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성적인 부분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하나 있는데 이승만이 깡패를 동원하고 학생들에게 발포하다 마침내 하야하고

경무대를 떠나 하와이로 망명할 때 시가지에 나온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전송하였다.

이와 비교되는 것이 프랑스의 2차대전 영웅 드골이 연임을 하기위해 헌법 개정을 걸고 신임을 물었으나 패배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낙향할 때 파리 시민들은 누구하나 울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가 도치된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진보 진영의 일부 사람들은 민비나 명성 왕후라고 하면 마치 친일파인 것처럼 대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상 8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좌우를 막론하고 민비라고 불렸으며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다 어느날  명성황후라는 뮤지컬과 드라마를 통하여 명성황후는 일본에 의하여 순국을 당한 국모가 되었고 훌륭한 황후로 격상이 되었다.

이것은 마치 이명박이 드라마 하나로 상당한 인지도와 지지세를 얻은것에 비견할 만 한데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현상인지는 모르겠다.


좌우간 민비 명성왕후는 인형왕후를 배출한 집안출신이고  여주에 있는 감고당이라는 상당히 넓은 저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었다.

그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인식은 잘못이고 다만 직계 혈족이 적었다는 것 뿐이지 그의 집안도 만만치 않았고 이점에서 외척 세력을 억제하려던 대원군에게 명성왕후는 결코 외척이 없는 집안이나 한미한 집안이 아니었는데 대원군은 그렇게 외척을 경계했지만 정작 자신의 부인인 민씨 부인의 영향으로 민자영을 며느리로 맞이하였고 대원군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된다.


조선이 자력으로 근대화를 할 수 있었느냐 없었느냐로 논란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50%의 가능성은 있었고 긍정적인 면에서 볼 때 나름 근대화를 위한 여러 조치들이 취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또 이러한 개혁 조치들을 통하여 조선의 경제가 성장하고 있었던 것도 실증적으로 입증이 된 사실이다.


하지만 조선이 개혁하고 힘을 기르기도 전에 소모되는 사건들과 문제들이 더 많고 빨라서 조선은 망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모두 중전 민씨와 연관이 있는 것이었다.


조선의 쇠퇴를 재촉한 중요한 사건들을 보자면 임오군란, 갑신정변,동학혁명, 청일전쟁을 들 수 있는데 이 사건들의 중심에는 항상 민비의 이익과 그의 개입이 들어있었다.


임오군란은 민비의 외척들의 가렴주구로 인하여 재정이 탕진되어 일어난 사건이며 갑신정변 역시 민비의 수구적인 정책과 무능 백성들의 고통에 대한 급진적인 해결책으로 개화파가 일으킨 사건이며 그 실패 또한 민비가 임오군란 처럼 청나라 군대의 힘을 빌어서 해결을 하여 개혁의 길을 막아 버렸고 동학난 역시 민비의 매관 매직 그리고 뇌물정치등으로 인한 민생고때문에 일어났고 결국 청나라와 일본군의 개입을 불러왔고 청일전쟁으로 조선은 전쟁터가 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런 여러차례의 정변이나 외국 군대의 주둔등으로 인하여 결국 조선은 중심이 없이 무너지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사실 조선말에 중앙군 만명 정도만 유지할 수 있었어도 정변이나 외국 군대의 개입을 막을 수가 있었고 왕권을 지킬 수가 있었는데

민비와 외척세력의 가렴주구로 인하여 이러한 대비가 없이 문제가 생기면 외국 군대를 끌여들여 권력을 유지하려한 민비때문에 조선이 망했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