 진지한 토론을 시작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일베는 지금 매우 즐거워할지 모른다. 그런데 확실한 것 하나는 있다. 이제 일베는 되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것이다. 그게 과연 새누리당이나 일베가 다같이 즐거워하는 결과가 될지 그 반대일지는 모른다.

 

내 혼자 생각이지만, 일베는 이제 파멸로 가는 문을 열었다고 본다. 만일 일베가 파멸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이 파멸로 가게 된다. 새누리당과 새정련이 선택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문제다. 아무리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려 해도, 이 문제는 그렇게 생까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덧:

광화문 폭식 투쟁에 나선 일베 회원들은 자신들이 애국 세력이며, 세월호 유족들의 아픔을 공감하며, 세월호의 아픔을 정쟁에 이용하는 불순세력들에 반대할 뿐이라고 한다. 일베가 대한민국의 중심을 잡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오프라인에 나온 일베 회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일베가 평상시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고, 회원들의 공통된 아젠다라고 할 수있는 호남 혐오, 호남 증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이 대한민국의 중심을 잡고, 대한민국을 정상화할 수 있는 명제라는 이야기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그것은 그것이고, 광화문 폭식 투쟁은 폭식 투쟁이라고 분리하지 말라. 그것이야말로 요즘 흔한 말로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할 만하다.

 

정식으로 묻고 싶다. 광화문에 나온 당신들, 이제 호남을 향해서 총칼을 들고 몰살시키겠다는 신호탄을 올린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새누리당이나 새정련 모두 모르는 척하고 지나갈 생각은 하지 마라. 이 문제는 대한민국과 한민족이 산산조각나느냐 아니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