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좀 심한 언쟁이 있었죠. 그런데 차츰 소모적인 진영대립 - 내심은 지역차별주의자인가 - 까지로 이상하게 흐르는 것 같아서, 제가 오지랖 좀 시전해보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크게 세가지 논점이 있는데요. 불가피하게 '단어'를 언급하니 불쾌하실 분들께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일단 서로 엮지 말고, 하나씩 계산하면서, 점차 합산하는 걸로 갈게요.


1. '홍어'에 대한 의문, 조롱이 아닌 맥락에서 가능한가? 공통주제

상대가 부정어(?)로 활용하는 것을 우리도 부정어라고 꼭 비토해야 할까요? 예컨대, 한국사회에서 '정치적이다'란 말은 이미 부정적 미사여구가 되어있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두어야 하나요? 아니죠. 저는 시민들이 정치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는 언어로 되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치편향에 오염된 낱말을 다기 가치중립적인 단어로,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 어휘로 바꿔가야 하는 것이죠. 
다만 이 경우, '홍어'를 대입시킨 물음에는 결론적으로 반대합니다. 근래 시점에서 보면 일베의 난동에 따라 모욕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크게 확대되었단 배경적 측면, '정치'와 다르게 피해자가 뚜렷한 사안인만큼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하고 대체로 우려를 갖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있다는 내용적 측면. 그래서 저는 '홍어'라는 표현을 비속어로써 이해하는 동시에 제한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와 다르게 조롱할 의도이면서 비하는 아니라고 모른척하는 태도로, 왜 기분 나빠하냐고 빈정댈 수도 있습니다. 이건 더 설명할 필요 없이 쓰레기짓이겠죠. 그러나 우리는 양자의 맥락이 가능하다고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오해의 소지를 남긴 사람은 미안함을 표시하고, 오해한 사람은 수용할 수가 있을 거고요.


2. '홍어'와 '개'는 동일선상인가? 삿갓님 주요 문제제기

상기의 어느 맥락을 따라도 그 나름에서 연장선 상의 단어가 맞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건 비슷한 것이고, 똑같지는 않습니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이죠. 용어의 속성을 살펴보면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성을 강조하기 위해 가축과 비교하는 방식, 그렇게 부여되어 역사적으로 오래된 연원, 확산되어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보편성, 결국 가치전도의 가능성이 희박한 욕설이라는 점에서, '개'가 갖는 비하의 지위는 특수합니다.
그러나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비슷하거나 혹은 '홍어'를 더 심한 것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1 과 같은 형태로 뭐가 다르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거기에 답변을 하면 좋은 일이지만, 구분을 설명하기 어렵기도 하거든요. 이것을 의무처럼 생각하면 일이 생기는데, 특정인 - 토론자 - 을 '단어'로 지칭하게 되었죠. 해명하지 못하면 개인으로써 확실한 욕을 얻어먹는게 하나. 해명이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좋은 설명을 들을 기회나 의문을 품는 발상이 어려워지니, 주제에 대한 접근 자체가 봉쇄되는게 하나. 듣는 사람은 두가지 지점에서 꺼림칙할 수 있는거죠.
당연히 이쪽도 상대 의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방어적으론 날이 설수 밖에 없고, 이해가 안되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1 에서 한쪽이 표현이 미숙했다고 양해를 구하면, 2 에서 한쪽도 대응이 지나쳤다고 인정할 수 있겠죠.


3. '웃는 얼굴'로 모욕에 대응하자? 피노키오님 주요 문제제기

원용을 정확히 모르니, 임의로 의연하게 대처한다고 대체시킬게요. 전개에 큰 혼란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차별피해자들이 차별가해자들에게 차분하게 응대하라는 말은 어찌됬건 틀렸습니다, 그게 도덕적 당위라면. 한편 전략적 설득이라면 고려해볼만한 얘기고요.
이를테면 인간은 태생적으로 옳음에 대한 강한 열망을 지니기에, 스스로가 도덕적 인간이기를 갈구합니다. 욕망의 위계에 따라 이것이 억눌리거나 심지어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각자의 도덕관을 구축하는 형태로 성장하고요. 그래서 대개 다수가 문제를 지목하며 정의가 무너진다고 말할 때에도, 발생 주체는 정의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윤리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차별주의자들은 의도적으로 차별해야겠다는 자세보다 그것이 실제로 왜 차별인지를 모르는 상태가 절대 다수입니다. 그러니 차별의 경계를 분명히 설정해주는게 현명하죠. 안타깝게도 차별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지는 분별력으로는, 본능적인 심리적 기제에 대한 이성적 면역도 충분치 못합니다. 쉽게 말하면 감정적 반발에 휩쓸리기도 쉽다고요. 이래서 배제와 억압의 폭력보다 대화와 설득의 언어가 우월한 것이죠. 그래서 민주주의가 유능한 겁니다.
이렇게 당위의 맥락과 설득의 맥락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제 판단에, 어느 분이 자유분방한(?) 사고를 하는 경향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피해자가 도덕적으로 더 너그러워야한다는 엉터리 주장을 했다고 보진 않습니다. 이렇게 파악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니까요. 


4. 토론에 관하여, 해석과 맥락

누가 옳은가에 앞서 무엇이 옳은가를 합의하고, 토론자는 그것에 동의하는 쪽으로 푸는 게 더 원만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설명이 난잡하기는 한데, 대립지점을 제대로 짚었기를 희망하고요. 대체로 당사자분들이 논쟁을 다룬 위의 관점을 보면서 본인 입장을 호응해주시면, 양측의 오해는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fortuna님의 문제제기를 반영못한 건 크게 보면 삿갓님의 맥락이자 저도 유사한 생각이라, 주관적 균형을 발휘한 것으로 양해 바라고요. (사실 좀 귀찮아서기도ㅋ) 
더불어 이런 언쟁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 한가지만 얘기를 더 할게요. 전 소통에는 원래 한계가 있는 거라고 판단합니다. 대화로 서로를 충분히 이해한다는게 기본적으로 불가능하고, 각자 노력했을 때라야 조금이나마 가능하다는 거죠. 언어 자체가 사람의 생각을 정밀하게 표현할 수 없고, 그런 언어조차 사람은 완전하게 활용하진 못하니까요. 저도 스스로 해명과 부연을 많이 하는 편이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쓰면서 자기검열하거나 쓰고서 피드백하려면 여간 혼란스러운게 아니거든요. 사실 문제제기를 받아도 표현을 재해석하면, 결과적으로 서로 이해되는 상황에 자주 이르기도 합니다. 여기 오신 분들이 기본적으로 말을 좋아하시고 그만큼 수준 이상이겠지만, 그러나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호의의 원칙에 따라 상대의 언어를 선용해서 해석할 때, 토론의 진행은 더 원활해지고 토론의 격조도 더 세련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물론 저부터 반성합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